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윤주 / 뉴스코리아 부사장, 편집국장 ]

▲ 최윤주 / 뉴스코리아 부사장

1971년의 성탄 자정미사는 전국에 생중계 중이었다.
“정부와 여당에게 묻겠습니다. 비상 대권을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 유익한 일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한테 막강한 권력이 가 있는데, 이런 법을 또 만들어 오히려 국민과의 일치를 깨고…”

서슬 퍼렇던 박정희 독재통치 하에서 전 국민에게 생중계되는 성탄전야에 간담이 서늘해지도록 당당하게 공의를 외친 이는 고 김수환 추기경이었다.
권력이 국민을 억압하고, 인간의 존엄성이 정권에 의해 짓밟힐 때마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던 김수환 추기경은, 박정희가 72년 10월 유신쿠데타로 철권통치를 자행하자 “정권욕에 눈이 먼 박대통령 자신도 결국 불행하게 끝날 것”이라고 일갈했고, 12.12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에게는 면전에서 “서부 활극을 보는 것 같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역사의 굴곡마다 ‘공의’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었던 고 김수환 추기경의 어록 중 개인적으로 가장 큰 감명을 받았던 건 1987년 고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벌어진 후 열렸던 시국미사에서 나온다.

“지금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희 젊은이, 너희 국민의 한 사람인 박종철은 어디 있느냐?’, 우리는 ‘고문 경찰관 두 사람이 한 일이니 모르는 일입니다’ 하면서 잡아떼고 있습니다. 바로 카인의 대답입니다.”

정권이 아닌 국민을 향한 돌직구, 침묵하는 양심을 겨냥한 이 직격탄은 수많은 청년들과 시민들의 가슴에 큰 울림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있으라.”
세월호 참사에 분노하는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평화적 시위를 벌이면서 손에 들었던 글귀다. “해경이 도착했다” “물속으로 뛰어내린다.”며 구조 장면을 목도하면서도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만을 믿고 그 자리에서 구조되기만을 기다렸던 친구들의 죽음 앞에서, 시위에 나선 아이들은 “가만히 있으라.”라는 짧은 글귀로 거대한 무력감에 휩싸인 이들에게 진정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건지를 되묻고 있다.

안타깝게도 현 정부는 마치 세월호 선장이 어린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라고 했듯이 국민들에게 가만히 있을 것을 강요하고 있다.

명예훼손일 수 없고 희생자 가족의 아픔과도 거리가 먼 구조 및 수색작업을 비판하는 글조차 ‘애도 분위기를 해친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수사를 벌이고 있고, 지극히 개인적인 SS 공간에 세월호 참사 비판 글을 올린 교사들이 징계위기에 몰리거나 주의조치를 받고 있다.

언론규제도 심각하다. 전 국민을 혼란으로 밀어 넣은 ‘전원 구출’의 오보에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다가 민간 잠수부를 인터뷰한 손석희의 뉴스보도에는 ‘중징계’라는 카드를 꺼내 언론의 입막음까지 자행하고 있다.

해외 언론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한국 대사관은 독일 Die Zeit 신문에 세월호 관련 기사를 쓴 정옥희 씨에게 일부 문구를 삭제해달라는 요구를 해왔다. 문장의 일부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줄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참담한 현 상황을 지켜보며 고 김수환 추기경의 일갈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너희 아들, 너희 딸들은 지금 어디 있느냐, 한 사람도 아니고 수백 명의 꽃 같은 목숨들은 대체 어디 있느냐”는 신의 물음 앞에서 “부패하고 무능한 이들이 벌인 일이니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이라며 잡아떼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본다.

세월호와 함께 대한민국의 인권이 침몰했다. 구조당국과 정부의 뻔뻔할 정도의 책임회피가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행복과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있다.

진도 팽목항을 찾아온 주부들이 눈물 흘리며 들었던 “함께 기다리겠습니다.” “함께 울겠습니다.” “함께 분노하겠습니다.”라는 피켓이 가슴을 찢는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침묵은 금이 아니라 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