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석 / 논설위원

나치독일 의사 요제프 멩겔레는 '죽음의 천사'로 불렸다. 아우슈비츠(폴란드 명칭 오슈비엥침) 강제수용소의 내과 의사이자 독일 친위대 대위인 그는 유대인과 집시 등을 대상으로 인간 생체실험을 자행했다. 푸른 눈을 만든다며 어린 아이의 눈에 화학약품을 넣고, 생식기를 교체하거나 마취 없이 간을 꺼내기도 했다.

나치 독일은 다양한 생체실험을 했다. 공군에선 고공에서 피격된 공군조종사가 급격한 압력과 온도강하, 산소부족 때 얼마나 견디는지를, 육군은 세균을 신체부위별로 투입해 관찰했다. 해군은 바닷물에서 얼마나 오래 생존하는지를 실험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의 '731부대' 책임자 이시이 시로는 잔혹함으로 따지면 멩겔레를 능가했다. 교토대 의학부를 수석 졸업한 세균전문의 이시이 중장은 731부대장으로 중국군과 우리 독립투사 등 1만여 명을 생체 실험했다. 생체실험자는 마루타(통나무)로 불렀다. 산 채로 사람의 피부를 벗겨내고, 성병 연구를 위해 매독 임질균을 투입했다. 비행기 6대로 산시 허베이 산둥 허난성 등에 페스트균을 살포해 35만 명이 감염되고 15만6000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종전 후 뉘른베르크 대재판에서 치명적 의학실험을 한 나치 전범 23명은 '의사들의 재판'이란 이름으로 심판을 받았다. 그러나 731부대의 이시이는 도쿄 대재판에서 살아남았다. 미국은 731부대의 생생한 생체실험 자료가 탐이 났다. 이시이는 맥아더에게 자료를 넘겨주는 대신 목숨을 얻었다. 1950년 6·25전쟁 때 이시이는 한국에 혈액을 팔기위해 오른팔인 나이토 료이치와 일본 블러드 뱅크를 세웠으나 이권에서 나이토에 밀려 불우한 말년을 보내다 1959년 사망했다. 이 혈액은행이 오늘의 일본 녹십자다.

일본 규슈대 의학부가 역사관에 2차 대전 말기 미군 포로에게 생체실험을 했던 사실을 인정하는 전시물을 설치했다. 1945년 의학부 교수들이 격추된 미군 폭격기 승무원 8명에게 희석한 바닷물을 혈관에 주입하거나 폐를 절제하는 등의 실험을 해 숨지게 했다. 의사 5명에게 사형이 선고되는 등 관계자 23명이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미국의 대일본 유화정책으로 대부분이 석방되고, 집도의 1명만이 옥중에서 자살했다.

규슈대는 쉬쉬해왔으나 일본 국회도서관 문건이 공개돼 더는 비밀은 아니었다. 이런 점에서 70년 만에야 선배들의 만행을 인정한 규슈대 의대 교수들의 행위가 마지못해 하는 반성이 아니라 의사로서의 진정한 참회이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