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협 / 정치부 차장

한반도에서 시간은 누구 편인가. 한국 편 아니면 북한 편?

▲ 김상협 정치부차장

이명박정부의 청와대에서는 “당연히 시간은 우리 편”이란 인식이 팽배했다. 암묵적 공감대 수준을 넘어 공공연한 주장이었다. 북한의 잇단 도발 후 꽁꽁 얼어붙은 남북관계 속에 터져 나온 3차 핵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성공 소식에도 그랬다. 상당한 자신감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어떨까. 집권 초반부터 2년여 동안 달라진 바는 없었다. 오히려 더 강화됐다. 정보기관 분석을 기초로 북한 급변사태를 전제로 한 대북정책 기조와 방향이 정해졌다. 한·미동맹만큼이나 시간을 든든한 우방으로 설정했다. 통일대박론은 이 같은 ‘시간 우방론’의 연장선이었다.

역대 정부의 두둑한 배짱은 북한의 핵·미사일 드라이브 이면에 1인 독재 체제의 불안정과 경제파탄을 숨기려는 노림수가 숨어 있다는 해석에 기반을 뒀다. 북한이 뭘 하든 ‘곧 망할 징조’로만 보고 싶은 희망적 환상에 빠져 있었다는 의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결의안 시행과 국제사회의 동참을 근거로 북한의 통치자금은 바닥날 것으로 봤다. 자연스레 북한 엘리트층이 동요하고, 김정은 통치술은 먹혀들지 않게 되면서 지배구조의 그물망이 곳곳에서 구멍나 급변사태로 이어진다는 셈법이었다. 박 대통령이 위원장인 통일준비위원회에 북한이 경기(驚氣) 반응을 일으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19일 박 대통령이 주재한 통일부·외교부·국방부·국가보훈처의 새해 합동 업무보고에서도 ‘시간’ 개념은 없었다. 과거와 현실은 망각됐고, 미래는 현실과 뒤섞여버렸다. 대화 뒤로 핵 개발과 도발을 되풀이했던 북한의 과거 만행은 잊혔다. 남북대화가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하는 현실 타개책도 결여됐다. 언제 가능할지 모를 미래 시점의 장밋빛 환상 같은 대책이 묘책으로 제시됐다. 날아오는 북한의 핵미사일을 레이저빔으로 무력화시키겠다는 국방부 보고가 대표적이다. 창조국방을 내걸고 국방정책의 ‘패러다임 시프트’를 제시한 정부 관계자에게 지금까지 왜 예산과 계획에 없었느냐고 묻자 “(그동안엔) 창발적 발상이 부족했다”는 답이 왔다. 개그의 한 토막 대사 같다.

대북정책 기조에서도 헷갈리는 지점들이 오히려 늘고 있다. 이날 업무보고 테마는 ‘통일준비’다. 북한에 연거푸 제안했던 남북대화와 이날 선언된 통일준비라…. 통일준비 당위성이야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다만 둘이 2015년 1월 같은 시점에 충돌 없이 조화롭기만 한 아이템인지는 의문이다. 분단시대 마감도 일방적 선언으로 해결되는지 의심스럽다. 일련의 남북사업들은 북한의 핵 포기가 진전되면 빠른 속도로 해결될 수 있는 사항들이다. 정부의 조급한 듯한 인상은 김정은이 내심 웃음을 띠게 만드는 허점으로 작용한다. 농락당하기 십상이다. 외교 안보 당국의 전략적 사고가 없어 벌어진 일들이다. 누구의 편도 아닌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려면 정교한 전략이 필수적이다. 단기, 중·장기 전략을 섞어놓지 말고 구분해야 한다. 통찰력을 갖고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자유자재로 유연하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