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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교육 (19)열린 언론, 닫힌 언론
김삼오  |  oktim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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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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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오 / 호주한국일보 편집고문·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아래는 호주한국일보의 창간 5주년 기념 특집을 위하여 쓴 글입니다. 이 신문이 어려움을 딛고 창간 5주년을 맞게 된 것은 크게 축하 할 일입니다. 특히 신문이 한번도 중단 없이 나오도록 제작을 맡아온 실무자들의 숨은 노고를 치하하고 싶습니다.

신문에 이름을 걸친 사람으로서 그 면에 자화자찬(自畵自讚)을 늘어놓는 건 그렇고, 언론 관련 글 하나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1류 언론과 3류 언론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각 언론사가 내거는 사시(社是), 한국에서 ‘신문의 날’이나 ‘방송의 날’에 으레 나붙는 화려한 표어, 언론학자들이 즐겨 쓰는 용어들을 머리에 떠올려보면 그 기준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국민의 대변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 공평무사, 오직 진실만을 말하는 언론 등등 많습니다.

한 언론의 우열을 재는 잣대를 크게 제작의 전문성과 사회적 책임의 두 가지에서 찾는다면 위의 표현들은 대체적으로 후자 쪽인 게 보통입니다. 제작의 전문성을 내세워야 하는 언론사라면 가난한 3류 신문이나 몇 사람이 운영하는 FM라디오 방송국이기 쉽습니다.

웬만한 크기의 메이저 신문사라면 적어도 몇 백 명의 전문 기자, 전문 편집인, 전문 논설위원이나 칼럼니스트를 두고 있습니다. 방대한 시설과 인원을 필요로 하는 공영 텔레비전 방송사라면 말할 것 없습니다. 그런 막강한 언론사가 문장이 어색하거나 오자가 섞인 기사와 사설, 눌변의 앵커가 나오는 프로를 내보낸다면 금새 빗발치는 독자와 시청자들의 불평을 피할 수 없습니다.

외부의 강압과 유혹

그러나 한 언론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아닌가를 아는 것은 이와 크게 다릅니다. 사회적 책임은 양심과 거의 같은 말인데, 예컨대 고국의 저명한 인사들을 보면서 그들이 과연 더 양심적인가의 옥석(玉石)을 가리기가 어렵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정말 매국노라고 불러야 마땅할 사람도 애국을 하노라고 열변을 토하면 그렇게 들리는 것이 오늘의 사회입니다.

언론도 그렇습니다. 언론의 지면과 시간에 나오는 글과 주장을 보십시오. 모두가 옳으나 실상은 아닌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저는 언론사의 사시치고는 저팬 타임즈 (The Japan Times)의 것이 잘 되었다고 봅니다. ‘Without Fear or Favor’를 풀어서 말해보면 “우리 신문은 외부의 강압과 유혹, 어느 쪽에도 굴하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물론 이 슬로건은 저팬 타임즈 창작은 아닙니다).

한국의 언론은 과거 역할을 제대로 못한 책임을 거의 정치적 통제에 돌리고 사람들도 그렇게 이해하는 편이었으나 그건 일부 사실일 뿐입니다. 실은 외부의 강압보다도 양심을 달콤한 유혹과 바꾼 언론 소유자와 언론 종사자의 책임도 컸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도 언론이 그런 유혹에 눈이 팔려 딴 짓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밖에서 알 길이 없습니다. 누군가 편집국 안을 지켜보고 있거나 편집국에 걸려오는 전화를 도청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방영된 텔레비전 프로와 인쇄되어 나온 신문의 지면을 보고서는 숨은 배경을 알 수가 없습니다.

전문 언론인일수록 딴 짓을 하면서도 뉴스 보도와 해설과 사설을 겉으로 봐 그럴 듯하게 꾸미는 재간을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외형과 전문성에 있어 일류 언론이면서 사회적 책임에 있어서는 3류, 4류 언론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를 식별하는 벤치마크가 될 만한 몇 가지를 정해놓고 있는데, 그 한 가지는 한 언론이 외부인에게 얼마만큼 공정하게 열려 있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언론은 사기업일지라도 공적 자산입니다. 사회의 공기(公器) 또는 목탁(木鐸)이니 하는 좋은 말이 그것 아닌가요.

언론은 당연히 제작을 1차적으로 자체 인원에게 맡겨야 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공익을 위하여는 자사의 입맛과 입장과 다른 보도와 해설과 의견을 위하여 외부 인원에게 상당 부분 열려 있어야 합니다. 국민의 ‘매체접근권(access to media)’입니다. 신문의 오피니언 페이지와 방송의 청취자, 시청자 코너가 그 일을 합니다.

한국의 매체에 그런 페이지와 코너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공정하게 열려 있지 않습니다. 동질의 원고일지라도 편집국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실리고 아니면 안 실리는 일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어느 정도이고 왜 그런가를 이 짧은 지면에서 다루지 못합니다.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

한인사회의 매체환경과 직접 관련된 한 가지만 거론해보고자 합니다. 이 글의 초점이기도 합니다. 재정적으로 취약한 교포매체는 제작의 전문성 면에서 역시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외부 기고가에게 열려있는 지면만은 항상 넉넉한 게 사실입니다. 실을 만한 기고를 보냈는데 지면이 없다고 거절하는 일이 있던가요. 그 점에서 교포매체는 세계에서 아마도 가장 명실공의 자유언론 (Free press)인 셈입니다.

그 귀한 기회가 전혀 활용되고 있지 않습니다. 한인사회에서 교포매체와 가장 오랜 관련을 가져온 저로서 참 이상하고 걱정되는 것은 그런 대로 적지 않은 외부 기고나 교민 가운데 자체 커뮤니티의 공익적인 이슈를 거론하는 이가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모두가 슬기롭게(?) 비껴간다는 것입니다.

오피니언 페이지 가운데 빠져서는 안 되는 게 자체 사회의 실태와 장래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는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Letters to the Editor)’난입니다. 현재 이 난을 운영하는 교포신문과 간행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보내오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언론의 수용자로서 구성원의 지혜로운 참여 없이는 교포매체와 교포사회를 업그레이드 할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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