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인권 선진국 되려면 재일동포 차별 철폐부터"
"신·구 정주자 화합해 차세대 민족교육 우선해야"

"일본의 우경화와 동화 정책으로 점차 정체성을 잃어가는 재일동포 사회가 존속하려면 민족교육을 대폭 강화해야 합니다."

재일동포의 바람직한 미래를 묻는 말에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민족교육 활성화를 최우선으로 꼽았다.

재일동포 사회는 1세에서 2세, 3세로 내려가면서 고국 지향에서 정주 지향으로 바뀌었고 해마다 늘어나는 귀화자 때문에 동포사회가 사라지거나 뉴커머만 남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연합뉴스는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재일동포 및 한일 관계 전문가에게서 재일동포가 민족 정체성을 지키면서 일본 사회에서 공생하며 살아갈 방안을 들어보았다.

◇ 이구홍 교포문제연구소 이사장 "정체성 심는 민족교육 시급"

"일본 내 한국학교는 3개뿐인데 총련계는 200여 개에 이릅니다. 민단계 재일동포들은 민족교육을 제대로 받을 곳이 없어 현지 학교에 다니게 되고 차별을 피해 일본식 이름인 '통명'(通名)을 쓰다 보니 점점 일본인화하는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구홍 교포문제연구소 이사장은 "한국 정부와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하 민단)이 과거 남북 대립의 연장선에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이하 총련)와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여오느라 민족교육을 소홀히 한 것이 오늘날 재일동포의 일본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개탄했다.

재일동포 사회에서는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북한의 지원을 받는 총련의 힘이 강했다. 이 소장은 "재일동포 사회에서 민단이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은 한국 정부가 '총련계 동포 모국 방문 사업'을 추진하면서부터"라고 설명했다.

당시 한국을 방문한 총련계 인사 7만여 명은 북한의 일방적 선전과 다른 조국의 발전상에 눈을 떴다. 이는 총련 이탈과 민단계 인사의 증가로 이어졌고 한국 정부는 이때부터 매년 100억 원을 민단에 지원했다. 이 지원금은 지금까지 이어져 현재는 80억 원을 지원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정부의 지원금은 민단 활성화에 보탬이 됐지만 그로 인해 자체적인 모금과 자금 조달 역량을 키우지 못했고 나아가 본국 정부에 예속된 단체가 돼버렸다"며 "이데올로기 대립에 치우쳐 민족학교 설립을 소홀히 한 결과 차세대가 점차 현지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한일 국교 정상화 당시 일본에서는 10∼20년 안에 재일동포가 사라질 것으로 예측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재일동포는 지금까지도 존속하고 있지만 그 숫자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100년이 넘는 재일동포 역사 속에서 민족교육의 부재가 현지화를 부추겼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라고 이 이사장은 지적했다.

"정부는 700만 재외동포가 대한민국의 자산이라고 외치기만 할 뿐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에는 힘을 쏟지 않고 있습니다. 민주사회에서 개인의 행복 추구를 위해 귀화한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말하지만 한국계 일본인이 존재하지 않는 일본에서 귀화는 민족 자산의 유실입니다. 재일동포가 앞으로도 한일 관계에서 가교 역할을 하고 모국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려면 지금부터라도 민족교육에 정부와 동포사회가 합심해 나서야 합니다."

◇ 서용달 모모야마가쿠인대 명예교수 "외국인에게 참정권 부여해야"

"일본이 경제뿐만 아니라 인권에서도 선진국 소리를 들으려면 그 바로미터인 재일동포의 권익 보호에도 나서야 합니다. 인종차별금지법을 만들어 헤이트 스피치가 득세하지 못하게 막아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참정권을 부여해야 합니다."

재일동포 1세로 1963년 일본 모모야마가쿠인대 전임교수로 임용돼 일본 내 한인 교수 1호가 된 서용달 교수는 "재일동포를 비롯한 중국, 대만 출신의 정주 외국인에게 지방선거 참정권을 부여하는 것은 일본이 아시아 여러 나라와 공생의 길을 걷는다는 증표이며 신뢰받는 리더 국가가 되는 길"이라고 단언했다.

서 교수는 "배타적 인종주의가 강한 일본은 경제대국이 된 이유를 단일민족 국가에서 찾는 그릇된 인식이 팽배하다"면서 "외국인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을 꿈꾸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재일동포도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야 하며 동시에 일본에서 더불어 살아가려면 봉사와 기여에도 힘써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 교수 "한일 상생에 재일동포 나서야"

"과거에도 그랬듯이 대립과 갈등으로 꼬인 한일 관계를 푸는 데는 재일동포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한국 정부가 재일동포를 인정하고 그 역할에 지지를 보낼 때 동포들은 자긍심을 갖고 모국을 위하는 데 앞장설 겁니다."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 한국학연구소장은 "현재 양국의 정치가들이 역사 인식과 과거사 갈등 탓에 극단적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며 "맞불을 놓듯이 반일·반한 감정이 증폭돼 꼬일 대로 꼬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엉킨 실타래를 풀려면 정치적 타협 못지않게 시민 차원의 교류도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가는 대중의 인기를 의식해 눈앞에 이익에 급급해하지 말아야 하며 시민단체는 이럴 때일수록 서로 마음을 열고 다가가 함께하는 자리를 늘려가야 합니다."

이 교수는 한국 정부가 관대하게 조선적(朝鮮籍·무국적) 동포와 귀화한 재일동포를 감싸 안아야 재일동포 사회가 더 굳건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들에 대해 색안경을 쓰고 구분 짓는 유리벽을 쳐서는 안 된다"며 "입국도 자유롭게 허가하고 한국 문화 연수 기회도 제공해 대한민국의 품으로 깃들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김웅기 홍익대 교수 "신·구 정주자 합심해야"

"올드커머로 불리는 구정주자의 역사는 100년이 넘습니다. 그만큼 일본 사회를 잘 알고 있으며 종횡으로 주류 사회에 깊은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죠. 반면에 80년대 이후 건너간 뉴커머는 상대적으로 한국과의 연결 고리가 강합니다. 그렇기에 서로 합심해 장점을 하나로 묶는다면 재일동포는 양국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재일동포 2.5세인 김 교수는 총련의 몰락으로 대결 구도는 점차 사라지고 있으며 반대로 뉴커머와의 올드커머 간의 교류는 늘어나는 추세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민단은 뉴커머 단체인 재일본한국인회와 행사를 공동 개최하거나 재일본한국인회 행사를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민단 관계자는 "앞으로 10년, 20년이 흐르면 뉴커머도 올드커머가 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민단의 중심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재일동포 가운데 특별 영주자인 올드커머는 한국 국적임에도 주민등록증이 없다 보니 고국에서 역차별을 받고 있다. 김 교수는 "한국에 정착한 재일동포는 내국인이라고 다문화가정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고 또 육아수당도 못 받는 게 현실"이라며 "역차별 때문에 상처를 받아 일본으로 돌아가는 재일동포가 적지 않은데 일본과 한국에서 배척받은 경험이 있는 이들이 마지막에 선택하는 것이 일본으로의 귀화"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최근 연구에 따르면 민족교육을 받은 재일동포가 헤이트 스피치 등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내성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민족교육은 해외에서 당당한 한민족으로 살아가는 힘이 된다"고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강성철 연합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