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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교육 - (15)통일준비위원회, 이번에는 뭔가 다를까
김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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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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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오 ㅣ 호주한국일보 편집고문

   
▲ 김삼오 호주한국일보 편집고문
1940년대의 미국 언론도 우리처럼 극심한 혼란을 겪고 국민의 지탄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서 태어난 것이 언론자유위원회(Commission on Freedom of the Press, 1947)와 그 결과물로서 위원회 의장 이름을 단 이른바 헛친스보고서 (the Hutchins Report)입니다.
헨리 루시 당시 타임-라이프 발행인이 로버트 허친스 시카고대학 총장에게 의뢰해서 그를 의장으로 하는 12인의 학자와 전문인 팀이 4년간의 연구 끝에 내 놓은 미국 언론의 실태와 대안을 정리한 이 종합보고서 작성은 미국의 언론발전사에 획을 그은 사건으로 지금까지 여겨지고 있습니다.

오늘 이 글의 초점은 언론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보고서는 선진국 언론을 따라 우리 언론도 금과옥조(금科玉條)로 내세우는 사회적 책임이란 개념을 탄생시켰지만 지금에 와서 새로울 것은 없습니다. 한국에서 과거 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이런 저런 멋진 이름을 붙여 출범시킨 많은 위원회들, 지금도 이어지는 그 행정 관례에 대하여 쓴 소리를 해보기 위한 서두일 따름입니다.

특히 최근 한국에서 대통령 직속 기구로 설립된 통일준비원회 보도가 이 글을 쓰게 만들었습니다. 한국인에게 있어 통일은 지상 최대 과제입니다. 그 통일을 위한 정책을 정부가 주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국민의 힘이 한데 모아지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는 목표이며, 지금처럼 권력에 대한 불신이 크고 국민통합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는 실현 불가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분야에도 헛친스보고서와 같은 순수 민간 차원의 실태와 대안을 다룬 총합적 보고서가 나와야 합니다.

먼저 떠오르는 게 대학입니다. 한국에 거의 350개의 대학이 있습니다. 도시야 말할 것 없고 군 단위로도 한 두 개 씩 있습니다. 대학에 돈이 없다고요? 어려운 군소 대학들은 그렇겠지요. 그러나 큰 대학들은 엄청난 돈을 부어 캠퍼스를 늘려 왔습니다. 그리고 평생 떡 장사를 해서 근근이 모은 돈 3억 원을 쾌히 희사하는 독지가도 적지 않습니다. 동문회 조직을 통하여 거치는 기금도 천문학적입니다.

그런 돈을 아껴 대학들이 단독으로 또는 공동으로 정부와는 독립해서 통일에 대한 먼 장래를 내다보는 이론과 지혜로 국민들에게 길을 밝히고 합의에 이르게 하는 권위 있는 보고서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때까지 그런 게 나온 적이 없습니다. 학생 정원이나 직원만을 늘리는 북한학과나 통일연구소의 난립, 그리고 거기에서 나오는 틀에 박힌 학술 보고서나 전문가 개인들이 쓰는 칼럼으로 그런 일을 못합니다.

대학에서 행정학과 정부조직법을 공부하신 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행정 위원회 제도라고 불리는 이 기구 운영은 영미국가의 그것을 본떠온 것입니다. 그 기구는 상설인 경우도 있고 큰 과제나 새로운 이슈가 생길 때마다 한시적(ad hoc)으로 신설되는 등 여러 형태가 있습니다.

어느 경우나 위원회의 존재이유(raison de’tre)는 특별히 주어지는 임무와 그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게 보장되는 독립성(보통 정부 간섭으로부터)입니다. 대개 예산을 감당하는 정부가 산파 역할을 하되 운영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법으로 보장된다는 것입니다. 호주를 포함한 영미국가에서 흔하게 보고 듣게 되는 여러 정부 분야의 무슨 무슨 커미션과 필요할 때마다 정부가 위촉하는 특검에 유사한 로열 커미션(Royal Commission)은 대표적인 그런 예입니다.

