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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백자의 사람’ 그리고 재일동포 '하정웅'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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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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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백자의 사람'

[한국NGO신문] 은동기 기자 = 13일 오후 3시, 서울시립미술관 세마홀. 일본 문학에 조예가 깊은 지인, 박종균 선생으로부터 2년 전에 개봉되었던 한・일 합작영화 ‘백자의 사람’이 상영된다는 연락을 받고 반가운 마음에 시립미술관으로 향했다.

일본의 유명작가가 조선을 사랑했던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의 실화를 소설로 쓴 이야기를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했던 박 선생을 만나 우여곡절 끝에 소설이 영화로 제작된 저간의 사정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뜻밖에 재일동포 2세 화가 하정웅 선생을 만났다.

‘백자의 사람’. 조선의 예술과 삶 뿐 아니라 조선 민중까지도 사랑하였기에 조선의 흙에 묻힌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를 그린 일본 소설, 『백자의 사람, 조선의 흙이 되다』를 영화로 제작한 작품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조림학을 배우고 조선 총독부 산림과에 근무하였던 임업인이자 최초의 한류 팬으로 기록되는 아사카와 다쿠미를 주제로 한 영화로 일본과 한국에서 2012년 6월과 7월에 각각 개봉되었다.

이 소설의 저자 에미야 다카유키는 1948년 이 소설의 주인공인 아사카와 다쿠미의 고향인 야마나시 현에서 태어나 주오(中央)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후, 야마나시 일일신문사(山梨日日新聞社)의 문화부 기자로 일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하여 제13회 역사문학賞을 수상한다. 그의 두 번째 작품인 ‘백자의 사람 조선의 흙이 되다’]로 나카무라세이코賞을 수상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일본문부성 선정 고교생 필독서가 된다.

   
▲ 『백자의 사람, 조선의 흙이 되다』 번역가 박종균 씨 © 한국NGO신문

1994년 이 소설을 번역한 박종균 씨는 한국외대 일본어과를 수석 졸업, ROTC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대한항공 미국 앵커리지 지점장을 지냈다. 특히 일본문학에 조예가 깊은 그는 현재 ‘아사카와 다쿠미 현창회’의 감사를 맡고 있다.

그는 영화제작 과정에서 애로가 많았음을 토로했다. 한일합작으로 제작키로 하고 양측에서 모금을 진행했지만, 마침 2010년이 한일합방 100년째 되는 해여서 국내에서의 모금이 어려웠고 영화 개봉 후에도 반응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박 감사는 “일본에서는 이 영화가 흥행순위 2위까지 오르기도 했다”면서 “우리가 과거의 역사에 너무 얽매여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안타까워했다.

<영화 줄거리>

일본에서 더 유명한 한류스타 배수빈이 출연한 영화 ‘백자의 사람’은 100% 실화에 기초하고 있다. 유복자로 태어난 다쿠미. 그의 어머니는 3남매를 데리고 대한해협을 건너 조선에 정착한다. 아사카와 다쿠미는 조선 총독부 산림과에 임업인으로 근무하며 당시 조선이 러시아와 중국, 일본에 의해 산림이 남벌되고 산림자원이 약탈당하여 조선의 산들이 모두 민둥산이 된 것에 비통해 하며, 조선의 숲과 산을 푸르게 가꾸기 시작한다.

또한 당시 조선의 고려청자, 분청사기, 조선백자 등 도자기들은 미국, 일본 및 서구열강의 도자기 수집가들에게 도굴당하여 밀반출되는 현상을 보며, 다쿠미 형제는 조선의 문화재를 조선 땅 안에 지키기 위해, 일본의 민예연구가이고 미술평론가이자 종교철학자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과 함께 조선민족미술관을 건립한 후, 도자기를 수집해 모두 이곳에 기증한다.

다쿠미는, 일제강점기하에서 급속히 사라져가는 조선의 목공예·도자기에 대한 책을 쓰는 한편, 조선의 민둥산을 푸르게 하기 위한 식목일 행사 준비 중, 과로로 인해 젊은 나이에 급성 폐렴으로 순직했으며 지금 서울 망우리에 묻혀 있다. 이 영화를 통해 인종과 국경을 초월한 그의 조선 사랑을 감동 깊게 느낄 수 있다.

<재일동포 화가 하정웅 선생>

마침 이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깊숙이 관여해온 수림문화재단 이사장인 재일동포 화가 하정웅 선생이 참석하여 이 영화와 관련한 얘기와 그가 살아온 과정 등 관람자들과 소통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 재일동포 화가 하정웅 선생 강연모습,  ©김주연

그는 재일동포 2세 화가로 그가 평생 모아온 수천 점의 작품들을 조국에 아낌없이 기증한바 있다. 역사적으로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되어 어두운 질곡의 역사를 살아온 그의 예술을 지배하는 정신은 ‘기도와 망향, 그리고 평화’로 압축된다.

그는 시청 앞 세월호 희생자 조문장에서 조문하며 눈물이 났다면서 “우리는 문명국가이고 문화가 발달한 국가로 알았는데 어떻게 이 같은 참사가 일어났는지 안타깝다”면서 “후세들에게 도덕과 윤리, 그리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를 많이 가르치자”고 강조했다.

그는 후쿠시마에 쓰나미가 몰아쳐 원전이 파괴되던 지옥 같던 시기에 한국의 지인들로부터 “빨리 일본을 빠져 나오라”는 전화를 많이 받았다면서 “그러나 나는 이 영화의 주인공인 아사카와 다쿠미가 조선에서 죽었듯이 일본에서 죽겠다”고 다짐한다. 그는 현재 수림문화재단 이사장을 맡으며 각종 강의를 통해 민족문화를 전하는데 힘쓰고 있다.

아사쿠마 다쿠미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아사카와 다쿠미 현창회’ 백조종 부회장은 “국내 상영 당시 영화의 특성 때문에 반응이 좋진 않았다”면서 지속적으로 이런 방식으로 영화를 홍보하고 하정웅 선생을 모셔 좋은 말씀을 듣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강의를 마치고 미술관을 나와 덕수궁 길을 걸어 호텔로 향하던 하정웅 선생. 일본에서 이뤘던 예술적 성과물인 수천 점의 컬렉션을 메세나운동의 일환으로 조국의 각 지방 미술관에 전량 기증하고도 지금도 74세의 노구를 이끌며 자주 조국을 방문, 민족 문화를 강의하고 있는 그의 그림자가 그렇게도 커 보였던 것은 나만의 느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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