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 논설위원

기업은 망하더라도 다른 기업이 인수하든지 대체할 수 있지만, 국가는 망하는 순간 국민의 비극이 시작된다. 그래서 국가 경영도 기업과 마찬가지로 과거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에서 배우고, 끊임없이 변화해야만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다. 과거 달콤한 성공에 취해 변화를 거부하거나 실패를 통해 배우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 가장 큰 유제품 업체이자 국민 우유로 대접받는 유키지루시(雪印)유업은 2000년 6월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6000여 명이 우유를 먹고 구토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오사카 공장에서 식중독이 발생했는데 이 공장에서는 본사에 아무런 보고도 하지 않았다. 사흘이 지난 뒤에도 제품 회수가 안돼 피해자가 늘었는데도 고객의 항의가 있고 난 뒤에야 본사에 보고가 됐다. 그러나 본사는 식중독 사건 자체를 인정하지 않다가 사건 발생 1주일이 지나 뒤늦게 CEO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더욱이 이 CEO는 회견 중간에 도망치다시피 나오다 기자들이 따라붙자 “어제 한숨도 못 잤다”며 짜증을 냈다고 한다. 결국 CEO가 사임했지만 이 회사의 손실은 엄청나게 불어났다. 본사가 미적거리는 사이 식중독 환자 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인 1만3000명까지 늘었다.

세계적인 정유업체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은 2010년 멕시코만 원유 유출로 심각한 환경오염을 불러일으킨 데다 10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봤다. 문제는 CEO가 이 같은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BP는 2005년 텍사스 공장 폭발사고를 겪으며 내부 조사를 통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개선점을 포함한 보고서를 내놨다. 그러나 실적에 눈먼 CEO는 이를 무시했고 사고는 되풀이됐다.

지난해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 등 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침몰해 295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건 발생 후 회사로 치면 CEO인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 앞에 7시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전화와 구두로 21차례에 걸쳐 보고를 받았지만 ‘골든 타임’ 때 구조를 위한 ‘컨트롤타워’는 없었다. 최근 중국에서 발생한 유람선 침몰 사고에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바로 현지로 날아가 현장을 지휘하는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구호에 나선 해경이 초기 대응을 제대로 못해 구조해낸 승객이 한 명도 없었다. 해경은 해체되고 구난·구조를 전담할 국민안전처가 발족됐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국가개조’를 국정의 주요 목표로 제시했다.

그 후 1년 뒤 지난 5월 20일 신종 감염병인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 치사율 40%에 달하는 위험한 감염병이었지만 주무부처인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6일이나 지난 뒤 26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컨트롤타워 없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감염자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고 정부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총리 대행을 맡은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국제회의 참석차 파리로 떠나 버리고 사회관계 부처를 통할하라고 부총리로 승격시켜준 황우여 교육부 장관 겸 사회부총리는 휴교령 하나 제대로 조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한심한 모습만 보였다. 세월호 때도 청와대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다”고 하더니 이번에도 아니라고 한다. 세월호 때 비서실장조차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를 하지 못해 그렇게 비판받고도 이번 사태 때도 이병기 비서실장은 30여 차례 대통령과 전화통화 하느라 바빠서 라면을 먹을 정도라고 했다. 2년 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메르스가 발생했을 때 국내 학계에서 위험성을 경고하는 논문이 발표됐지만 정부의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위기 대응을 위해 만든 국민안전처는 사건 발생 18일 만에야 ‘손을 잘 씻으라’는 긴급문자를 한 번 발송, “도대체 뭐하는 기관이냐”는 비아냥만 들었다.

왜 이런 실패를 반복하는 것일까. ‘실패학’의 대가인 시드니 핀켈슈타인 미국 다트머스대 교수는 “잘못을 깨달았을 때 이를 고집하지 않고 새로운 상황에 바로 적응하고, 판단 오류를 수정하고,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박 정부에 과연 이런 능력이 있을까. 국민 대다수는 메르스 대응에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만 정부는 아직도 실패하지 않았다고 한다. 각자도생(各自圖生·제각기 살아갈 방법을 도모함)이 국정 목표가 되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