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옥순 / 칼럼니스트

새해 벽두부터 주변의 말들이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정보의 홍수시대, 봇물터지듯한 정보만큼 뱉으면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막말과 궤변이 범람하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절감하는 요즘이다. ‘나이 먹을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인생 선배들의 말씀이 더는 우스개 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무엇을 말할까 보다, 무엇을 말하지 않을까’를 먼저 궁리하고 일단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 더불어 내 입에서 나온 말일지라도 듣는 사람이 그 말의 주인이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달려든다.

지난 12일 열린 애틀랜타한인회 이사회 회의 동영상을 보았다. 애틀랜타 한국학교에서 2세들을 가르치는 나는 이 이사회에서 나온 발언들을 지켜보며 허탈감과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모든 분들이 아시다시피 한국학교는 2014년 6월 한인회의 새 건물 매입 당시 2세들을 위한 학교 건립기금 25만 달러를 차용해 주었다. 25만 달러를 빌려주면 새 한인회관 부지 중 3에이커의 땅을 등기해 주겠다는 한인회의 요청에 따라 한국학교 측에서는 흔쾌히 학교 건립기금을 건넸다. 그 후 새 한인회관은 교민들의 성금과 함께 순조롭게 매입되었다. 한인회가 입주를 마치고 그로부터 수개월이 흐른 오늘까지도 3에이커의 땅 등기는커녕, 난해한 말과 행동으로 한국학교의 이미지에 심한 손상을 입히고 있다.

기실 한국학교 교장선생님과 교사진들은 2세 교육을 위해, 토요일 오전 3시간의 수업에 정규 직업 못지않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붓고 있다. 2세들을 잘 이끌어야 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헌신하는 한국학교 이사들, 교장 선생님과 교사들은 요즘 정말로 기운 빠진다. 조용하고 담대하게 2세 교육에 열정을 쏟고 있는 우리는 최근 한인회 이사회 당시 오영록 한인회장께서 “말 잘 듣게끔 가르친 후 한국학교에 땅 주겠다”라는 무분별하고도 격한 발언을 한데 대해, 실망을 넘어 참을 수 없는 모욕감에 울분을 터뜨리고 있다. 돈이나 명예도 아닌 오로지 2세들에게 올바른 정체성과 우리의 역사, 전통, 문화를 전수해주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열정을 불태우는 교장 선생님과 교사들, 400여 명의 학부모님들은 애틀랜타 한인회장 명의의 진심어린 사과를 간절히 바란다. “말 잘 듣게끔 가르친 후 땅을 주겠다.” 2세들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기관에 어찌 이런 협박성, 조롱조의 말씀을 할 수 있는지…. 모든 것을 떠나서 교민사회를 이끌고 계신 한인회장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점이 유감스럽다.

지난 12월 18일 한인회 임시총회에서 교민들이 모인 가운데 한국학교의 차용금 25만 달러 대신, 3에이커의 땅을 등기하기 위한 찬반 투표를 벌였다. 참석인원 127명 중 115명이 찬성해 3에이커의 땅을 양도키로 가결되었다. 그때 한인회장께선 1월 중 땅 등기 작업을 시작하겠다고 공표했다. 교민들 앞에서 한 공약이니만큼 한국학교 관계자들과 교민들은 이 공약이 순조롭게 지켜지길 바란다. 또한, 주정부로부터 인가받아 독립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는 한국학교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밀어주는 것이 세계에서 가장 큰 한인회관을 소유한 ‘애틀랜타 한인회’다운 면모라고 여긴다.

고백하건데 저는 한국학교 교사로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애틀랜타에서 자녀들을 키우며 이민의 삶을 일궈가는 교민의 한 사람으로서 사견을 정중히 말씀드리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현재 한국학교에서 수학하고 있는 400여명의 학생들은 교민들의 자제들이고, 학부모님들도 교민들이다. 교민들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서 존재하는 한인회다. 특히 한인회장께서는 교민 사회를 두루 살피고 교민 상호 간 원활한 소통으로 이들이 이민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가교역할을 돕는 지도자다. 의당 2세들이 주류사회에 진출해 그들과 어깨를 겨루며 성장할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했다. 교육은 미래의 사회와 나라를 이끌어갈 인재를 기르는 정책이기에 목전의 이익만을 살피면 안 된다는 의미일레라. 이민사 110여 년! 선조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 21세기 교민 사회의 발전은 2세들에게 달렸다. 이들이 올바른 정체성을 정립하고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하는 것은 한인회장을 비롯한 교민들의 사명이요 과제다.

불타버린 한인회관을 재건하느라 밤낮으로 뛰시고 교민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고가 많으신 한인 회장 이하 관계자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한국학교 건립을 위한 종자돈 3에이커의 땅이 하루빨리 건네지고 신뢰와 화합으로 하나된 교민사회가 되도록 두 손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