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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在日한국상공회의소 통합에 최종 합의
이구홍  |  oktim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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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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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홍/본지 발행인

在日韓國商工會義所는 民團 산하 단체로 발족해, 民團의 실질적 자금원으로 역할을 해왔다. 그러던 것이 상공회의소 내부 분규로 출발하여 급기야 民團中央本部가 개입하게 되고 이로 인해 民團中央本部와 최종태 회장을 중심으로 한 ‘재일한국상공회의소’가 대립, 끈질긴 내부 투쟁에 돌입하게 되었다. 결국 民團중앙은 최종태 회장을 비롯한 상공회 핵심 간부들을 제명처분하기에 이르렀다.

최종태 회장 중심의 ‘재일한국상공회의소’는 民團 산하의 상공회의소를 박차고 나가 일본 법인화로 맞서 5년동안 물밑대결 태세로 일본의 법정 싸움으로 이어져 온 것이 소위 ‘在日韓國商工會義所 분규’의 내막이다.

그동안 주일한국대사관의 개입으로 양 측이 타협하는 모양새를 보이기도 했지만 民團중앙의 일부 강경파들의 실익은 명분과 ‘일반사단법인 재일한국상공회의소’ 측의 집요한 맞대응이 맞닿아 좀처럼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대립은 수면 아래로 잠재해 있었다.

재일한국상공회의소 분규의 원인(遠因)은 개인 감정싸움에서 출발했다

   
▲ 최종태 야마젠그룹 회장.
   
▲ 한창우 마루한그룹 회장.
재일상공회의소 분규의 원인(遠因)은 한창우 마루한그룹 회장과 최종태 야마젠그룹 회장의 개인 감정싸움을 빼놓고는 제대로 설명이 안된다.

재일한국상공회의소는 조총련의 ‘조련상공회의소’가 일본 전국에 신용조합을 설립하여 조총련의 자금원과 총련계학교 지원사업을 본격화하자 이에 맞서 民團강화와 재일동포 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한국 정부의 적극 지원하에 육성 발전되어 왔다.

재일상공회의소는 지난 1962년 발족이래 초대 이강우(李康友), 2대 허필석(許弼奭), 3대 김평진(金坪珍), 4대 장두회(張斗會)씨를 거치는 동안 이들의 중심무대는 동경에 두고 있었다. 그 당시 오사카(大阪)의 이희건(李熙建)씨는 이미 서울에 재일투자금융을 설립하고 신한은행 발족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본국에서는 ‘재일동포 경제인’ 하면 단연 이희건 씨 중심의 재일동포신용조합이 떠오르던 때이다.

1993년 4월, 재일한국상공회의소 5代 회장에 취임한 한창우(韓昌祐) 씨가 교토(京都)에서 빠찡코 사업으로 대성하여 도쿄(東京)에 진출한 시기이다.

한창우 씨는 그의 본거지 교토(京都)에서 민단지방본부 단장에 진출하여 이 여세로 민단 중앙을 넘보고자 원대한 포부를 짰다.

그런데 한창우 씨는 그의 포부(抱負)의 첫 무대인 교토(京都) 단장 입성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그의 공탁금 기탁문제로 뒤 끝이 매끄럽지도 못했다.

한창우 씨가 상공회의소 회장 취임이후 역점을 둔 사업이 서울에 거점을 둔 세계한인상공회의소였다. 세계한상은 한국·일본뿐만 아니라 미국, 캐나다 등지에 지부와 회원을 둔 그야말로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를 육성했다.

이때, 재일한국상공회의소는 한창우 회장의 그룹들이 이 회의 핵심멤버가 됐고 한창우 씨는 어느덧 동경과 서울에서 재일동포 경제인으로 이희건을 넘볼 수 있는 거물로 커 있었다.

한국에서 신한은행이 한국 굴지의 은행으로 성장하여 재일동포의 위세가 드높은 때에도 한창우 씨는 신한은행 근처에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런데 한창우 씨가 상공회의소 6년 임기를 마치고 후임자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그는 최종태 씨가 아닌 나고야(名古屋) 출신인 김건치(金建治) 씨를 내세웠다.

김건치 씨와 최종태 씨는 성격상 판이한 길을 걸어왔다. 김건치 씨를 덕장(德將)이라고 평한다면 최종태 씨는 지장(智將)에 속할 것이다.

지난 2005년 재일상공회의소 8대 회장 자리를 놓고 상기 양씨가 맞붙는다. 결과는 최 씨의 압도적 승리로 귀결된다.

한창우 씨는 이 선거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필자는 단언컨대 “저 애송이가 감히 나에게 도전해?”라고 탁자를 치면서 밤잠을 설쳤을 것이다.

그 후 민단중앙의 집행부는 전원 바뀌었다. 과거의 민단이라면 ‘그 얼굴이 그 얼굴’이라고 할 정도로 인물의 큰 변화가 없었던 것이 민단의 전통이라면 전통이었다.

민단 중앙의 신 집행부 등장과 최종태 상공회의소 회장의 충돌은 이념의 대결이나 노선의 차이에서가 아니라 한창우·최종태의 구원(舊怨)에서 비롯한 예상된 충돌이었다.

그런데 이 충돌의 무대는 사실 동경에서가 아니라 서울에서 오랫동안 물밑에서 야기됐던 갈등이 동경에서 표면화됐을 뿐이다.

재일상공회의소 양측 통합서명

민단산하의 한상련과 일반사단법인 재일한국상공회의소는 드디어 지난 27일(금) 주일한국대사관에서 통합하기로 서명했다. 이 자리에서는 홍채식 회장과 박충홍 양 회장을 비롯해, 대사관에서 김용길 총영사와 오공태 민단중앙본부 단장도 함께 서명했다.

통합회장에는 그동안 거론되었던 한창우 씨가 아니라 추대위가 지명한 유재근 씨를 추천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밖에 양 측은 기존 정관은 통합단체의 정관으로 하고 오는 4월30일까지 총회를 개최한다.

첫째, 회장단은 새로 추대될 회장에게 위임하여 양측으로부터 35명 씩 추천을 받아 70명의 이사로 이사회를 구성한다.

둘째, 통합 상공회의소는 민단의 산하단체로 둔다.

셋째, 그동안 제기되었던 소송, 제명 등은 취하 및 해제한다.

넷째, 금번 합의된 최종합의사항 위반 시 대사관으로부터 엄정한 제재를 감수하며 동시에 해당 단체와 관계를 단절하는 것에도 동의한다.

민단중앙본부와 상공회의소 분규의 5년은 民團史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물음이 따라 붙을 것이다.

‘민단 상공회의소 분규는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 발생했으며 그 시기 한·일 간에는 그 어느때보다 심한 파고가 있었던 때였다고.’

필자는 이 분규의 진상을 책으로 출간하여 세상에 내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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