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카 유지 / 세종대 교수

일본의 미쓰비시 머티리얼이 지난 1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전신인 미쓰비시광업이 경영한 일본 내 4군데 광산에서 옛 일본군의 포로가 된 미국 병사 약 900명이 노동을 강요당한 것을 인정해 회사의 대표자들이 정식 사죄했다. 이어 24일, 미쓰비시는 중일전쟁 중 강제 연행돼 가혹한 노동을 강요당했다며 회사를 상대로 사죄와 손해배상을 요구해온 중국인들에게 화해안을 제시했다. 당시의 책임을 인정, 사죄하는 것과 3765명을 대상으로 한 사람당 10만 위안(약 2000만 원)을 지불하겠다는 것이 그 골자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에 대해선 배상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당시 한국인들이 노동을 강요당한 게 사실이나 국적이 일본이었고, 1939년 국민징용령에 따라 기타 일본인들과 같은 조건으로 합법적으로 징용됐기 때문에 한국인은 사죄나 배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설령 한국에 대한 배상 책임이 있다 하더라도 이미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모두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반면 적국이었던 미·중 등에 대해서는 사죄와 배상의 책임이 일본에 남아 있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이런 일본 측 논리와 태도에 불쾌감을 금할 수 없다. 바로 한국을 무력으로 침략해 식민지로 만든 것을 정당화하고 일제시대가 합법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1904년 2월 러일전쟁을 구실로 서울에 들어온 일본군은 황궁을 포위해 총칼로 한일의정서를 강요했고, 같은 수법으로 을사늑약을 강요해 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것이 역사의 진실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史實)에 대해서도 알 수 없는 논리를 내세워 지금도 당시의 책임을 면하려고 하는 것이 일본 측 논리다. 시작이 명백한 침략이었던 만큼 일제시대가 합법화·정당화될 수는 없다.

이 문제의 뿌리는 한·일 간의 논리적 이견이 표면화한 1965년 한일기본조약 제2조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는 한일합방조약을 비롯해 1910년 이전에 한국과 일본이 맺은 모든 조약이나 협정 등이 ‘이미 무효가 되었다’고 명기돼 있다. 이 말은, 1965년 당시 한국 측이 1910년 이전의 한·일 간의 조약이나 협정 등이 ‘원천적으로 무효’임을 주장한 데 비해, 일본 측은 ‘일본이 패전하여 무효가 됐다’고 주장함으로써 의견이 일치되지 않아 방편으로 쓴 말이 바로 ‘이미 무효’였다. 즉, 한국은 일제시대 전체를 불법으로 주장했고, 일본은 일제시대를 합법으로 주장한 결과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서 이 점에 대해 큰 이견이 있은 것이다. 이 문제가 일제시대의 ‘강제노동’에 대한 한·일 간 이견의 법적 배경이다. 당시 힘이 약했던 한국으로선 결국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그런데 이견은 있었지만 1965년 한·일 양국은 기본조약과 협정에 대해 조인하는 데 합의했다. 그것은 백보 양보해 말하면 양쪽이 상대방의 주장을 어느 정도 서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1991년 일본 정부는 국회 답변을 통해 1965년의 청구권협정으로 국가가 보호할 수 있는 개인(個人) 청구권이 소멸됐으나, 순수한 의미의 개인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견해를 공개했다. 따라서 한국인이 개인적으로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등을 청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점을 일본도 잘 알고 있다.

일본은 일제시대가 합법이었다는, 한국인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반쪽 주장을 즉각 중지하고 1965년의 청구권협정 이후에도 남아 있는 개인 청구권을 정식 인정함으로써 한국의 강제 징용자에 대한 성실한 사죄와 배상을 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