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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인 몬트리올한인회 회장, 그는 누구인가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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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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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인 캐나다 몬트리올한인회 회장

“이름 있는 교포들처럼 큰 사업체를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지명도가 높은 자리를 꽤 차고 활동하는 사람도 아닌데 좀 쑥스럽습니다.”

재외동포재단의 차세대사업과 관련해 업무협의차 방한 한 김광인(55세) 캐나다 퀘벡 주 몬트리올한인회 회장에게 인터뷰 요청했을 때의 반응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는 사회에서 명예와 개인의 영달보다는 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한인회장들을 알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본국에 전하기 위한 인터뷰라는 설명에 선뜻 응해주어 그와의 만남이 이뤄졌다.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모습은 마치 영화배우를 영상케 한다. 타고난 잘난 맛에 살 법도 한데, 몸에 밴 겸손함이 그에게서 묻어났다.

유럽향취 물씬 풍기는 캐나다 몬트리올 정착하다

“우연히 방문한 몬트리올의 이국적 풍경과 아름다움에 매료돼 그곳에 정착하게 됐어요. 아이들 공부 가르치기에는 그만한 도시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살다보니 벌써 20년이 다돼 갑니다.”

김 회장이 캐나다 몬트리올로 이민을 떠난 것은 1996년이다. 벌써 18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이들 유학을 위해 떠났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손주까지 봤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한창 왕성한 활동을 펼칠 본인의 나이에 비해 장성한 큰 아들은 결혼해 아이를 낳았고, 둘째 아들은 결혼적령기에 접어들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사실 김 회장은 캐나다 이민보다 훨씬 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 적이 있다. 1989년 처남과 친척들의 초청으로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가 5년만인 1994년 귀국을 했다. 그 후 한국에서 모 제과점을 운영하다 우연한 기회에 후배가 살고 있는 몬트리올을 방문하게 되면서 그곳에 정착하기로 마음먹고 기업이민을 떠났다고 했다.

“몬트리올은 유럽의 분위기를 연상케 하고 있어서 전혀 낯설지 않았고, 현지 사람들의 기질도 한국 사람들과 비슷해 겨울철 날씨가 춥다는 것 외에는 정착하기에 큰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애들 교육시키기에는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2013년, 몬트리올 세계장애인수영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는 김광인 회장.


김 회장은 이민 후 아이들 교육에 전념하며, 틈틈이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사업을 전개하기도 했다. 그러다 작은 가게를 하나 인수해 가게를 오픈했다.

“젊다는 패기 하나 믿고, 지게라도 지겠다는 각오로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사업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큰돈은 벌지 못했지만, 욕심 부리지 않고 현실에 자족하며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간직하며 살아온 것이 무엇보다도 보람된 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회장의 몬트리올에 대한 자랑은 계속됐다. 그만큼 살기 좋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몬트리올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프랑스어권 도시다. 세인트로렌스강 뒤로 펼쳐진 역사적인 석조건물과 고층빌딩들, 청춘들의 유희가 조화를 이룬 모습은 유럽 파리를 연상케 한다.

몬트리올(Montreal)은 프랑스어로는 몽레알이라고 한다. 남부의 세인트로렌스강(江) 어귀의 몬트리올 섬에 있는 캐나다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1535년 프랑스인 J.카르티에가 발견한 이래 모피교역의 중심지이자 내륙탐험의 기지가 되었으며, 현재는 유럽과 캐나다 각지를 연결하는 교통의 중계지이다. 17세기 무렵부터 100년간 프랑스의 지배를 받아오다 18세기 후반 영국령이 되기도 했다. 프랑스와 영국 문화가 어울려 있는 캐나다의 대표적인 문화관광 중심지이다.

이곳에 체류하고 있는 한인들의 숫자는 공식집계 상으로는 7천여 명이지만 최대 1만3천여 명이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캐나다의 다른 도시 밴쿠버나 토론토 등은 한인들의 역이민이 일어나고 있으나, 몬트리올은 오히려 한인 이민자가 계속 늘고 있다는 것이 김 회장의 설명이다. 몬트리올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김 회장의 정체성 세우기와 활동은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다.

