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규 / 논설위원]

▲ 황성규 논설위원

임진왜란의 제1 공로자는 단연 이순신 장군이다. 하지만 보는 관점을 바꾸면 1등 아닌 2등이 되기도 한다. 성호 이익(李瀷)의 분류가 그렇다. 그는 ‘임진재조(壬辰再造)’에서 1등 공로자로 명나라의 병부상서 석성(石星)을 꼽았다. 왜? 명나라 군대의 조선 파견을 주장, 관철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선조는 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너는 치욕을 면했다. 석성에게는 일본 사정에 정통한 정보원이 있었으니, 무관 출신의 걸출한 첩보원 사세용(史世用)이다. 사세용은 명·조·왜를 넘나들며 얻은 왜국의 군사기밀을 제공하는 등 선조의 신망을 크게 받고 있었다.

오랜 전쟁은 종전(終戰)을 갈구하게 만든다. 명나라 조정도 그랬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왜군 역시 ‘조선 분할 통치안’을 내세워 회군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 정보를 입수한 사세용이 이 사실을 폭로했다. 한반도의 남북 분할 통치 구상은 이로써 물거품이 됐다. 아찔하다. 이후 사세용은 또 한 번 조선을 뒤흔들었다. 정유재란 이듬해인 1598년 11월 중순, 조·명 연합군이 순천왜성을 포위하고 있을 때다. 이순신에 관한 진용 전술 정보를 사쓰마(薩摩·가고시마)의 왜군 측에 제공, 지원군을 불러들이게 한 것이다.(송봉선,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정보활동을 했나?’) 이후 이순신은 전사했고, 명과 왜는 바라던 철군(撤軍) 명분을 얻었다…. 자국의 정보원이 없어 남의 나라 첩보원에 의지하던 왕조가 남긴 교훈이다.

정보요원, 특히 공작요원(case officer)의 주된 임무는 정보 제공자를 ‘리크루팅(recruiting·포섭)’하고 이를 통해 정보를 확보하는 것이다. 리크루팅 방법은 크게 3가지가 있다. 이념과 돈, 그리고 약점을 통한 협박이다. 이 중 가장 저비용 고효율 방식이 이념을 활용하는 것이다. 돈을 통한 매수는 역공작에 넘어갈 수 있는 까닭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보기관 이스라엘 모사드의 힘도 전 세계에 널려 있는 이러한 ‘이념에 의한 리크루팅’ 풀(pool)에서 나온다.(황성준, ‘보수주의 여행’)

평소의 국가 정보는 충성을 다해 나랏일을 돕는 것이요, 나라에 은혜를 갚는 일이자, 나라를 지키는 일이다. 곧, 정보는 보국(輔國·報國·保國)이다. 우리는 지금 정보 누출 위험 속에 살면서도, 주적(主敵)의 스파이를 잡는 일마저 쉽지 않은 체제를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