중진급 인사

그런데 선진국의 어떤 좋은 제도도 도입만 하면 잘 된다는 보장이 없음은 우리의 현대사가 잘 증명한 바입니다. 제도는 먼저 필요한 법령의 구비와 기구 설립을 전제로 하지만 그 것들을 관장하고 운용하는 사람이 성공 여부를 좌우합니다. 고국에서 그간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새로 만들어져 유명무실하게 존재했거나 자율과 독립은커녕 정부의 시녀 노릇을 하다가 없어진 위원회가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런 선례가 전통으로 굳혀졌다면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그간 정부는 통일 준비를 위하여 필요한 기구와 제도는 모두 만들어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행정부처로서 통일부와 그 아래 통일연구원이 있고, 민주평통자문협의회란 이름으로 전세계 동포사회에까지 통일 노력을 위한 기반들을 넓게 구축해놓았습니다. 그리고 언급한대로 대학과 언론사마다 북한학과와 통일문제연구소 등을 두어 자율적으로 자료 수집과 연구를 활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통일에 대한 지식과 정책과 열의가 모자라 남북관계가 꼬이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왜 또 막대한 예산 들여 새로운 기구인가요? 통일정부 인사와 함께, 보수와 진보 성향의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해 정파와 이념을 떠나 통일을 논의할 수 있게 된 게 과거와 다르다고 하나, 그게 무슨 뾰족한 수가 될까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으나 사사건건 부정적이라는 말을 들을까 봐 망서리던 중 서울의 한 기자가 저와 거의 비슷한 생각을 이미 칼럼으로 썼습니다.

이른바 중량급 인사로 된 정원 50명 가운데 30명은 민간 위원으로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이 분야 정책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던 사람이 여럿 포함돼 있다고 합니다. 여담이지만 그 정권 때 굵은 자리를 했던 분들이 나와서 그간 대부분 석좌 교수를 했더군요. 그 아래 구성되는 60여명에 이르는 분과별 전무위원들도 비슷한 구성입니다.

우리의 남북관계는 이래도 저래도 조금도 안 바뀌는 참 특이한 데가 있습니다. 매(hawk)파로 불리는 강경론자, 또는 비둘기(dove)파인 유화론자 어느 쪽을 앞에 내세우든 북한은 겉으로는 몰라도 속으로는 끔쩍 안하고 ‘우리 식’ 그대로의 길을 밟아 왔습니다. 이건 지난 수 십 년 동안 현실로 나타난 남북한 관계의 역사가 웅변적으로 증명했습니다.

북한의 정치와 사회의 체제를 생각하면 그건 너무 당연합니다. 3대, 4대를 할아버지, 아들, 손자, 증손자 순의 세습으로 정권을 이어가는 나라가 21세기 대명천지에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 정권이 무너진다면 결과는 불을 보듯 합니다. 그러니 북한은 죽든 살든 한 길로 가야지 다른 선택이 없습니다.
국시의 이변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파격적인 햇볕정책이 북한의 외투를 벗게 하지 못한 이유입니다. 그 때 해본 사람들이 새로 끼였다고 뭐가 달라질까요? 제 생각으로는, 북한이 뭐라고 말하고 무슨 짓을 하든 쳐들어오지만 않는다면 내버려두고 내치(內治)에만 힘을 써야 합니다. 과거나 오늘이나 모두 유비무환(有備無患) 아닌가요.

우리 정치에는 매 새 정권 출범 때마다 보은(報恩) 인사라는 게 있어 왔습니다. 알게 또는 뒤에서 모르게 대선을 승리로 이끈 공신들에게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새 기구를 만들기도 하고 기존의 자리를 뺏는 걸 일삼았습니다.

그간 늘 들어온 말에 따르면 새 대통령이 이래 저래 새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자리 수가 몇 만 명이 된다고 합니다. 대통령을 해보지 못했으니 잘 모르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들어서자 임기를 반도 채우지 못하고 자리를 떠난 제가 아는 한 기관 이사장의 말이 떠오릅니다.

엽관제도

상부에서 “부하들을 이런 저런 이유로 불러 족치는 것은 나가라는 뜻이다. 어떻게 그냥 버티고 앉아 있을 수 있겠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정말 달라지자면 선거 때마다 자기 사람을 심고, 그런 틈을 노려 줄을 서는 기회주의자가 설치는 풍토가 사라져야 합니다. 이번 보궐 선거에 고무된 현 정권은 더 과감하게 더 많은 기구를 만들고 더 많은 논공행상(論功行賞) 인사를 하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미국 정치에도 엽관제도(獵官制度/spoils system)라는 게 있습니다. 선거에 승리한 집권당이 전리품의 나눠 먹기라고 할까, 아니면 좋게 봐 내세운 정치 이념과 정책을 이끌어 나가기 위하여 각료와 한정 된 수의 실세 자리를 자기 사람들로 채우는 관례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영미권이나 다른 선진국의 경우 인원 교체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실세 정치적 임명직에 한정되는 데 반하여 한국은 그 폭이 중간층 행정 및 관료직 과 심지어 말단까지 넓게 미친다는 것입니다. 정치는 법과 제도가 아닙니다. 오랜 전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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