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동석 /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

▲민동석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

30여 년 전 첫 해외 임지로 떠나던 날, 아버지가 보자기 하나를 내미셨다. 뜻밖에도 그 안에는 고이 접힌 태극기가 담겨 있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주시려는 아버지의 진심이 느껴져 가슴이 뭉클했다. 그날 그 태극기는 오랜 외교관 생활 동안 내 가슴속에서 늘 펄럭였다.

지금은 곁에 안 계시지만, 아버지는 내게 보이지 않는 든든한 멘토셨다. 큰 어려움에 부딪혀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아버지와 태극기`를 떠올리면 답이 나왔다. 2005년 9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뉴올리언스를 삼켰을 때도 그랬다. 시속 250㎞의 강풍을 동반한 허리케인으로 뉴올리언스는 순식간에 물에 잠겼다. 바로 그곳에 2500여 명의 우리 동포들이 살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이들을 피신시켰지만, 얼마나 많은 동포들이 공포에 떨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현지 총영사로서 결단이 필요했다. 대한민국 공직자가 있어야 할 자리는 바로 재난을 당한 동포들 곁이었다. 강제대피령이 내려졌지만 현장구조대를 꾸려 재난현장으로 달려갔다. 수마가 삼킨 도시는 암흑과 죽음의 공포로 가득했다. 한인 밀집지역들을 돌며 남아 있던 동포들을 도시 밖으로 대피시키는 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2500여 명의 희생자를 낸 대참사에서 우리 동포 중에는 다친 사람 하나 없었다. 기적이었다.

아버지가 주신 태극기는 나의 애장품 1호다. 공직자로 사는 동안 늘 내 마음을 지켜줬고, 혹독한 시련의 계절에는 큰 위로가 됐다. 이제 외교 현장을 떠나 유엔기구의 한국위원회에 몸담고 있지만 30여 년간 간직해온 태극기를 여전히 가슴에 품고 일한다. 이 소중한 마음속 태극기를 함께 나누고픈 뜨거운 청춘들이 있다. 풍토병과 정변의 위험이 상존하는 먼 아프리카에서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묵묵히 나눔을 실천하는 젊은 활동가들이다. 이들의 손에는 빵이 아니라 책이 들려 있다.

60여 년 전 우리가 전쟁의 폐허 속에서 교육의 힘으로 일어섰던 것처럼, 빈곤한 이웃들 또한 배움을 통해 더 나은 내일을 살아가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이런 청춘들이라면 기꺼이 마음속 태극기를 나눌 만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