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카 유지 / 세종대 교수

▲호사카유지 세종대 교수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의 한국 소개 문구는 종래 ‘우리나라(일본)와 자유와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의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는 중요한 이웃 나라’라고 돼 있었다. 그런데 이런 종전의 표현이 최근 ‘가장 중요한 이웃 나라’로 바뀐 사실이 확인됐다. 일본 아사히 신문은 이런 변화에 대해 일본 정부의 관계자가 “한국 사법, 한국 사회에 대한 불신(不信)이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일본의 일부 학자나 저널리스트들은 외무성의 한국 소개 문구 변화에 대해 몇 가지 분석을 내놓았다. 그들은 첫째, 한국 사회가 1965년의 한·일 기본조약과 한일협정 체제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고, 이것이 한·일 관계 악화의 주원인이라고 본다. 둘째, 일본 분석자들은 근래 한국 사법부의 일본과 관련된 판결 사례 2건을 거론하면서 분석했다.

하나는 2011년 8월 30일 군대위안부 문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다. 이때 헌재는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소홀히 해 왔음을 지적하고 이를 해결하도록 한국 정부를 질타했다면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이런 헌재 판결에 따라 위안부 문제 해결을 노다 요시히코 당시 총리에게 촉구해 한·일 관계 악화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또 하나는, 2012년 5월 24일의 대법원 판결이다. 이는 재한(在韓) 일본 기업들이 일제강점기의 한국인 강제 징용자들에 대해 배상하라고 한 판결을 말한다

결국 이런 한국 사법부의 판결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개인 청구권까지 소멸됐다는 그동안의 한·일 양국 정부의 합의를 깬 것이고, 한국 정부가 이런 판결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불만을 갖고 한국 소개 문구를 바꿨다는 분석이다.

그런데 이런 분석은 어디까지나 일본 정부의 입장만 대변한다.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은 한·일 양국이 구한말에 맺은 조약들이 ‘이미 무효’라고 확인했으나, 무효가 된 시기에 대해선 이견이 있었다. 한국은 1905년의 을사늑약, 1910년의 한·일 합방조약 등 구한말에 양국이 맺은 모든 조약이 원천적으로 무효임을 주장했지만, 일본은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무효가 됐다고 주장했다. 즉, 1965년에 이에 대한 완전한 합의는 없었다.

그리고 1965년의 청구권 협정에서 개인 청구권까지 소멸됐다는 주장은 1991년 일본 정부가 국회 답변을 통해 스스로 부정한 주장에 불과하고, 최근만 해도 일제시대의 미불(未拂) 임금에 대해 199엔이라는, 소액이지만 일본 법원이 한국인의 개인 청구권을 인정해 일본 측에 지급명령을 내린 판결의 사례가 있다. 게다가 일본 정부에 대한 ‘모든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사과와 배상 요구’는 한국뿐만 아니라 유엔 인권위원회가 인정한, 국제적으로도 정당한 요구다. 과거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의 주장에 양보한 면이 없지 않다 하더라도 한국 정부가 개인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말한 적은 없다.

일본 정부는 한국뿐 아니라 이제 중국의 일제시대 강제 징용자들까지 대거 개인 청구권을 청구하기 시작한 최근의 상황을 보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우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마지막에는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면서 양쪽이 납득할 만한 해법을 찾아야겠지만, 일본 정부의 입맛에 맞게 한국 측이 정당한 요구를 굽힐 필요는 없다. 다만, 한국은 일본 국민도 이해하기 쉽게 브리핑 형식의 기자회견 등을 많이 가져야 한다. 냉정한 논리로 일본을 설득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