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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회상하며
이구홍  |  oktim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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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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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홍/본지 발행인

   
 
일본정부가 미쓰비시를 앞세워 2차대전중 이 회사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피해자들에게 사과와 보상 조치를 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정작 한국인의 피해자들에게는 일언반구의 말이 없다.
이는 지난 1965년 한·일 기본 조약의 근본적인 문제가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미쓰비시는 강제노동피해자와 유족들에게 1인당 10만 위안의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또한 미쓰비시는 미국인 전쟁포로에 대해 서로 공식사과하고 앞으로 영국, 네덜란드, 호주 등의 전쟁포로들에게도 사과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정작 이들보다 규모면에서나 가혹행위 등에서 훨씬 큰 피해를 당한 조선인 노동자들에게는 1965년 ‘한·일조약’으로 모든 것이 해결됐다는 식이다.

그렇다면 한·일 기본조약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한국은 식민지지배가 원칙적으로 불법 무효라는 입장을 고수한 반면, 일본정부는 일·한 합병은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다만 1965년 한·일 기본 조약의 성립으로 이때부터 무효라는 입장을 견지해 오고 있다.

일본은 이를 근거로 당시의 조선은 합법적인 조약에 의해 ‘합방’된 상태였고 따라서 국민동원령에 의해 자국민 동원이었지 강제 징집한 적은 없다는 식의 논리를 펴고 있다.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이하여 당시를 회상해보면 일본 측은 한·일 회담 그 자체에 별반 관심이 없었다고 봐야 한다.

한국 휴전 이후부터 시작된 한·일 회담은 7차에 거쳐 지루한 회담이 이어져왔지만 일본 측은 시종일관 지연술로 임했던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구보다(久保田)’ 망언은 그 자의 개인 생각이라기보다는 일본을 지배하고 있던 ‘기시’, ‘이케다’, ‘요시다’ 등 당시 일본의 역대 수상들이 라이샤워 주일미대사 앞에서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을 ‘구보다’가 악역을 맡았을 뿐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국의 전후 복구와 경제 재건에 소요되는 막대한 자금은 일본을 통해서 메꾸어 보자는 입장과 또 한편으로는 미국이 베트남전에 한국의 전투병 파병이 매우 긴요한 상태에서 이 돌파구를 ‘한·일 밀착’을 통해 일시에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다.

한국 군사정권의 최대 과제는 경제 건설이었는데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자금원을 전적으로 일본에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한·미·일의 상이한 입장에서 한·일 회담은 앞뒤 가릴 틈도 없이 타결되었고 그 후유증으로 인해 오늘날 분출되고 있는 것이 위안부, 노무자, 독도문제이다.
자,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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