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 김삼오 /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사회를 길게 내다볼 때 언론의 내용 중 가장 중요한 게 인물보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물보도는 실패보다 성공한 자를 대상으로 할 터인데 이때 언론이 보는 성공 또는 출세의 잣대가 그 사회의 가치를 이끌고 나갈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물보도는 대개 누군가가 고위 공직에 취임할 때, 세간의 화제가 되었을 때, 그들이나 덕망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대개 언론의 공간을 장식하게 됩니다. 한국에서 공직자 인사청문회 때 후보자에 대한 과거 경력이 자세히 밝혀지고 있습니다. 조사(弔辭, eulogy)도 그 한 가지입니다. 돌아가신 분에 대한 인사와 애도인데 장례식장에서 단상에 올라 구두로 하는 게 보통이지만 언론에 실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들 여러 형태의 인물보도 가운데 제가 가장 큰 관심을 갖는 것은 영미 언론에 나오는 영어로 말해서 오비추어리(obituary), 우리말로 바꾸면 사망자의 약력 보도 또는 기사입니다. 오비추어리는  평생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대한 기록과 평가를 남기는 것이므로 자세하고 길게 따라서 조사와는 달리 겉치레가 아닌 정직하고 공정한 기술(記述)인 점이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한국의 언론에는 사망 소식을 알리면서 화려한 과거 이력의 소개나 조사는 흔해도 서구식 오비추어리는 없어 보입니다. 1970년 초 뉴욕에 있으면서 언론인 교육의 일부러 뉴욕타임스를 견학한 적이 있습니다.

신문 한 면을 거의 전부 차지하는 유명인의 오비추어리는 전문을 사망 후 쓰는 게 아닙니다. 대부분을 미리 써놓았다가 사망하면 짧은 시간에 머리 부분과 일부만을 다시 쓰거나 고쳐서 내는 게 미국 언론의 관례입니다.

직원들이 생존한 미국과 외국 대통령, 유명인에 대한 활자(라이너 타입)로 조판된 상태의 오비추어리 기사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지금과 같은 디지털시대가 아니었습니다.

며칠 전 한 세대를 풍미(風靡)한 한국의 정치인 김종필(金鍾泌)씨의 부인 박영옥 여사가 돌아가셨습니다. 향년 86세, 부군보다 네 살 아래입니다. 사망 소식을 전하는 한국 언론의 보도가 이채로웠습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슬픈 일입니다. 텔레비전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잉꼬부부였다는 김씨와 초당파적으로 다녀갔다는 전 현직 최고위 정치인과 관료들의 긴 조문객 행렬 장면을 실시간 내보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미망인 이희호 여사는 상주 앞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외 보도는 정치의 달인으로서 화려했던 그의 인생 역정과 정치적 애증관계 에피소드에 집중되었습니다. 대통령이라는 1인자가 못된 아쉬움도 부각했습니다. 그는 찾아온 이완구 국무총리를 향하여 따끔한 충고를 잊지 않았다고도 전해졌습니다.

막상 망자에 대한 오비추어리는 없었습니다. 굵은 관직을 갖거나 이렇다 할 사화 활동이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김종필 씨의 프로파일에 또 다른 측면은 없을까요? 위키피디어 한글 백과사전 인터넷판에는 다른 여러 기록이 적혀있습니다.

이왕 이력에 대한 보도를 하겠다면 균형 있게 해야 할 터인데 그렇지를 못한 것 같습니다. 슬픔에 젖은 유족에게 인정어린 기사를 써 위로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문제는 균형 잃은 인물보도가 출세는 일단 해놓고 봐야 한다는 그릇된 가치관을 젊은이들에게 심어준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