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경옥 / 논설위원

▲ 채경옥 논설위원

"참, 왜 이렇게 나이든 사람들을 좋아하신데요?"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 임명으로 박근혜정부 3년차 진용이 최종 윤곽을 드러낸 지난 주말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첫 마디가 다 이렇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76세),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79), 김동호 문화융성위원장(78), 유흥수 주일대사(78), 현경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76), 심대평 지방자치발전위원장(74), 이원종 지역발전위원장(73),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73), 현명관 마사회장(74), 김인호 한국무역협회장(73), 자니 윤 한국관광공사 감사(79세), 홍사덕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72)에 이르기까지 박근혜 정부의 `70대 사랑`이 유별나고 극진한 탓이다. 현직을 떠난 지 19년 만에 컴백한 이병호 국정원장 후보자(75세)는 청문회를 통과하면 역대 최고령 국정원장이 된다. 김경재 청와대 홍보특보 역시 73세다. 이병기 비서실장(68세)이 그 중 젊은 축에 속한다니 더 말해 무엇하랴. 이완구 국무총리(65세), 황우여 부총리겸 교육부장관(68세), 주철기 외교안보수석(69세), 현정택 정책조정수석(66세) 등 내각과 청와대 전체에 고령화사회의 그림자가 실하다. 전임 이명박 정부에서도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을 필두로 한 `노병들의 귀환`이 세간의 눈총을 받긴 했지만 이 정부 들어서는 증상이 한층 심해졌다. 40~50대가 주축요 심지어 30대 장관도 파격기용 하는 글로벌 추세와도 완전히 거꾸로다.

물론 `나이 듦` 그 자체로 편견을 가져선 안된다.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나이 듦`은 지혜·경륜·경험의 동의어다.최근에는 노인인구가 늘면서 정치력, 경제력도 막강해지고 있다. 신체적으로나 영양학적으로나 과거의 잣대로 노인을 규정하기도 힘들다. 신중년, 꽃중년을 자칭하는 60~70대들도 대다수다. 건강하고 활기찬 노년은 개인적 사회적 축복임에 분명하다. 학문적 분야에서 70세 이후에 커다란 성취를 이룬 경우도 적지 않다.

문제는 국정 운영의 전면에 노병들이 포진한 채 사라지지도, 전진하지도 않을 때다. 고위 의사결정구조의 노쇠함은 국가적 재앙이자 사회적 활기와 역동성을 저해하는 위협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성공경험에 집착하고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며 비판적 의견에 대해서는 마음을 열고 경청하기보다는 노여움이 앞서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지난 정부때부터 노익장을 과시하는 인사들이 늘어난다 싶더니 이번 정부에서는 정권마다 장관·수석을 서너 자리씩 거치고도 여전히 현역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70대들이 수두룩하다. "쟤도 하는데 나라고 못하랴" 심리가 발동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조직을 떠난 지 20년이 지나도 어느 순간 현역으로 화려하게 컴백을 하니`고목 나무에 꽃핀다`거나 `꺼진 불도 다시보자`는 말이 더 이상 우스개가 아니다.

의료계에서는 70세 이상이 되면 더 이상 큰 조직을 이끌기에는 부적합하다는 게 정설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70세를 봉직의 한계로 보는 이유다. 더구나 어느 조직의 장이 고령화되면 그 밑으로 산하기관장까지 줄줄이 연쇄효과가 생긴다. 역대 정권마다 신속성, 효율성을 외치며 틈만 나면 `작은 정부`를 외쳤지만 이 정부에서는 그런 립서비스 조차 사라졌다. 전임 이명박 정부때 15부 2처 17청이었던 정부조직은 17부 5처 16청으로 비대해졌다. 이 정부에 대해서는 뭐 하나 결정하는데도 6개월~1년씩 끌기 일쑤요 신속성·효율성면에서는 역대정부 중 최악이라는 평가가 내려진 지 오래다.

대기업 그룹에서도 80대나 90대를 넘긴 회장님(창업자)이 끝까지 경영일선을 고집하면서 기업이 활력을 잃고 존망의 기로에 서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맨땅에서, 맨손으로 기업을 일군 창업자 특유의 근성과 경험치 아래서는 새로운 후계자가 크기 힘들다. 후계자의 판단과 결정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시장 변화와 신기술에도 상대적으로 둔감하다. 재계에서 암암리에 창업자는 75세 전후해서 은퇴하는 것이 기업에는 최상이라는 말이 떠도는 이유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의 장기 불황에서 좀체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까닭을 일본 사회의 급격한 고령화, 특히 의사결정구조의 고령화에서 찾는 학자들도 많다. 중국은 덩샤오핑 이후 주석,총리 등 상무위원급의 경우 만 62세 이상은 새로 맡지 못하고 만 67세 이상은 연임하지 못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를 제외한 상무위원 7명중 5명이 바로 이 나이제한에 걸려 2017년 대대적인 물갈이가 예고돼 있다. .지방정부도 마찬가지다. 성장(城長)은 62세, 당서기급은 67세다. 젊은 의사결정 구조를 유지하고 새 피를 수혈하기 위한 나름의 고육지책인 셈이다.

수조원대 기업을 일군 한 기업인(64세)은 "나 자신 스스로 늙었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그런데 곰곰히 되돌아보니 50대 이후부터는 생각은 많이 했지만 단 하나도 실천한 게 없더라"고 털어놓았다. 노인은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현명한 판단과 조언을 할 수 있다.사회적으로 큰 자산이기도 하다.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불확실한 세계에 몸을 던지거나 새로운 것을 실험하고 모험하기는 어렵다. 노인 중심의 의사결정구조는 노회하게 안전한 길을 갈 수는 있지만 역동성과 혁신성까지 담보할 수는 없다. "옛날 고생에 비하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다"거나 "이 정도면 엄청 좋아졌는데 대체 문제가 뭐냐"라는 `국제시장` 류의 신파로는 답답한 현실을 돌파할 수도, 세계를 상대로 기개를 떨쳐볼 수도 없다. 남다른 트라우마를 겪은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나이많고 경륜있고 오랜기간 검증받은 인사들을 기용해야만 안심, 안정, 확신을 얻는 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한국은 일본 같은 노회함·안정감에 안주할 때가 아니다.중국 이상의 창조와 모험과 도전 정신을 활활 불태워야 할 때다. 창조와는 영 동떨어진 인사를 하면서 창조경제를 외치니 경제가 이 모양 이 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