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로 또 다시 난리법석이다. 메르스 사태가 ‘제2의 세월호’로 불리며 국가시스템이 이렇게 또 무너질 수 있을까 하는 분노와 좌절감이 가득하다. 상당수 동포들의 한국 방문 계획이 취소 또는 연기돼 여행업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고 한다. 시드니 동포 여행사들도 예외가 아니다. 메르스 여파로 방한을 취소한 외국인이 7만여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관광공사가 1일부터 9일까지 한국관광을 포기한 외국인은 6만7천700명으로 집계됐다고 10일 밝혔다.

호주는 중동과 인적 왕래가 한국보다 훨씬 많은 나라다. 호주에 거주하는 중동계 이민자들이 거의 약 50만명에 이른다. 이들의 연간 친인척 방문 수치가 한국인의 중동 방문의 수십배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호주에서 ‘메르스 문제’는 없었다.

한국에서 메르스로 인한 초기 대응 실패와 상상을 초월한 사태 악화를 보면서 이번 주(8~12일) 한국에서 열린 세계과학기자대회(WCSJ 2015)에 참가한 데보라 블럼 미 위스콘신대 매디슨캠퍼스 교수(저널리즘)의 인터뷰 발언은 정곡을 찔렀다. 1992년 퓰리처상(심층 보도 부문)을 수상한 그는 30년 과학기자로 활동하면서 베스트셀러를 여러 권 낸 스타 기자·저술가다. 블럼 교수는 “전염병 대응은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부터 시작한다”는 따끔한 충고를 했다. 수십년 동안 정보를 움켜쥐는 버릇에 길들여진 한국 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충고다.

비공개로 일관하다 마지못해 병원 이름을 공개한 박근혜 정부의 대응은 이런 충고와는 정반대였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감염자의 동선을 공개하고, 감염자를 양산한 병원에 정보공개를 압박하자 그제야 박근혜 정부는 마지못해 정보를 공개하는 등 뒷북을 쳤다. 그러면서도 박 대통령은 “지방정부가 단독으로 설치면 안 돼!”라는 뉘앙스의 못 마땅하다는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10일 방미 계획을 연기했다. 그만큼 사태와 국민여론이 악화돼 있기 때문이다.

메르스와 관련해 한국 정부의 의무와 국민의 권리를 규정한 법률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제6조 제2항)은 “국민은 감염병 발생 상황, 감염병 예방 및 관리 등에 관한 정보와 대응방법을 알 권리가 있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감염병 발생상황을 알 권리가 있다’는 뜻은 최초 발생 환자가 어디에서 생겼고, 현재 감염병이 어디로 확산하고 있는지에 관한 정보를 ‘알 권리’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감염병 예방법은 시·도지사에게 강력한 의무(역학조사 실시 등)를 부여하고 있다. 서울시가 삼성서울병원에 “폐쇄조처를 내릴 수도 있다”고 언급한 것 역시 감염병 예방법에 근거조항이 있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적극적으로 정보를 제공해야한다. 선택이 아니라 의무조항인 것이다. 감염병 예방법 제35조 1항은 “보건복지부 장관은 감염병 위기관리대책을 시·도지사에게 알려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항은 “시·도지사는 제1항에 따라 통보된 감염병 위기관리대책에 따라 특별시·광역시·도·특별자치도 감염병 위기관리대책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보 공개는 특히 한국 정부가 가장 기피해 온 분야다. (기업도 상황은 비슷하다) 좋게 말해 훈련이 안됐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상 정보 독점으로 ‘끗발을 날리며’ 힘 있는 자리라는 위세를 떨쳐왔다는 혹평을 들어야 한다. 별 것도 아닌 것을 ‘쉬 쉬 하며..’ 비공개하면서 일부 소수에게 정보를 제공해 ‘인맥관리 수단’으로 활용하는 치졸한 사례도 종종 있었다.

호주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어떤가? 한국내 장차관이나 국회의원 등 이른바 VIP의 방호 정보에 대해 대사관이나 총영사관은 가급적 공개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녀 간 뒤 보도자료 발표가 고작이다. 그나마 보도자료도 내용이 부실한 경우가 많다. 알맹이(대화 내용 등)는 쏙 빠진 채 “호주 정부 관계자들을 언제, 어디서 만나 의례적인 이야기를 나누었고 사진을 찍었다”는 정도다.

과거 필자와 친분이 있던 호주 가톨릭교회의 한 주교는 교구 홈페이지에 최소 한 달에서 한 분기(3개월) 동안의 주요 일정을 모두 공개했다. 누구나 신청을 하면 만날 수 있도록 문호를 활짝 열어 놓고 지냈다. 행사에 갈 때 항상 혼자 차(소형 승용차)를 몰고 의식에 필요한 것을 모두 본인이 챙긴다. 점심이나 다과회에서는 차 한잔과 샌드위치면 충분하다. 외국산 고급차를 타고 (물론 운전기사가 따로 있고) 여러 수행 비서들(사제들)을 대동하고 거들먹거리는 일부 한국 주교들과는 너무 다른 모습에 신선함을 주었다. 이 호주 주교는 낮은 곳으로 먼저 시선을 두는 자세, 절제와 겸손이 몸에 배어 있었다. 지금은 퇴임한 그는 강론도 탁월했지만 일상에서 그리스도 제자다운 소박한 인간미 넘치는 모습을 보이면서 주변에서 좋은 소리를 들었다.

이처럼 공공 이익과 관련된 정보 공유는 가진 자 입장에서 필요에 따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의무인 경우가 많다. 법령에도 그렇게 규정돼 있는 경우가 많다. 나누어야 할 정보를 꽉 움켜쥔 채 공유를 하지 않고 위세를 부리는 자, 사익추구 행위를 하는 자는 공직자가 될 자격이 없다. 솎아 내야 한다. 언제까지 한국 뉴스를 보며 ‘무능한 지도자’,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답답한 질문을 던져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