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규 / 논설위원

▲ 황성규 논설위원

우리에게 익숙한 ‘문화(文化)’라는 말은 글로써 교화하여 풍속을 좋게 한다는 뜻이다. 이는 중국 전한(前漢) 말기에 유향(劉向)이 편찬한 교훈적 설화집 ‘설원(說苑)’의 지무(指武) 편에 나오는 말이다. 글로 교화해도 개선되지 않는다는 문화불개(文化不改)가 그 어원이다. 이에 비해 서양에서는, 사람이 학습을 통해 일궈 놓은 정신적·물질적 성과 전반을 문화 즉, 컬처(culture)라고 한다. 그 어원은 라틴어 쿨투라(cultura·경작)다. 영어로 처음 건너온 15세기 무렵에는 ‘동식물의 사육과 재배’란 뜻으로서, 원래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 16세기에는 ‘심신의 연마’라는 형이상학적인 의미로 바뀌었다. 오늘의 문화(또는 교양)라는 뜻으로 사용된 것은 19세기 무렵이다. 컬처를 중국에서 문화라고 번역할 당시 언어학자들의 재치가 돋보인다. 고전에서 꼭 닮은 단어를 잘 골라 차용했기 때문이다.

그런 문화에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감돈다. 최근 본격화하고 있는 일본의 ‘재팬하우스’ 설립으로 촉발되는 분위기다. 재팬하우스는 만화와 애니메이션 및 예술품, 음식과 특산품 등 일본 문화를 해외에 소개할 정보·홍보의 거점이다. 여기에 필요한 예산은 500억 엔(약 4600억 원). 어마어마한 예산을 투입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한국과 중국의 대일 비판에 맞서 영토 문제와 역사 인식에 관한 일본의 입장을 국제사회에 홍보하겠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중국은 10년 전부터 차근차근 포석을 해 왔다. 지난 연말 기준 전 세계 126개국에 470여 곳의 공자학원과 850여 곳의 공자학당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중국 말과 글을 배우려는 학생만 350만 명에 가깝다. 그 비결은 간단하다. 남과 사이좋게 지내되 함부로 어울리지는 않는다는 화이부동(和而不同) 정신이다. 재팬하우스와 공자학원·공자학당의 경쟁에서 문화전쟁(culture war)이란 말을 실감한다.

프랑스에 알리앙스 프랑세즈, 독일에 괴테 인스티튜트가 있고, 중국에 공자학원·공자학당, 일본에 재팬하우스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세종학당이 있다. 54개국에 130곳이나 되지만, 그 예산을 보면 국력의 열세를 체감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세종학당 관련 예산은 재팬하우스의 40분의 1도 안 된다. 정부의 관심과 국민의 성원이 절실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