한글학교를 중심으로 한 정체성 살리기

“몬트리올 한인사회는 가능성이 많은 곳입니다. 많은 기회가 보장된 이곳에서 우리 기성세대들이 할 일은 한인2세, 나아가 후세들이 주류사회에서 더 큰일을 펼칠 수 있도록 손과 발이 되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광인 회장이 몬트리올한인회 회장에 취임한 것은 2012년 12월이다. 단독 출마해 정기총회에서 인준을 받았다. 한인회장이 되기 전에는 캐나다 ‘퀘벡주한인실업인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인실업인협회 활동이 자연스럽게 한인회 활동으로 연결된 것이다.

   
▲ 몬트리올한인회 신년하례식 광경.

김 회장이 퀘벡주한인실업인협회 회장으로 활동하던 당시만 해도 회원이 약 150여명에 이르렀다. 지금은 훨씬 많아졌다. 캐나다는 사회보장제도가 잘 돼 있어 이민자들이 정착하기에는 안성맞춤이라고 했다. 큰 부자는 별로 없지만 적은 규모의 사업을 위주로 하는 한인기업인들이 적응하기에는 쉬운 편이라고 했다. 이들 퀘벡주한인실업인협회 회원들의 경우 한인회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 교민사회 화합에 일익을 담당하면서 ‘작지만 멋진 한인사회를 만들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 회장에게 한인실업인협회와 한인회에서의 활동이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
“한인실업인협회보다도 한인회 이끌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한인실업인협회는 회원들과 함께 관련된 행사나 모임을 실시하면 되지만 한인회는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단체이기에 대내외적으로 신경 쓰고 추진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에 훨씬 힘들고 표는 나지 않습니다. 물론 보람도 크지만요.”

김 회장의 몬트리올한인회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몬트리올한인회가 작은 단체이긴 하지만 어느 도시보다 보여줄 수 있는 비전이 많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이 한인회를 이끌면서 가장 역점을 두고 펼치고 있는 일중 하나는 정체성관련 사업이다. 차세대육성의 성패에 한인사회의 미래가 달려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체성관련사업 중 김 회장은 한글학교 운영에 적극적이다. 한인회산하에 차세대를 위한 ‘몬트리올 한얼・한국어학교’를 두고 있다. 주말에 이뤄지는 한글학교에는 현재 약 80여 명의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특별활동으로 태권도와 불어, 중국어 등을 가르치기도 한다.

김 회장은 회장 취임 후 지난해부터 한인자녀들에 대해서는 한글학교 회비를 받지 않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의 수고와 재외동포재단을 통해 받는 보조금으로 어렵지만 모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김 회장은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간의 대화도 이 한글학교를 통해 접점을 찾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인사회 내에 부모와 자식 간 진정한 대화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정체성 기반 없는 교육을 시킨 결과가 아니겠냐.”고 반문한다. “자녀들에게 다가오도록 요구만 하지 말고 먼저 다가가서 ‘(정체성부분에서)이것은 이렇다’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있어야 하고, 우리세대에서는 이런 점이 문제였으니 너희세대에서는 새롭게 길을 모색하라”고 이야기 해 주는 것이 산교육이라고 했다.

“사업으로 큰 성공을 해서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것도 좋지만, 이민을 온 이상 현지사회에 잘 정착해 후세들에게 ‘너희는 누구다’라는 정체성을 심어줄 필요가 있고, 자녀들에게 조국이 큰 전쟁을 겪었고 아직도 정전된 상태로 분단돼 있다는 것을 인지시켜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세대들과 정체성을 공유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뭐가되라고 하기보다 정체성, 인성교육을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김 회장은 정체성 없이 자란 교포2세들을 간간히 보게 되는데, 정규학교를 나오고 실력을 인정받아도 주류사회나 다른 소수민족들이 바라보는 시선은 늘 본인의 정체성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2세들이 많다고 했다. 이들이 주류사회에 진출한다 해도 정체성문제로 후회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김 회장은 교포자녀들에게 정체성을 심어주는 역할이 한인회의 기본적인 역할임을 재삼 강조했다.

