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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의의 성채와 ‘야요리 정신’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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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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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출 / 도쿄특파원

위안부 문제 등 해결 평생 바친 저널리스트 ‘야요리상’ 수상식 훈훈
“국가 넘어 연대하라” 희망의 메아리 넘쳐

   
▲ 김용출 도쿄특파원
아시아 여성들과 연대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여성 및 환경 문제 등의 해결에 평생을 바친 저널리스트 마쓰이 야요리(松井やより). 일본 우익에게 ‘일본의 배신자’ ‘매국노’ 등으로 비판받던 그는 죽기 전 자서전 ‘사랑과 분노, 싸우는 용기’에서 젊은 여성들에게 “연대는 국경을 넘어 확대하라”고 당부했다.

12년 전 이즈음(12월 27일) 작고한 그가 올해 ‘야요리상’ 수상식(제10회)을 봤다면 아마 행복해했을 것이다. 수상식은 국가의 테두리를 뛰어넘은 이들의 노래로 메아리쳤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전할 이 글은 국가주의(nationalism)를 넘어서려는 아시아인에 대한 경의이자, 야요리에게 보내는 소박한 연서(戀書)쯤 되겠다.

지난 6일 오후 도쿄 와세다대 호시엔(奉仕園)의 2층 예배당. 이곳은 야요리가 생전 우익의 테러 위협에 잠시 몸을 숨긴 곳이기도 하다. 삼삼오오 사람들이 웃음을 담고 식장으로 들어왔다. 수트와 정장 차림이 대부분이었지만, 기모노와 한복을 입은 이도 보였다. 한 60, 70명쯤 모였을까.

먼저 이케다 에리코(池田惠理子)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WAM) 관장이 인사말을 했다. “지금 일본의 헌법이 개악되려 한다.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 가고 있다. 고통스러운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NHK 디렉터로 근무하다가 야요리를 만나 여성운동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올해 야요리상으로 중국의 여성 환경운동가 윈젠리(運建立)가, 야요리 저널리스트상으론 자이니치(在日) 작가 리신혜씨가 선정된 이유가 차례로 발표되고 상장이 수여됐다. 오하시 마사아키(大橋正明) 성심여대 교수의 야요리 회고와 신설된 영상홍보상 및 일종의 단시(短詩)인 ‘센류(川柳)’ 부문 시상도 있었다.

하이라이트는 수상자들의 연설. 윈젠리는 중국어로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적지만 힘을 합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 뒤 일본어로 “아리가토”(감사하다)라고 끝맺었다. 개량 한복을 입은 리신혜씨도 “여성과 어린이, 노인, 약자 등이 미래를 열 수 있도록 공헌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식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 와타나베 미나 WAM 사무국장이 야요리의 초상화를 들고 단상 쪽으로 다가왔다. 두리번거리며 초상화를 둘 곳을 찾자, 장내에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웃는 야요리 초상화는 뒤늦게 식장 입구 책상 위에 놓여졌다.

수상자에 대한 질의응답 시간엔 무거운 질문도 있었지만, ‘프레젠테이션에 왜 딸의 얘기가 들어갔는가’라든가 ‘인터넷에서 헤이트 스피치에 대응하는 방법’ 등 다양한 질문과 현명한 대답이 오갔다. 에피소드는 많았지만 사회자와 심사위원, 수상자, 질문자 모두 야요리와 야요리 정신을 얘기했다.

1961년 아사히신문 입사 후 싱가포르 특파원 등을 거쳐 1994년까지 아시아 여성 및 환경 문제 등을 취재해온 기자 야요리를. 정년퇴직 후 ‘자유를 찾았다’며 아시아 시민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서 ‘아시아여성자료센터’를 세우고 2000년엔 ‘여성국제전범법정’을 열어 덴노(天皇)를 유죄로 단죄한 그를 말이다.

특히 “한·중·일 지도자들은 싸우고 있지만, 우리는 연대해 끝까지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2010년 야요리 저널리스트특별상 수상자 간다 가오리(神田香織)의 말은 수상식을 상징하는 듯했다. 쉼없이 이어진 웃음소리와 약간의 비장함, 온몸으로 전해지는 진심들. 수상식은 수상자만이 아닌 모두의 행사로 바뀌었고, 음료와 과일 등이 들어오자 아시아 연대의 한마당으로 줄달음질쳤다.

그들의 희망가는 야요리의 당부.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현재의 인간관계만이 아니다. 오히려 글로벌이라는 횡적인 공간과 함께 역사와 미래라는 종적인 공간을 갖지 않으면 유효하지 않고, 의미도 없다.” 성채 같던 국가주의는 내동댕이쳐지고, 많은 ‘야요리들’이 희망의 포복을 이어가고 있었다. 흙속에서 팔 벌리며 꿈을 키우는 고구마처럼, 감자처럼. 회장 밖으로 나오자, 열도의 한파가 매섭게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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