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주 / 국제부 기자

▲ 이덕주 국제부 기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일본이 과거를 마주할 것을 충고했다. 일본 방문 중 아사히신문이 주최한 행사에 참여해 독일의 과거사에 대해 언급한 것은 아베 신조 정권에 대한 명백한 의사 표현이었다. 외교적인 위험을 무릅쓰고 메르켈 총리가 용기 있는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생각이 독일 지도층과 독일인들의 생각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역사에 대한 반성은 진심이었고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았다.

지난 1월 독일의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독일 드레스덴에서 대규모 반이슬람 시위가 벌어진 지 불과 이틀 만에 독일 명사 80명은 공동 성명을 내 이를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현 연립정부 지도자들과 야당 지도자들, 각 부처 장관, 과거 총리, 축구 국가대표팀 단장, 연예인 등 독일 사회 리더들이 모두 참여했다. 반유대주의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반이슬람주의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반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일본 내 헤이트 스피치(재일동포 및 한국인에 대한 증오 시위)에 대한 일본 지도층의 반응은 훨씬 소극적이다. 진정성이 의심될 수밖에 없다. 역사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나온 리더십은 아이러니하게도 독일을 유럽의 지도 국가로 만들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유럽과 러시아의 정치적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이를 나서서 해결한 것은 메르켈 총리였다. 유로존이 금융위기에 몰렸을 때 이를 주도한 것도 독일이었다.

독일은 한번도 스스로 유럽의 리더가 되고자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유럽 국가들은 독일이 유럽을 이끄는 역할을 해주길 바랐다. 이는 경제력과 군사력이 바탕이 됐지만 독일의 반성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과거 나치가 `하드파워`로 달성하고자 했던 것이 `소프트파워`로 달성된 것이다.

일본도 아시아에서 독일처럼 될 수 있었다. 강한 경제력과 침략 경험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일본은 일찌감치 아시아에 많은 투자를 했다. 그러나 일관성 있는 모습으로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한 일본은 절대 아시아의 리더가 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