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수

지난 3월 14일 애틀랜타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흑인민권운동 다큐멘터리 ‘라이프 투 리멤버’ 시사회에 초청받아 다녀왔다. 이 영화는 필자와 한인뷰티업계가 제작을 지원한 작품이다. 600여명의 내외귀빈과 함께 흑인민권영화를 보고 있자니 옛날 생각이 난다.

필자는 1992년 LA폭동 당시, 애틀랜타에서 ‘파이브스타’라는 이름의 그로서리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폭동은 LA에서 일어났는데, 애틀랜타에 있는 흑인학생들도 덩달아 폭동을 일으켜 죄없는 필자의 가게가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 흑인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필자와 한만요 씨 등 한인뷰티인 20여명이 거금을 기부했다. 한만요 함포럼 회장은 도산안창호 민권전당 헌액위원인 이강공 씨의 친 처남이다. 한회장의 이번 기부도 이강공 씨의 힘이 컸다. 이강공 씨는 위대한 지도자 안창호 선생의 족적을 마틴 루터 킹 센터에 남긴 장본인이다. 교육자이자, 인권운동가, 독립운동가인 안창호 선생의 애국애족을 전 세계인에게 널리 알리고, 소중한 장소에 영원히 새길 수 있도록 한 업적은 이강공 씨 아니면 그 누구도 할수 없는 일이다. 이 같은 결과는 이강공 씨 개인의 노력과 유명 흑인민권운동가 제노나 클레이턴과의 두터운 친분 덕분에 가능했다.

그날 다큐멘터리 시사회가 끝나고 제노나 클레이턴 여사 는 “코리안 쌩큐”를 연발했다. 한만요 함포럼 회장을 단상에 불러올려 “영화 제작비 5만달러를 기부해준데 감사한다”고 인사하니, 600명 참석자가 모두 일어나 큰 박수를 쳤다. 미국 땅에 이민 와서 밤낮없이 역경을 넘어 오늘 이처럼 ‘코리아’를 빛내는 한인들이 너무도 감격스러웠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자긍심과 정체성을 크게 높이는 순간이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하면 우리 한인들은 이민초기에 적은 자본으로 혹인 지역에서 장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우리는 목숨을 걸고, 허리춤에 권총을 차고 장사했다. 때론 흑인 고객과 시비도 붙고 불미스런 일도 있기 마련이었다. 한때는 흑인단체와 목사들이 “한국인들은 흑인 커뮤니티에서 돈은 다 벌어가면서, 흑인을 위한 돈 한푼도 내지 않는다”고 외쳐 한흑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은 적도 있었다.

한인들은 한흑갈등을 무마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한국정부가 흑인목사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극진히 대접한 적도 있다. 또 현재 애틀랜타노인회장인 나상호 씨가 시가 40만 달러에 달하는 땅 5.5에이커를 흑인 커뮤니티에 기부했다. 그 덕분에 나회장은 카터 도서관에 초청받아 지미 카터 대통령에게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 그 땅은 지금 흑인들의 체육시설이 들어서 있는데, 지금도 그 시설의 동판에 보면 ‘기증자 나상호’라고 이름 석 자가 새겨져 있다. 그 당시 한흑갈등이 워낙 심해서, 애틀랜타 한인들은 지역 신문에 난 ‘나상호 회장 땅 기부’ 기사를 오려서 가게 문 앞에 붙이기도 했다. 흑인 고객들이 “한국 사람은 흑인커뮤니티에서 돈만 벌어간다”고 비난하면, 우리는 “이 신문기사를 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이번에 애틀랜타 한인회가 위안부소녀상 건립을 추진 중이다. 소녀상 건립 장소에 대해 이런저런 의견이 오가고 있지만, 필자는 이 소녀상을 마틴루터킹 인권의 광장에 세웠으면 하는 바램이다. 첫째로 일본인의 끈질긴 방해공작을 막을 수 있고, 둘째로 소녀상을 여성인권의 상징으로서 전 세계에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이강공 씨, 한만요 회장, 나상호 노인회장 등 흑인커뮤니티와 두터운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내세워 한국여성단체, 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사업 단체 등과 연계함이 어떨까 싶다. 이처럼 흑인 단체와 친밀한 관계를 맺을 경우, 어떠한 한흑관계 문제가 생겨도 우리는 슬기롭게 헤쳐나 갈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번 흑인인권다큐멘터리 시사회에 참석하고, 흑인들의 힘과 단결력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이처럼 우리 교민도 굳게 뭉쳐야함을 절실히 실감했다. 앞으로 우리 한인들도 흑인 커뮤니티와의 꾸준한 교류를 통해 상생하는 관계가 되는 것이 나의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