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일 /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남재일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박근혜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에 의혹을 제기한 일본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 가토 다쓰야가 검찰에 기소되면서 논란이 거세다. 여당 및 보수단체들은 국가원수에 대한 악의적 비방에 대한 정당한 조처로 환호한 반면, 야당과 진보언론은 국제적 상식에 어긋나는 국가적 망신이라고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산케이신문과 일본 언론은 물론 서구 언론 역시 언론탄압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보수신문과 지상파 방송은 논평을 자제하고 관망하는 자세다.

이 사안은 두 개의 다른 문제가 기묘하게 얽혀 있다. 청와대와 검찰은 산케이신문 보도를 일종의 외교문제로 보는 것 같다. 대통령의 명예와 국가의 품격이 손상됐으니 정부 차원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보는 것 같다. 극우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오랫동안 선정적인 혐한보도로 독자를 끌어들였다. 이번에 문제가 된 기사도 저급한 보도임에 틀림없다. 이 보도로 인한 대통령의 명예와 위신의 추락도 어느 정도 어림짐작할 수 있다. 대통령의 인격이 곧 국격인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국가 이미지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산케이신문의 보도를 외교적 문제로 보는 것이 전혀 설득력이 없는 건 아니다. 문제는 대응방식이다.

외신기자를 보도내용을 근거로 기소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언론보도의 내용에 대해 법이 형사적 처벌을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는 건 국제적인 상식이다. 그래서 검찰의 기소에 대해 즉각적으로 언론탄압이라는 항변이 국내외에서 터져 나온다. 관련 법률전문가들의 견해는 대체로 검찰의 기소에 부정적이다.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산케이신문 보도가 공익성이 없는 악의적 비방보도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보도 내용이 아무리 저질이라도 국가 재난 상황에서 대통령의 국정 공백에 대한 의혹 제기를 공적 사안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그 판단은 법원이 할 일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검찰이 승소해도 국가적으로 얻는 이득이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패소하면 보도로 인한 대통령의 위신 추락에 더해 언론탄압 국가란 이미지 손상까지 감당해야 한다. 승소해도 훼손된 명예가 온전하게 회복되거나 언론탄압이란 국제사회의 비난을 불식하기 어렵다. 오히려 사법부가 독립하지 못한 독재국가란 오명을 뒤집어쓸 가능성이 더 크다.

그래서 점잖게 일본과 국제사회를 향해 유감성명을 내는 정도에 그쳤으면 훨씬 유리한 외교적 입장을 확보할 수 있었는데,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런 간단한 계산을 청와대와 검찰은 안 한 걸까 못한 걸까?

그래서인지 애초에 국내 언론의 ‘위축효과’를 노린 정치적 기소가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온다. 산케이신문 보도의 출처가 된 조선일보 칼럼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보도행태가 저급한 산케이신문을 향해 돌린 게 아니냐는 거다. 또 국내 언론과 정권의 불화를 한·일 간의 갈등으로 돌려 대중들의 민족주의 감정을 언론통제의 동력으로 등에 업고자 한 계산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거다. 물론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개연성도 있다. 대통령 개인의 명예를 국가의 위신으로, 산케이신문 기자를 일본과 동일시하면, 산케이신문 보도를 일본이 한국을 폄훼하는 국가적 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떤 형태든 정부 차원의 대응을 생각할 수 있고, 검찰의 기소라는 해법이 나올 수 있다. 즉 개인의 자율성보다 국가를 앞세우고, 종종 대통령을 국가와 동일시하는 권위주의적 국가관이 이번 사태의 동인일 수 있다. 물론 국제사회의 평균적 인식은 이런 봉건적 감수성과 거리가 멀다. 현직 대통령 개인의 명예가 곧 국가의 위신을 대표하거나, 산케이신문의 보도가 일본의 입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검찰의 기소는 한국 정부의 공식적 입장으로 받아들여 언론통제 국가라는 인식을 갖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정치적 기소보다 더 위험한 것은 기소를 정당한 정책적 조치로 생각하는 정부 관계자들의 발상 그 자체이다.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카카오톡 검열과 같은 일련의 정책적 조치들이 나오는 뿌리도 바로 거기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