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출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며칠 뒤면 천안함 격침 이후 북한과의 모든 교류협력을 중단시킨 5·24조치를 취한 지 5년이 된다. 그나마 개성공단이 예외적 조치로 존속하고 있지만, 이 사업 역시 신규투자금지에 따라 정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5·24조치의 또 다른 예외로 간주해 정부가 지원하고 있는 나진·하산 프로젝트도 장애물이 적지 않다. 남북한이 직접 협력하지 못하고 러시아를 통해 문제점을 해결하려 하다보니 투자 기업으로서는 답답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5·24조치는 남북교류협력 측면에서 기업인들의 발목에 채워진 쇠사슬이나 같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기업의 대북 투자를 자문하는 연락사무소의 평양 설치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최근 뜨거워진 통일 논의와 함께 경협 아이디어도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지만 이런 구상은 5·24조치라는 거대한 장벽을 고려하면 거품 빠진 `맥주의 꿈`과 같다. 5·24조치는 북한 경제의 중국 의존도를 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북한 전체 교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5·24조치 이후 점점 늘어나더니 2013년에는 90.6%로 높아졌다. 돈벌이 등을 위해 중국을 방문하는 북한 주민은 연간 20만 명에 이른다. 중국 동북3성의 주요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북한 여성들이 넘쳐나고, 수만 명의 북한 근로자들이 중국의 의류봉제 공장 등에서 재봉틀을 돌리고 있다.

"북한 경제관료나 기업인들에게 남한은 추상적인 대상일 뿐이고, 모든 것이 중국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중국 기업과 비즈니스 거래를 하는 것을 훨씬 편하게 생각하고 있다." 북한 경제특구인 나선 지역에서 제조업 투자 활동을 벌이고 있는 한 외국인 기업가의 말이다. 한국 경제의 눈부신 발전상을 동경하고 협력하고 싶어하지만 남한과의 거래는 정치적 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에 생각조차 안 하고 있다는 분위기도 전하고 있다. 특히 현재의 남북관계 불신 수준으로 봐서 5·24조치가 이른 시일 안에 해제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팽배해 거의 단념 수준이라고 귀띔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거의 중국 또는 러시아 기업과의 협력 사업만을 구상하고 있다고 한다.

분단 70년의 남북관계사를 되돌아보면 5년 동안이나 남북교류협력을 단절시킨 5·24조치는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남한에 대한 북한의 직접적인 무력 침투와 도발 행위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1968년 1월 21일에는 무장공비 31명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청와대 인근까지 기습을 시도했다. 그해 10월에는 130여 명의 무장공비를 울진 삼척지구에 침투시켰다.

그러나 불과 3년도 지나지 않은 1971년 대한적십자사는 이산가족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회담을 먼저 제안했고, 다음해인 1972년에는 역사적인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한편 1983년 10월 9일에는 미얀마의 수도 양곤을 방문한 정부의 고위 관료 등 17명이 북한 요원들이 설치한 테러 사건으로 숨졌다. 그러나 바로 다음해인 1984년 8월 20일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경제 분야에서 공동 번영을 이룩하기 위해 교역과 경제협력을 추진하고, 북한 동포들의 생활 향상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기술과 물자를 무상으로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달 남한에서 큰 수해가 발생하자 북한 측에서 구호물자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해왔고, 우리가 대범하게 수용했다. 이를 계기로 경제회담, 적십자회담, 국회회담, 체육회담 등이 열려 분야별로 남북대화가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천안함 참사를 결코 잊어선 안 된다. 핵, 인권 문제 등도 간과해서는 안 될 해결 과제이다. 그러나 분단 70년의 남북관계사가 주는 교훈은 절실하게 와 닿는다. 북한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려면 우리가 먼저 움직여야 했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사과도 남북대화가 진전될 때 받아낼 수 있었다. 북한을 둘러싸고 얽히고설킨 복잡한 문제들도 우리의 의지와 주도력이 발휘될 때 해결이 가능하다. 5·24조치의 전제조건 없는 해제를 분단사의 또 다른 한 획을 긋는 출발점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