숙원사업인 한인문화센터 건립을 향하여

몬트리올한인회도 여느 한인회와 마찬가지로 한인회관건립이 숙원이다. 모든 한인 커뮤니티의 중심지가 될 수 있고, 한인정체성 및 활동 프로그램의 근거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몬트리올한인회는 한인교회 한켠을 빌려 한인회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사용상 많은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 재외동포재단의 2014년 'OKFriends 청소년 공공외교단' 연수단 일행 15명이 몬트리올한인회를 통해 홈스테이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김광인 회장이 한인회장에 취임하기 전 몬트리올한인회는 한인회관건립을 위해 2004년 ‘벽돌쌓기운동’을
시작해 2006년 6만 달러의 기금을 모으기도 했으나 이후 크게 진전시키지 못했다. 김 회장은 올해 한인회관건립추진위를 새롭게 구성해 장기적 차원으로 이를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어 김 회장은 지금 현안이 되고 있는 퀘벡주정부의 소수민족을 위한 불어교육 지원금과 관련해 기존 진행하던 측과 약간의 갈등이 있지만 한인회를 중심으로 발전적인 방향으로 확대해 나갔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퀘벡주정부 불어교육 프로그램이 한인회와 별도로 진행됨에 따라 한인회는 자체 프로그램만을 운영함으로써 주정부의 간섭 없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과 할 수 있게 됐고, 공간사용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새로 온 이민자들을 위한 영어나 불어강좌, 외국인을 위한 한글반 운영 등은 일반학원보다 저렴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했다.

자체 한인회관이 없는 상황에서는 다른 건물을 빌려 쓸 수밖에 없고, 한인회 재정상황이 열악하다보니 김 회장 자비로 세를 감당하고 있다고 했다.

“한인회는 사무실 하나만 있어도 유지될 수 있지만, 교민사회를 위한다면 한인회관은 필수적이죠. 교민을 위한 여러 가지 활동과 프로그램의 터전이 되기 때문이죠. 특히 몬트리올은 문화의 도시이기 때문에 한인들이 함께할 수 프로그램을 위해서는 공간이 우선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많은 한인차세대들이 회관을 찾도록 만들 것입니다.”

한인회 활동은 한인회관의 존재여부에 따라 활동의 폭이 달라진다. 그 중심 역할에 한인회장이 서 있음은 물론이다.
김 회장은 활동중심의 장이 될 한인회관건립에 집중하고 있지만, 한인들의 현지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진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인들이 당당히 권리를 누리고 요구하려면 적극적으로 현지 선거에 참여해야 하고, 정치력신장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한인회와 한인들의 역할에도 불구하고 본국의 역할은 크게 미흡한 것 같다고 말했다.
 

   
▲ 김광인 회장이 한인차세대 네트워크 관련 행사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본국이 할 일은 우리 교민들이 현지사회에 잘 정착하고, 주류사회에 진출해 영향력을 발휘하며, 교포2세들의 정체성 함양에 기여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면 되는데, 한인사회를 위해 뛰고 열심히 달리는 한인회장보다는 유명무실한 직함을 가진 사람들을 더 챙기고 있으니 한인회의 위상이 서지 않는 것 같습니다.” 본국의 엇박자 정책에 대한 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회장의 한인사회단합과 한인회활성화에 대한 열정은 차고 넘친다. 이차적으로 이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한 터전이 될 수 있는 한인회관건립은 한인들의 숙원사업이 되었다.

