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정치적으론 반목해도 경제·문화 교류 이어가야"
"'귀화=동화'로 내모는 일본의 폐쇄성 시급히 개선해야"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면서 한일 관계는 최고로 냉각됐습니다. 그 타격을 재일동포가 고스란히 받았지요. 역사적·정치적인 이해관계는 다르지만 동북아의 중심국가인 한국과 일본은 협력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서로에게 득입니다."

일본에 막걸리 붐을 일으키며 도쿄의 코리아타운인 신오쿠보에서 식당 등 한류 가게를 운영하는 김효섭 이동재팬 사장은 "한일 관계 회복을 위해서는 민간 교류의 꾸준한 확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사장은 한일 국교 정상화 50년이 양국 간 우호와 협력을 재구축하는 계기가 되기를 누구보다 희망하고 있다. 그는 "1980년대 이후에 일본으로 건너온 뉴커머들을 만나면 '요즘처럼 사업하기 어려운 적이 없었다'고 하소연한다"며 "이럴 때일수록 양국이 문화 축제 등 교류 활동을 늘려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본군 위안부를 비롯한 과거사 청산, 독도 영유권 문제 등으로 빚어진 첨예한 대립 구도가 한순간에 없어질 수 없겠지만 양국이 서로 필요성을 인정하고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게 재일동포의 대체적인 견해다.

이들은 일본에서 뿌리내리고 살기 때문에 일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공생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뉴커머를 대표하는 단체인 재일본한국인연합회(회장 이옥순)는 지난 18일 민단과 함께 주일 한국대사관에서 '제1회 재일 한인사회 미래 혁신 포럼'을 열고 비즈니스 환경이 점차 악화하는 재일 한국인 사회의 돌파구 마련 방안을 논의했다.

이옥순 회장은 "일본인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한인 점포의 경영 환경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고 한일 간 비즈니스도 위축되고 있다"면서 "양국 관계가 개선되기만을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자구책 마련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고 포럼 취지를 소개했다.

양국 관계가 자신들의 생존권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기에 재일동포들은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 "양국 관계 개선에 정치권이 나서야"

"국교 정상화 50년을 계기로 양국 정상이 조속히 만나 화해와 협력을 논의하기를 바랍니다. 한일 관계가 좋으면 좋을수록 재일동포의 삶도 좋아집니다."

재일동포 사업가인 장영식 ㈜에이산(永山) 회장은 "언론을 통해 양국이 서로 비난의 수위를 높여가자 일본의 중도 세력마저 우익으로 기울고 있다"며 "정치와 경제·문화를 구분 짓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호소했다.

재일동포들은 "2015년이 양국 관계 개선에 절호의 기회"라며 한국 정부와 정치권에서 적극적으로 화해 분위기를 조성해 주기를 하나같이 바라고 있다. 재일동포의 다수는 한국 국적의 재외국민이므로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할 책임도 있다고 주장한다.

장 회장은 "영토와 과거사 문제로 중·일 관계가 안 좋다지만 일본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며 "우리도 정치 일변도의 입장에서 벗어나 유연한 사고를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일본의 우경화에 맞서겠다면서 주한 일본인을 공격하거나 차별하는 일도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일동포 1세인 서용달 모모야마가쿠인대 명예교수는 "경제 대국인 일본은 정주 외국인에게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는 등 관대함을 보이지 못하고 있어 국제사회로부터 질타를 받고 있다"면서 "재일동포가 차별을 받고 있으니 주한 일본인을 차별하겠다는 식의 인종주의나 국수주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 "양심적 시민단체와 연대하고 한국 알리기에 힘써야"

재일동포들은 일본의 우경화에 맞대응하기보다는 양심적 지식인이나 시민단체 등과 굳건한 네트워크를 쌓고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정남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하 민단) 사무총장은 "재특회(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에 대한 강경한 대응도 필요하지만 자칫하면 감정싸움으로 번져 불신의 골이 더 깊어질 수 있다"며 "한국에 대한 친근한 이미지를 퍼뜨려 우호 세력을 늘려나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민단은 한일 양국이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친선과 교류 활동을 이어왔음을 널리 알리기 위해 조선통신사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하 총장은 "조선통신사는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약 200년간 12차례에 걸쳐 일본에 파견돼 조선의 문화를 전파하고 상호 신뢰와 협력 관계를 쌓은 외교사절단"이라며 "2016년 등재를 위해 일본 지자체에서 여는 기념행사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분위기 조성에 힘쓸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민단청년회(회장 서사황)에서는 재일동포 차세대뿐만 아니라 일본인을 대상으로 '시민 공개강좌'를 열고 있다. 일본 극우단체인 재특회의 헤이트 스피치 문제와 더불어 '인권', '역사 인식', '국적', '다문화 공생' 등을 주제로 강좌를 열어 올바른 정보를 일본인과 공유하는 데 힘쓰고 있다.

서 회장은 "헤이트 스피치의 피해 대상자는 재일동포만이 아니고 일본 사회를 구성하는 모두"라며 "인종차별과 역사 수정주의를 용납하지 않는 강력한 시민사회 네트워크 구축에 앞장설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혐한·반한 정서의 밑바닥에는 상대를 몰라서 생기는 오해가 깔려 있다"며 "일본 주류 사회에 한국을 적극적으로 알리려면 차세대가 먼저 민족의식과 정체성을 굳건하게 세워야 한다"며 민족교육 강화가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 "정체성 죽이는 '귀화' 정책 바꿔야"

해마다 재일동포 가운데 1만여 명이 귀화해 일본 국적을 취득하고 있다.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식이 강해 한국 국적을 유지했던 1세대와 달리 2∼3세로 넘어오면서 일본 사회에서 살아가려는 방편으로 귀화를 선택하고 있다.

하 총장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귀화를 선택하면 동포사회에서 '민족을 버렸다'며 '매국노'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이제는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면서 "문제는 귀화하면 재일동포 사회에서 자취를 감추고 일본으로 동화돼 버리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 총장은 "귀화자가 자신이 한국계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차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며 "일본에는 아직도 '국제인권규약'이나 '인종차별 철폐조약' 관련 국내법이 없다는 것이 증거"라고 지적했다.

곽진웅 코리아NGO센터 대표는 "혈통주의가 강한 일본에서 외국인은 특수한 존재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귀화해도 여전히 외국인으로 본다"며 "차별을 피하려고 일본 국적을 취득했지만 한국계라는 것을 감추지 않는 한 여전히 차별을 받는 게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곽 대표는 "국적 여부와 신·구 정주자를 떠나 재일동포를 보호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며 "재일동포가 한민족으로서 당당하게 살려면 민족교육을 확대해 스스로 정체성을 확립하도록 돕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민호 통일일보 한국지사장은 "재일동포 사회가 일본으로 동화되지 않고 정체성을 유지하려면 지난 세월 이들의 고국 사랑과 후원, 풀뿌리 외교 노력을 평가해 자긍심을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면서 "재일동포 정책을 국적으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