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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애비 망향석’
동아일보  |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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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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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 국제부장

   
▲ 이진 국제부장
러시아 사할린 남부에 항구도시 코르사코프가 있다. 항구를 내려다보는 작은 언덕을 이곳 한인들은 ‘망향의 언덕’이라 부른다. 이 언덕 위에는 10m 높이의 거대한 조형물이 바다를 향해 우뚝 서 있다. 7년 전 세워진 ‘사할린 희생동포 위령기념 조각탑’이다. 줄여서 망향의 탑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막바지에 ‘동토의 땅’ 사할린으로 끌려간 한인은 15만 명에 이른다. 1938년부터 모집, 알선, 징용으로 형식은 달랐지만 아버지를 대신해 혹은 형을 위해 배를 탔다.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영하 40도와 폭설 속 탄광, 벌목장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돈을 벌어 가족을 다시 만나겠다는 희망이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1945년 일본이 패전하자 한인들은 코르사코프 항구로 몰려 왔다. 조국으로 가는 배를 기다렸다. 당시 한인 수는 4만3000명 정도였다. 일본은 패전 이듬해 30만 명 가까운 자국민들만 일본으로 데려갔다. 남겨진 한인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김문환 서울대 인문대 명예교수가 지어 망향의 탑 돌판에 새겨 넣은 글은 이렇게 전한다.

일본은 이제는 일본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소련 당국도, 혼란 상태에 있던 조국도/이들을 돌보지 못했습니다.

고향에 가족을 두고 온 한인들은 독신으로 살며 망향의 언덕에 터를 잡았다. 얼기설기 집을 짓고 서로 의지하며 살았다. 하지만 기대는 점점 절망으로 바뀌어 갔다. 술이 있어야 한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었다. 한인 2, 3세들은 이들 홀아비를 어눌한 한국말로 ‘올애비’라고 했다. 김 교수의 글이 이어진다.

굶주림을 견디며/고국으로 갈 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이윽고/혹은 굶어 죽고/혹은 얼어 죽고/혹은 미쳐 죽는 이들이 언덕을 메우건만

한국 정부는 1997년부터 한인 1세대의 영주귀국 시범사업에 나섰다. 광복 뒤 반백 년이 지나서야 손을 내민 것이다. 지금까지 4000명이 넘는 1세대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영주귀국 대상을 1세대로 좁혀 한국행을 선택하면 자식 손자들과 헤어지는 이산가족이 돼야 했다.

약 70년 전 귀국선은 끝내 오지 않았다. 50년이 지나서야 영주귀국 연락선이 가까스로 도착했다. 이젠 그 연락선마저 끊길 상황이 됐다. 영주귀국 사업이 내년에 종료되기 때문이다. 사할린의 1세대 1000여 명은 또다시 조국행 배를 타지 못할 위기에 놓인 셈이다.

사할린 유일의 한글신문인 새고려신문 최신호는 한국 정부가 지난달 6일 사할린에서 열었던 영주귀국 설명회 모습을 전했다. 귀국 사업이 끝나가니 설명회도 마지막이나 마찬가지였다. 신문은 박순옥 사할린주한인이산가족협회 회장이 “영주귀국을 희망하는 1세대 노인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사업을 계속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한 내용을 기사 말미에 실었다.

망향의 탑을 디자인한 최인수 서울대 미술대 명예교수는 배 모양을 선택했다. 한인들이 그토록 고대했던 귀국선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 ‘망향의 언덕’에/단절을 끝낼 파이프 배를/하늘 높이 세웁니다.

김 교수가 마무리한 기원과는 달리 사할린은 곧 단절의 섬으로 되돌아갈 듯하다. 시간이 지나면 망향의 탑은 한인들 가슴속에 망향석으로 굳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귀국 사업이 끝나는 내년은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 되는 해니 우연치고는 공교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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