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현 / 한민족평화연구소장

어디서나 한국인 만나고, 한국말 쓰고, 한국 뉴스에 열 올리고. 그러다가 어느 날 카운티 정부에서 보내온 투표 통지서를 받는다. 깨알같이 적힌 투표 내용을 읽어보며 그제야 비로소 내가 미국사회에도 속한 사람인 걸 깨닫는다. '이 나라가 잘 되어야 하는데, 내 투표가 그런 일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라고 바라는 마음이다.

미국은 더 잘 살기 위해, 더 자유롭게 살기 위해 야망과 꿈을 좇아 이주한 이민자의 나라다. 우리는 무슨 꿈을 꾸며 여기까지 왔는가? 대부분의 한인들은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그저 그 정도의 꿈을 이루려고 이 땅에 왔는데 오늘 부는 바람은 겨울처럼 삭막하기만 하다. 대형 제조업체와 전국 규모의 유통업체 앞에 이민자들의 소규모 비즈니스는 속수무책이다.

최근 미국의 경제적 불평등이 100년 만에 최고수준에 이르렀다는 발표가 나왔다.

연방준비제도에 따르면 미국에서 저소득층이 상위 계층으로 올라가기는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워졌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미국은 결코 '아메리칸 드림'을 일굴 기회의 땅이 될 수 없다고 특단의 경고를 하고 나섰다.

중국으로 갔던 기업들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일자리가 늘어나고 셰일 가스 채굴 기술의 발달로 미국이 조만간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될 것 같다는 보도는 그나마 위로가 된다. 그러나 방위산업체 중심의 군산복합체가 백악관과 펜타곤, 의회까지 장악해 미국의 외교 안보 국방을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다 심지어는 미국 명문대학의 순위 결정도 군산복합체의 연구기금을 획득한 순서로 정해지고 있다는 학계의 보고는 섬뜩하게 느껴진다.

때마침 한미 양국이 한국군의 전시작전 통제권의 전환 시기를 사실상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한미 두 나라의 외교적 실패로 북핵의 고도화를 방치해 놓고는 '북핵과 미사일 대응능력이 필요해' 미국에 계속 작전권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그 논리대로라면 북핵이 존재하는 한 한국은 영원히 전시작전 통제권을 가질 수 없는 나라가 된다. 대선공약 파기야 한 두가지가 아니니 그만 두고라도 전쟁 시에 자기 군대를 자기가 지휘 통제하지 못하는 일은 너무 부끄럽지 않은가.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지켜준 고마운 나라인 것은 맞지만 그 미국의 뒤에 거대한 방산업체가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달라진다.

지난 주말에도 시애틀과 새크라멘토 등지에서 또 총기사고가 있었다. 사고가 나면 총기규제가 잠시 여론화되지만 이것마저 총기업자들의 강력한 로비 앞에 미국 정치인들은 결국 무릎을 꿇고 만다.

비록 소수이기는 하나 우리 한인 유권자만이라도 바른 투표권을 행사해야 한다. 미국 정치인 가운데서 돈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누가 과연 이 시대의 정신인 환경, 생명, 평화에 투철한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 그리고 무엇이 우리 이민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아메리칸 드림'이 한낱 '거위의 꿈'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