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 / 백석예술대학교 겸임교수

문경새재 넘어 깊은 산골에 아버지를 모셨다. 일곱 살 어린 나이에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일본으로 건너간 아버지는 교토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졸업생 중 가장 먼저 ‘사장’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에 힘입어 서른도 되기 전에 큰돈을 만졌고, 그리고 고향을 찾았다. 그랬다. 아버지는 성공한 재일교포였다. 아버지께서는 급기야 고향에 집을 지었다. 1970년에 새마을운동이 추진되면서 초가집이 없어진 이 마을에 아버지는 자신의 ‘자수성가’를 파란 기와지붕으로 대변했다.

세월은 무산한 법. 나이 오십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 당신이 아끼고 가꾼 그 선산에 묻혔다. 도쿄의 작은 병실에서 숨을 거두고 한 줌 재가 되어 돌아온 그곳은 아버지의 마지막 안식처였다. 나도 동생도 어린 나이였지만 선산을 지키는 아재가 있어서 아무런 생각도 염려도 필요치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0년, 20년 아니 30년이 더 지났다. 이제는 서울에서 문경까지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출가외인’이라면서 잊고 산 지 오래다. 파란 기와지붕은 무너져 내리고, 선산 여기저기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무덤이 마구 생기면서 아버지 무덤조차 찾기 어려운 그런 곳이 되었다. 아버지 무덤을 지켜주시던 아재 역시 아버지 무덤 가까이 양지 바른 곳에 묻히고, 그 둘째 아들이 선산을 지킨다. 점촌 시내에서 조그만 사업을 하면서 소 키우랴 어머니 모시랴, 선산까지 돌보니 여간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다. 어쩌다 찾아가는 염치도 체면도 없는 이 사람을 반가이 맞아주니 참 고맙다. 맞아줄 사람이 없다면 어디 고향이라 하겠는가. 이 집 아들딸이 공부를 잘한다는 말에 늙은이 흉내를 내면서 “다 선산을 잘 돌보는 너의 덕”이라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이제부터가 문제다. 반평생을 일본에 사셨고, 지금도 일본에 살고 계시는 어머니는 윤달이라고 수의를 준비하시고 마지막 안식처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다. 큰아버지, 작은고모, 그리고 사촌들 중에는 일본에 귀화한 분도 계시고, 일본에 가족묘를 장만한 분도 계셔서 한국의 산소에는 관심이 없다. 이제 교포 3~4세쯤 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어머니는 한국 땅에 묻히시기를 원한다. 그야 남편이 여기에 있으니 당연지사 아닌가. 드센 잡초가 비석마저 숨기는 그런 곳에 어머니를 모시고 싶지 않다.

해외교포에게 고향은 죽어서 묻힐 수 있는 마지막 안식처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은 그들의 힘든 삶을 지탱할 수 있는 희망이었다. 아버지가 그랬고, 할아버지가 그랬다. 그런데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고향 땅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고향에 남아서 죽은 자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이건 비단 교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마지막 안식처에 두 다리로 걸어서 갈 수 없는 게 인간이다. 어머니를 어디에 모셔야 할지……. 아직 오래오래 훗날의 일이라 생각하지만, 어머니의 마지막 안식처는 내가 쉽게 찾아가서 세상살이 힘들다고 하소연 할 수 있는 그런 곳이었으면 좋겠다. 아버지도 모셔올 수 있는 그런 곳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