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식 /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

▲김두식 법무법인 세종 대표 변호사

물질 무게는 지구 중력에 의해 결정된다. 아무리 질량이 커도 끌어당기는 지구 인력이 작용하지 않으면 무게를 느낄 수 없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본질에서 벗어나 세상을 끌어당기는 힘을 상실한 교회는 존재감을 잃는다. 신자들이 떠나고 관광객들만 붐비는 유럽의 텅 빈 교회에서 캄캄한 우주공간 같은 공허함을 느끼는 이유다.

작은 시골 교회가 있었다. 성도는 30명 내외. 헌금은 얼마 되지 않고 담임목사 생활은 궁핍했다. 교회의 온갖 잡일을 혼자 다 해야 했다. 교회 재산 1호인 중고 승합차를 직접 운전하며 성도들을 실어 나르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그러면서도 항상 껄껄거리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는 낡은 단벌 양복을 걸치고 항상 쉰 목소리로 설교를 했다. 말솜씨도 없어 설교는 투박했다. 하지만 투명하고 청빈한 목사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설교는 진실하고 묵직했다.

예수 모습이 바로 그 시골 교회 목사님을 닮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예수도 가난했다. 성경은 예수를 `마른 땅에서 난 줄기처럼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다`고 묘사했다. 그런 예수였기에 오히려 말에 힘이 있었고, 비천한 자들의 목자가 될 수 있었다.

지난달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소형차 쏘울을 탔다. 권위를 벗고 소탈함을 상징하기 위한 것이었을 게다. 그러나 교황은 전 세계 11억 가톨릭 교도들의 수장으로서 대통령이 공항까지 나가 영접할 정도로 높은 권위를 갖고 있다. 세속적인 눈으로 보면 교황의 권위는 2000년 전 고향 사람들에게서까지 배척을 받았던 예수를 훨씬 능가한다.

그런 교황이 굳이 쏘울을 탄 것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껴안지 못하는 이 사회와 세속화한 한국 교회를 향해 뼈아픈 메시지를 던지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는 "청빈(淸貧) 서원을 했으면서도 부자로 살아가는 수도자들의 위선이 신자들 영혼에 상처를 주고 교회를 해친다"고 말했다. 교회는 부자들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교황의 메시지는 같은 하느님을 섬기는 개신교 교회들에도 통렬한 지적이었다.

한국 교회가 세속적 자본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출석 신도 수와 헌금 액수가 교회 부흥의 척도가 돼 있다. 교회가 세상을 닮아가고 있다. 교회 안에서조차 부자와 권세가들이 대접받고 가난한 이들은 주눅들어 한다. 그 결과 한국 교회는 바깥 세상을 향해 진리와 공의를 외칠 힘을 잃어가고 있다.

교회의 세속화는 교회의 대형화ㆍ사유화로 이어지고 있다. 교회를 자기 소유 기업처럼 여기는 목사들이 있다. 그래서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하려 하고 친족에게 이권을 떼어 주는 배임행위를 저지르기도 한다. 교회를 사명이 아니라 자산이라고 생각하는 목회자는 큰 차를 타고 과도한 월급과 은퇴비를 챙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권력과 명예까지 탐하여 치졸한 감투싸움도 불사한다. 그런 교회 지도자들에게서 낮은 자리에 임했던 예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

교회가 갱신되어야 한다. 자랑스러운 전통을 가진 한국 교회가 더 이상 조롱을 당해서는 안 된다.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순교한 주기철 목사, 두 아들을 죽인 청년을 양아들로 받아들이고 한센병 환자들의 피고름을 빨아내며 살다가 순교한 손양원 목사 같은 분들이 한국 교회의 뿌리다. 지금도 수많은 목사들이 자신의 편안함을 포기하고 낮은 자리에서 소외된 이들을 먹이고 보듬고 있다. 이것이 한국 교회의 본래 모습이다.

교회에서 물질주의 거품을 걷어내야 한다. 기득권을 움켜쥐고 맘몬신에게 마음을 빼앗긴 가짜 영적 지도자들은 속히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이것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쏘울을 탄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