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숙  / 자유기고가

2015년 중앙업소록 뒤편에 있는 미국 시민권 시험 예상문제를 훑어보는데 한숨이 푹 나왔다. 세상에, 백 문제 중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열개가 채 안되는 것이다. 아무리 미국 역사와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치더라도 이렇게 무식하다니. 만약 지금 시험을 본다면 가차없이 미역국을 먹겠구나.

나는 시민권을 참 쉽게 취득했다. 한국 방문 중 소매치기 당한 영주권을 새로 발급받으러 이민국에 갔더니 담당 영사가 영주권 만기일이 다 됐으니 아예 시민권 신청을 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접수를 하고 몇가지 서류를 보냈더니 필기시험 같은 것도 없이 인터뷰 날짜가 잡혔다. 인터뷰 날, 얼마나 긴장하고 얼었던지 ‘성조기 색깔이 몇 가지냐’는 질문 같지 않은 질문에도 대답 못하고 버벅거렸는데 통과가 되었다. 주위에서 하는 말이 내가 세금을 착실히 낸 기록이 있어서, 그러니까 미미하나마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사람이라서 쉽게 시민권을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랬다. 나는 이 미국땅에 발을 디딘 날부터 쉬지 않고 일해 세금을 잘 냈고 페니 한장 정부혜택을 받은 적 없으며 범법행위 한 일 또한 없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고.

지인의 시어머니는 이민 온 첫 달부터 29년이 된 지금까지 매달 1000달러에 가까운 월페어(SSI)를 탄다. 그 할머니가 몇년전 뇌종양에 걸려 수술을 했는데 병원비만 백 만 달러가 넘게 나왔다. 그 엄청난 병원비, 물론 정부에서 다 해결했고 그 할머니는 지금 일주일에 두번, 정부에서 제공하는 간병인의 보살핌을 받으며 안락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마음씨 좋은 미국정부는 이 나라 발전에 전혀 일조한 적도 없는 그 할머니를 위해 계속 돈을 퍼붓고 있는 것이다. 어느날 그 할머니가 묻더란다. 시민권을 따면 월페어를 좀 더 받을 수 있느냐고. 며느리가 말했다. 와, 내 시어머니지만 어쩌면 그렇게 욕심이 끝도 없는지. 미국정부를 완전 봉으로 생각하고 있더라니까.

저소득층 정부수혜 프로그램에서 일한 내 경험에 의하면 정부혜택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은 참 당당하다는 것이다. 당당을 넘어서 완전 안하무인이다. 자격조건 맞아 수혜를 받는 것이니 비굴할 필요는 없겠지만 어쩌면 그렇게들 기세 등등한지. 한 달에 3달러를 내고 열 세 명(세 명이 아니고 열 세 명이다!) 아이들의 건강과 치과, 안과 혜택을 받으라는 통지를 받은 한 남자는 여지껏 모든 보험이 전부 공짜였는데 왜 39달러란 돈을 내야 하냐며 펄펄 뛴다. 이러이러해서 그렇다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듣지 않는다. 누가 그를 그렇게 뻔뻔하게 만들었을까.

처음부터 정부에 기대어 살던 사람들은 온갖 정보를 빠삭하게 꿰면서 혜택이란 혜택은 다 찾아먹는 반면 갑자기 직장을 잃어 형편이 안 좋아진 사람들은 방법을 몰라서 못 받는다. 또한 그런 사람들은 정부혜택 받는 것을 자존심 상해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자립하려고 노력한다.

마켓이나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남미인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최저임금을 받지만 어쨌든 열심히 일하고 있는 그들, 언제 시민권을 가지게 될까. 영어가 좀 서툴더라도, 미국 역사를 잘 모르더라도 이 나라 발전에 작으나마 이바지하는 사람들이 우선 미국시민이 돼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