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영대 / 세계일보 논설위원

▲ 옥영대 세계일보 논설위원

91세의 김섬경 할아버지가 들것에 실려 금강산으로 가는 배에 오르던 광경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는 지난해 2월 북한에 있는 아들딸을 만나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참석했다. 이를 보고 눈시울을 붉히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혈육의 관계는 어떤 말, 어떤 표현으로도 다 말할 수는 없다. 그런 혈육을 지척에 두고 반세기 넘게 만나지 못한다면, 생사조차 모른다면…. 김 할아버지가 어렵게 금강산행 배에 오른 이유는 짐작 가고도 남는다. 아마도 “자식을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여기지 않았을까. 김 할아버지는 북한의 자식들을 만나고 온 한 달여 뒤 숨을 거뒀다.

관객 1000만명을 돌파한 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 ‘덕수’가 LA에 사는 여동생 ‘막순이’를 확인하는 과정을 지켜본 수많은 관객이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친 이유도 혈육, 이산의 아픔에 공감한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엔 김 할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가 운영하는 이산가족통합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12만8000여명에 달한다. 이 중 5만4000여명은 혈육을 보지 못한 채 끝내 이승을 떠났다. 생존자 가운데 80대가 3만여 명에 이른다.

그간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통해 만난 사람은 지난해 2월까지 대면상봉, 화상상봉을 합해 남북 양측 4300여 가족, 2만1700여명에 그친다. 상봉행사가 이뤄져도 한 차례 100∼200명 수준에 머물고 있으니 이 추세라면 이산가족 모두가 혈육상봉의 꿈을 이루는 데는 수백 년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다.

이산가족들의 사연은 모두가 가슴을 저미게 한다. 맏아들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반세기 넘게 이사 한 번 않고 같은 집에 살아온 노모가 있는가 하면, 빛바랜 사진 한 장 가슴에 품고 평생을 살아온 어머니의 이야기도 있다. 그들의 사연은 눈물 없이는 들을 수가 없다.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이별보다 더한 괴로움은 없고, 특히 생이별보다 더한 아픔은 없다”고 적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갖자”고 북측에 제의했다. 혹여 때를 놓칠까 발을 동동 구르는 남쪽 이산가족들의 귀가 번쩍 뜨였을 것이다. 그러나 북쪽 당국은 아직도 가타부타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