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진 / 연세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ㆍ전 주미대사

▲ 연세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 완화 정책을 표방하고 있다. 정부가 갖고 있는 기업이나 국민의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각종 규제들을 풀겠다는 것이다. 규제 완화는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 즉 정부의 지도보다 기업이나 국민 개개인 역량을 믿는다는 깊은 철학이 담겨 있다. 그러나 원만하게 추진되지 않는 듯하다. 안타깝다.

규제 완화와 작은 정부를 성공적으로 추진한 지도자로 레이건과 덩샤오핑을 들 수 있다. 레이건 대통령은 베트남 전쟁 후유증과 함께 밀어닥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비대해진 정부의 힘을 국민에게 되돌려 주어 기업과 국민의 활력에 의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작은 정부와 적은 세금 정책을 추진하였다. 수많은 대국민 연설과 정치권의 설득을 통하여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에 성공하였다. 오늘날 레이건이 광범위한 추앙을 받는 이유다. 워싱턴 공항도 그의 이름을 따서 개명하였다. 덩샤오핑 지도자도 국민 경제에 강력한 통제력을 행사하고 있던 정치권에 대하여 국민에게 경제활동의 자유를 돌려주자는 시장경제를 주장하였다. 정치권의 반대와 반발이 너무 심하여 이들이 장악한 베이징 언론에는 오랫동안 덩샤오핑이 추진하는 시장경제와 개혁에 대한 기사가 일절 게재되지 않을 정도였다. 덩샤오핑은 고심 끝에 선전 특구, 상하이, 홍콩의 힘을 빌리기 위한 `남순강화`를 통하여 결국 베이징 정치권과 언론을 시장경제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왜 규제 완화와 작은 정부는 좋은 것일까? 이 물음은 인간 본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 개개인은 자비심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이기심 또는 탐욕을 앞세우게 되어 있다. 그것이 인간 본성이다. 규제는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처음에 출발하였다고 하여도 대부분은 당초 의도와 달리 이를 다루는 담당자들이 책임을 회피하거나 사익을 위하여 이를 활용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한 번 만들어진 규제는 잘 없어지지 않고, 규제가 많아질수록 정부는 점점 커진다.

도덕경에 "정부 규제가 심하면 국민은 일을 할 수 없게 된다(其政察察 其民缺缺)" "법이나 규제가 요란할수록 도적이 더 많아진다(法令滋彰 盜賊多有)"며 큰 정부나 그 상징인 복잡한 법규와 규제에 대해 경고를 한 것은 이러한 인간 본성을 꿰뚫어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철학자 칸트는 "일찍이 인간성이라는 비뚤어진 재목에서부터 올곧은 일이 이룩된 적은 결코 없었다(Out of the crooked timber of humanity, no straight thing was ever made)"면서 공익보다 사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하게 되어 있는 인간 본성에 대한 탄식을 남겼다. 미국 헌법도 이러한 인간 본성을 고려하여 권력이 남용되지 않도록 견제와 균형 장치를 곳곳에 만들어 놓았다.

규제 완화나 작은 정부 지향은 아주 훌륭한 정책이다. 그러나 정책이 좋기 때문에 실현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 부족에 기인한다. 규제 완화는 인간 본성과 싸우는 것이다. 험난한 작업이다. 대부분은 규제 완화 대상이 되는, 즉 규제를 쥐고 있는 객체와 규제 완화를 추진해야 하는 주체가 같기 때문이다. 대개 규제 완화가 실패하고 작은 정부 대신 큰 정부가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규제와 부조리를 계속 방치하면 나라 경제는 활력과 경쟁력을 잃고 낙후하게 된다. 그런 나라는 사회 전체적으로 기강을 잃고 모순에 빠져 서로를 비난하는 일로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래서 어렵더라도 규제 완화는 꼭 해야 한다. 그러나 규제 완화라는 개혁은 인간 본성이 이에 반대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또 객체와 주체가 같기 때문에 아주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통찰력과 함께 시작되어야 한다. 그 추진에 비상한 결의와 치밀한 계획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