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5.21 화 15:25
재외선거, 의료보험
> News Wide > 뉴스 포커스
애증의 한・일, 교포 금융 판도라 열리나 - (1)
편집부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4.04.10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대 이후 일본식 금융제도 수입한 한국
눈물의 재일교포 돈으로 만든 신한은행
일본식 서민금융 사라킨•대금업 도입까지

 

   
 

[비즈니스 워치 = 김병수 기자] = 한•일 관계엔 늘 긴장감이 돈다. 옛 백제 왕족이 일본으로 건너가 뿌리를 형성했다는 설은 우리 국민에겐 자부심이다. 그러나 일본의 지배를 받은 식민의 역사는 치욕이고 굴욕이다. 독립 후에도 한•일 국교 정상화를 명분으로 받은 5억 달러로 나라 재건의 재원을 마련한 것을 보면,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무게 또한 부인하기 힘들다.

우리 금융산업의 역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제 식민시대가 없었더라도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진행됐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지나간 역사를 가정문으로 해석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우리 금융산업엔 일본식 제도와 풍토가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다. 해방 후에도 대부분 금융시스템은 일본의 제도를 베껴 만들어졌다.

지금도 그렇다. 많은 국민이 금융상품의 약관을 읽기 어려워한다. 일본식 한자가 대부분인 금융상품 약관은 이미 십 년도 넘게 알기 쉽게 바꾼다지만, 여전히 진행형이다. 금융연구소들에서 제일 많이 인용하는 나라도 대부분 일본이다. 가까운 경쟁자여서도 그렇겠지만, 우리 금융시스템과 금융산업은 그렇게 일본풍에 젖어 있다.

한•일의 복잡한 관계는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다. 재일교포라 불리는 그들은 식민시대에 건너가 뿌리를 내렸다. 자의 반 타의 반이다. 그들의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다. 몇몇 성공한 기업가도 있고 한류 열풍이 불면서 많이 나아지고 있다지만, 여전히 많은 일본 사람들에게 교포들은 식민지 사람들이다.

한(恨)을 품은 ‘새로운 한국의 은행, 新韓銀行’

   
 

온갖 잡일을 마다치 않으며 뿌리를 내린 교포들은 1970년대 후반부터 다시 고향을 생각한다. 일본 현지에서 사업 확장에 어려움이 닥친 영향도 있었다. 그렇게 재일 한국인 본국투자협회가 만들어진다. 이 협회는 1977년 7월 한국에서 자본금 5억 원으로 단기금융회사인 제일투자금융을 세웠다. 1981년 10월 우리 정부로부터 은행업 인가를 받아 1982년 7월부터 은행 영업(사진)을 했다.

점포 3개로 출발한 재일교포 은행, 그렇게 새싹 신한은행(新韓銀行)은 만들어졌다. 신한은행 설립 당시 재일교포들이 고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가방에 현찰을 넣어 우리나라로 들어와 거액을 출자한 일화는 유명하다. 징용으로 끌려간 한을 뒤로하고 고국에 은행을 설립한 교포들은 명동 한복판에서 구루마(수레:일본어의 잔재라는 주장과 순수 우리말이라는 주장이 맞선 단어)를 끌며 호소했다. 설립 4년을 갓 넘긴 1986년 10월 총 수신 1조 원, 1990년 11월 총 수신 4조 원을 넘겼다.

우리에겐 동포애로 눈시울을 붉히게 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나 자국의 화폐를 국외로 반출하는 것은 엄격히 제한한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협정에도 재일 한국인의 법적 지위가 여전히 분명치 않았던 시기에 재일 한국인들이 돈을 싸 짊어지고 나가는 것이 일본의 입장에선 곱게 보일 리 없다. 외화 밀반출 논란을 겪는 우여곡절 끝에 외교적 협상을 통해 이 문제를 조용히 덮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지금도 신한은행의 교포 주주들은 대(代)를 이어 이 주식만큼은 팔지 않고 꼭 쥐고 있다. 조금씩 줄고는 있으나, 교포 주주들의 지분은 여전히 2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신한금융지주회사 10명의 사외이사 중 4명이 재일 교포다. 이렇게 교포들이 설립한 새로운 한국의 은행은 지금 명실상부한 1위 은행으로 서 있다.

금융실명제와 일본식 대금업의 도입

예나 지금이나 경제 대국 일본의 금융시스템은 우리가 연구해야 할 대상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제도적인 측면에선 거의 예외가 없다. 우리보다 앞서 시행했으니 참고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1993년 8월 12일 김영삼 대통령이 금융실명제가 전격 시행한 후엔 지하로 더 숨어버린 자금을 끌어내기 위해 일본의 금융제도 연구에 더욱 열을 올렸다.

지금 명칭으로는 대부업인 대금업이 대표적이다. 일본에선 사라킨(サラきん)이다. 사라(サラ)는 샐러리•봉급을 말한다. 굳이 해석하자면 ‘샐러리금융’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많은 봉급 생활자들은 빠듯한 생활을 한다. 일시적으로 돈이 조금씩 모자랄 때가 많다. 이때 소액의 적금 금액을 다음 봉급 날까지 단기로 빌려 쓰는 것을 말한다.

카드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와 달리 신용카드 사용이 활성화하지 않은 일본에선 이 사라킨이 서민금융을 떠받치고 있었다. 이 제도의 도입 배경은 분명하다. 지하로 더욱 숨어버린 돈을 합법적으로 굴릴 수 있게 해 금융경제시스템 안으로 내오기 위해서다. 일본의 사라킨 재원도 대부분 야쿠자와 거기서 파생한 일명 빠찡코 등을 통해 벌어들이고 세탁한 돈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보면 대충 알 수 있다.

실명제 직후부터 사회적 논의를 시작한 대금업 양성화는 진통 끝에 2002년 10월 27일 시행했다. 이렇게 우리는 일본식 금융제도를 또 하나 받아들였다. 

[관련기사]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회사소개광고문의기사제보구독신청찾아오시는길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종로19(르메이에르 종로타운) B동 1118호 | Tel 02)2075-7141~3 | Fax 02)2075-7144
등록번호 : 아01003 | 등록일자 : 2009. 10. 24 | 발행일자 : 2009. 10. 24 | 발행인 : 이구홍 | 편집인 : 이구홍
개인정보취급담당자 : 최유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혜민
Copyright 2008 세계한인신문. All Rights Reserved.mail to oktim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