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형 /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독립운동가 최재형(1858~1920). 9세 때 시베리아로 이주해 러시아에 귀화했고 러시아 군대의 어용상인(御用商人)으로 성장, 당시 연매출 10만~12만달러를 이룰 정도로 거부가 되었다. 이후 관리가 되어 러시아 황제를 알현, 5개의 훈장까지 받은 인물이다.

일제강점기 그는 절대빈곤에 시달리던 한민족을 고용해 생계를 도왔다. 이뿐만 아니라 재산을 모두 항일운동에 바쳤다. 러시아에 있는 의병세력을 단결시켜 일본군 초소와 소규모 부대들을 격파했던 사람.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하고 일본군의 모진 고문에도 끝까지 함구했던 그 배후가, 최재형임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결국은 그 역시도 일본군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아야 했다.

고려인(Korean)의 이주역사는 조선말기 국민이 어려운 생활환경을 피해 두만강을 넘은 것으로 시작된다. 고려인은 타지에서도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황무지를 개척했다. 1905년 이후 독립운동을 하던 애국지사들도 연해주로 이동했다. 한때 연해주는 정치·경제적으로 고려인들에게 희망의 땅이었다. 1917년 제정 러시아가 붕괴되자 연해주의 고려인들은 소련 정권 수립에 협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1937년 스탈린을 위시한 소련 위정자들은 18만명이나 되는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 곳곳에 강제 이주시켰다. 이 과정에서 삶은 무자비하게 유린당했고 많은 고려인들이 생명과 재산을 잃었다. 대한민국은 세계 11위(2015년, GDP기준) 경제대국이 될 만큼 고도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나라의 근본을 이룬 독립운동가들은 변방의 역사 깊숙이 묻힌 채, 동족의 관심에서 잊혀가고 그 유해조차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으니 아쉽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고려인 후손들이 같은 한민족이면서도 모국에서 멀어져 한국어를 잊어버리고 민족의 정체성을 잃어간다. 더러는 가난으로 선대의 고향을 찾아보지도 못하는 것이 그들의 현실이다.

다행인 것은 이 불굴의 고려인,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중앙아시아 중 카자흐스탄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낸다는 것. 1937년 스탈린 치하 중앙아시아로 고려인 강제 이주, 1991년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소련) 붕괴 이후 재이주·재정착의 과정 속에서도 남다른 교육열과 강인한 정신력 그리고 특유의 적응력과 근면 성실로 러시아·CIS지역 내 가장 역동적인, 가장 모범적인 소수 민족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험난한 역사를 겪고도 고려인들은 강인한 인내력과 근면 성실로 유라시아 대륙 곳곳에서 가장 강한 소수 민족이 되어 정치·문화적 자원이 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는 고려인은 현재까지 부총리, 상원의원, 국회의원, 헌법재판소장, 유명 작가, 배우 등 카자흐스탄에서 중요한 사회적 리더로서 역할을 든든히 해내고 있다. 그 옛날 나라를 지키던 이들도 동포요, 오늘날 훌륭한 경제·외교적 자원으로 모국의 위상을 높이는 것도 동포다.

임명장 없는 대한민국의 민간 외교관, 재외동포는 국력 신장의 첨병이며 국가 경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보고다. 대한민국에 재외동포 사회가 발전할 수 있도록 재외동포의 정체성 확립, 자부심 고취, 거주국 내 권익신장, 재외동포와의 상호화합을 위한 발전상 모색이 필요한 이유다.

2015년 광복 70주년에 이어 6월은 호국보훈의달, 한·일 수교 50주년, 6·25 한국전쟁 등 한민족에게 역사적 의미가 남다른 날들을 맞고 있다. 이런 때에 맞춰 6월 22일, 독립운동가 후손 및 고려인 30여 명이 모국을 방문했다. 특히 이들 중에는 러시아·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독립운동가의 증손녀 등 많은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태어나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러시아·CIS지역만 해도 55만명의 동포들이 있다. 고려인의 역사는 잊어서는 안 될 우리 민족사의 일부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헌신하고 희생하신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고 고난의 역사로 유라시아 곳곳에 흩어진 고려인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 살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들이 남겨둔 후손들이 한민족의 정체성을 계속 유지하도록 민관이 협력하고, 한민족으로서 상생 파트너가 되어 민족의 앞날을 같이 이뤄가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몫이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