몬트리올 세계박람회 한국전시관 살리기

1966년 몬트리올 세계박람회 때 세워진 한국전시관은 유명 건축가 고(故) 김수근 씨의 작품이다. 몬트리올 시에서는 한국과 독일 전시관만을 남기고 모두 철수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만큼 한국전시관에 설치된 작품들에 대해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한국전시관에 설치된 김수근 씨의 작품 ‘탑’은 한국적 가치를 지닌 독특한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퀘벡주정부가 그 가치를 인정하고 보존하기로 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러나 몬트리올 시내 중심지에 흉물처럼 방치돼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김 회장은 한국전시관 보수・관리를 위해 몬트리올시 관계자와 이 문제에 대해 협의 중에 있다. 또 이를 한국홍보전시관으로 활용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이 문제는 한인회만의 힘으로 될 수 없기에 한국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원하고 있다고 했다. 몬트리올시에서 영구보존하겠다고 했지만 재정문제 때문에 방치해 두고 있어서 캐나다와의 협의가 우선적으로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

“한인회 등에서 아무리 큰 행사를 한다 해도 한쪽에서 있는 한국전시관이 무너지고, 흉물처럼 돼 있다면 큰 낭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기회에 한국전시관을 새롭게 고쳐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몬트리올의 한국 상징물이 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몬트리올 한국전시관 살리기는 한인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김 회장이 한인회의 주요 활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항이 되었다. 몬트리올한인회는 지난해 총영사관과 6.25참전용사전우회와 더불어 ‘한-캐 수교 50주년’을 맞이해 몬트리올에서 ‘한-캐 수교50주년 기념식’ ‘국전참전캐나다용사’ ‘평화의 사도 메달’ 전달식, 차세대 한인네트워크, 대한민국해군 순항훈련전단 입항 등의 행사에 참여했다. 특히 해군 순항훈련전단으로 대조영함과 화천함이 입항해 대대적인 교민들의 환영을 받았고, 한인회의 주선으로 시가행진도 펼쳤다.
 

   
 
   
▲ 몬트리올에 입항한 대조영함을 환영하는 교민들이 대조영함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 회장에게 한인회장으로서의 신념과 향후 계획에 대해 물었다.
“한인회장 직함과 명예만을 쫓다 임기만 마치고 가는 그런 한인회장이 아니라 교포2~3세들이 정체성을 가지고 주류사회에서 당당히 살아가도록 발판을 마련해 주는 것이 한인회장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한인회에 봉사하신 분들의 수고와 공적이 헛되지 않도록 후임자에게 모범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김 회장은 거창한 계획보다는 맡은 일에 충실하면서 한인사회 단합을 위해 보다 많은 교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본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차세대를 위한 한인사회 변화와 개혁에 방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김 회장은 부인(윤정숙)과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다. 몬트리올이 ‘북아메리카의 파리(paris)’불릴 정도로 프랑스 문화와 풍습들이 남아있어인지 자녀들 또한 불어를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고, 한국어와 영어까지 3개 국어에 능통하다.

한인회장 취임 후 가족들의 반응은 어떤지 물었다. “한인회 활동에만 신경 쓴다고 아내로부터 황혼이혼 할 수 있다는 위협(?)을 당하고 있다.”며 활짝 웃었다.
지난 4월에 발생한 ‘세월호’ 침몰 참사와 관련해 김 회장은 교포 한 사람으로서 한없는 슬픔을 느낀다고 말했다. 몬트리올 한인사회 뿐만 아니라 해외교포들의 심정이 다 마찬가지 일 것이라고 했다.

“유가족만큼 슬프고 화가 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한인사회도 조금이나마 참사희생자를 애도하고, 유가족들의 아픔과 슬픔에 동참하기 위해 합동분향소를 설치했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한 원인규명과 조사, 책임자의 처벌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김 회장은 일의 결과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지켜볼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인터뷰 말미에 김 회장은 큰 서류봉투에서 한글학교관련 교재를 꺼내 죽 늘어놨다. 국내 한 출판사로부터 한글학교 학생들에게 나줘 주라고 받은 샘플이었다. 김 회장은 교재를 얻게 돼 너무 감사하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개인의 영달에 매달리는 일부 한인회장들의 모습과는 달리 사심 없이 한인사회와 차세대 한인들을 위해 뛰고 달리는 김광인 회장의 모습에서 캐나다 몬트리올 한인사회의 미래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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