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형규 / 도쿄특파원

韓·日 우여곡절 끝 `이웃 국가` 출발선에
양국頂上이 매듭져야

◆ 한·일수교 50년 ◆

22일 오후 4시 30분께 일본 도쿄 셰러턴미야코 호텔에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아베 신조 정권 입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상, 외교 수장인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 안보법제 담당인 나카타니 겐 방위상까지 내각 핵심 각료들이 총출동했다.

안전보장법제 국회 통과를 놓고 양보 없는 설전을 벌이고 있는 여야 정치인들도 서둘러 입장했다.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게이단렌 회장을 비롯한 재계 인사들도 밝은 표정으로 우리 측 인사들과 환담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무려 1000여 명이 참석한 수교 50주년 기념식장은 최악의 한·일 관계라는 세간의 평가를 무색하게 했다. 서울과 도쿄에서 동시에 열린 이날 수교 50주년 기념식에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가 전격 참석하면서 냉랭했던 관계가 순식간에 해빙 무드로 접어든 듯했다.

행사장 분위기는 아베 총리가 입장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축사를 위해 연단에 오른 아베 총리는 한국과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음을 두 차례나 소개하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가 50년 전 한·일 국교 정상화에 깊이 관여했던 일, 고향인 시모노세키가 과거 조선통신사가 상륙했던 곳으로 부산과 자매결연한 인연까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박근혜 대통령이 보낸 메시지를 발표하는 동안 뒷배경에는 아베 총리가 1차 집권(2006년) 당시 아키에 여사와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해 헌화하는 모습, 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사이에 두고 파안대소하는 장면, 다자회의장 박 대통령 옆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진이 올라왔다.

기시다 외무상도 외무장관 회담 이전인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주무 부처 부대신으로 서울을 수차례 오갔던 인연을 소개했다.

아베 정권 들어 계속된 역사와 영토 왜곡에 정상회담 한 번 없이 등을 져왔는데, 한데 모아보니 의의로 긴 인연과 잦은 만남이 있었다. 애써 외면해 왔지만 어쩔 수 없는 이웃 나라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무관심 전략을 펴도 무관심으로 끝날 수 없는 숙명적인 인연인 셈이다.

아베 총리가 연단에 있는 동안 우레와 같은 박수가 모두 7번 터져나왔다. 전체 연설 시간은 약 10분, 순차통역을 빼면 5분 정도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하면 참석자 호응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 박수가 담고 있는 기대와 바람이 무엇인지는 아베 총리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모리 요시로 전 총리는 건배사를 하면서 "두 정상이 기념식에 참석하는 것은 모두의 바람이었고, 이것이 실현된 것은 바로 여러분의 힘"이라며 고단했던 노고를 시원한 맥주에 날려 보내자고 했다. 이제부터는 어렵게 출발선에 선 양국 정상이 화답해 나갈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