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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림문화재단 故 김희수 이사장님의 3주기에 부친다
이구홍  |  oktim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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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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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2015년 1월 19일 월요일) 삼성동 대웅제약 베어홀에서 수림문화재단 설립자이신 故 김희수 이사장님의 3주기를 맞아 추모 음악회가 열린다는 초청장을 받았습니다.

초청장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2009년 인간·문화·미래·창조의 기치를 내걸고 수림문화재단을 일구신 故 동교(東喬) 김희수(金熙秀) 선생의 3주기를 맞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재일조선인으로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겪으며 기업인으로서 대성하여, 조국(祖國) 대한민국의 인재육성, 교육발전과 문화 예술 진흥에 진력하신 고인의 3주기를 맞이하여 추모 음악회를 개최하고자 합니다.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자’는 고인의 가르침과 정신을 기리는 이번 추모 음악회에 모시고자 하오니 부디 참석하시어 자리를 빛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故 김희수 이사장 생전모습.
저는 이 초청장을 받고 아! 벌써 3주기. 그 분이 타계 하신 것이 엊그제인데, 세월의 무상함을 더없이 느꼈습니다.

김희수 선생님께서는 장학금을 수여할 때마다 “성냥 한 개비의 역할만 해도 좋다”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고인은 이러한 꿈을 실천코자 매진했던 일이 장학 사업이었습니다. 먼저 재일동포들의 장학 사업을 시작했고 이어 모국에서 일본에 유학 간 학생들을 돕는 일로 확대하셨습니다. 이렇듯 김희수 선생님께서 재일동포사회와 본국 동포들을 불문하고 장학 사업에 심혈을 기울인 것은 그의 성장 배경과 무관치 않다고 여겨집니다.

선생님께서는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 소년이, 식민지 종주국인 일본에서 유년기를 보내셨습니다. 이때 선생님께서 보고 듣고 약소민족으로서 어쩔 수 없이 부딪쳐야 했던 차별과 멸시는 결국 나라가 쇠약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몸소 뼈저리게 체험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김희수 선생님께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재일동포 사회의 재벌급에 속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발자취에는 일본에서 장학사업 그 후 중앙대학을 인수하시어 재단 이사장 그리고 수림문화재단 이사장직 외에는 그 흔한 감투 하나가 기록된 것이 없습니다.

그는 철저히 ‘조국이 부흥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토대가 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견지하신 분입니다.

오늘 김희수 선생님의 3주기를 맞이하여 수림문화재단은 장학 사업에서 문화·예술·창작 그리고 음악 세계로까지 장르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김희수 선생님, 지금 재단을 이끌고 있는 후학들은 선생님의 거룩하신 뜻을 받들어 50년, 100년 후의 수림문화재단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하나하나 실천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저 세상에서나마 평안하옵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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