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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교육 - (3)- 돈이 계급이다
김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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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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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삼오 / 호주한국일보 편집고문,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

 

   
▲ 김삼오 / 호주한국일보 편집고문

지난 주 권력을 정점으로 하는 관료와 사회계층 구조 안에서 차지한 자리 때문에 대중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제도권 지도자와 그런 자리와 직함 없이도 인격의 후광으로 그와 같거나 더한 역할을 갖는 비제도권 지도자를 구분하여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두 지도자 간 구분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고도의 산업화, 생산성 향상, 정보화, 그에 따른 자본의 집중 등으로 오늘의 사회에서는 전통적 의미의 권력구조 밖에서 권력 못지않은 역할을 갖는 기능과 단체가 모든 분야에서 많아졌기 때문이다.

서방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물론, 한국에서도 재벌과 대기업의 총수와 CEO, 대학총장, 언론사 사주, 대형 교회의 당회장, 천주교의 추기경, 일부 NGO 리더들은 겉으로 봐서나 법제상 권력과는 무관한 자리이다. 그럼 이들은 인격을 자산으로 하는 비제도권 또는 정신적 지도자일까?

먼저 재벌 총수를 생각해보자. 그는 그가 동원할 수 있는 거대한 자본과 생산 능력, 본체 기업과 방계와 협력 업체를 망라한 고용능력, 구매력, 로비능력(과거 정경유착이 좋은 예) 때문에 정부와 사회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친다. 한국의 10대 재벌 그룹이 국민총생산액의 절반 이상을 감당한다는 사실 하나로도 그것을 실감할 수 있다.

그 조직은 권력에 진배가 없다. 그는 적어도 몇 천 명, 크게는 몇 만 명을 휘하에 거느리게 된다. 말단 직원이 그를 만나기가 대통령이나 장차관 만나기보다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장차관을 부러워할 리가 없다. 이의 당연한 결과로 재벌 내의 각 수준에서 의사 결정권을 갖는 사장, 전무, 이사, 팀장, 부장, 과장도 많은 사람의 삶의 질을 결정한다. 이들을 제도권 밖의 사람들이라고 보기도 어렵게 되었다.

그 영향력과 힘의 1차적 원천을 따져보면 인격이 아니라 돈이다. 그래서 “오늘의 계급은 돈이다(Modern class is money)”와 같은 말이 나왔다. 돈 없는 사람이 권력을 잡거나 권력에 들어가는 것도 어렵게 되었다.

대학총장, 언론사 사주, 대형 교회의 당회장, 천주교의 추기경은 재벌과 비교할 수 없는 자리지만 몇 가지 점에서는 비슷한 맥락입니다. 대학총장 자리가 크게 보이는 것은 거대한 학생 집단(학생 데모가 정권의 존립을 위협하던 시절에는 외국의 학자들이 그들을 student power/학생 권력이라고 불렀다)과 역시 거대한 대학 캠퍼스의 위력이지 굳이 그 개인의 학문적 성취나 지적 경륜, 더욱 인격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런 자질이 아닌 사람이 그 자리에 앉는 게 흔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런 사람일지라도 월급은 쥐꼬리만 하고, 학생 수도 불과 몇 백 명, 학교 건물은 옛날 학당처럼 초라하다면 지금과 같은 화려한 이미지를 누리겠는가?

왜 여기 우리 삶과는 거리가 먼 한국의 이야기를 하느냐고요? 천만이다. 거리가 멀지 않다. 계속되는 이민으로 우리 해외 한인사회의 가치는 계속 1세와 1.5세 중심으로 흐를 것으로 본다. 이의를 제기할 분이 계시겠지만, 요즘 대부분 힌국의 젊은 세대의 꿈은 돈이 아닌가 한다. 특히 해외에 나와서 더 그렇게 되기 쉽다. 다른 방법으로 신분 상승을 꾀하기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염두에 두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첫째로 압축성장이니 뭐니 하는 편의주의적 발전 과정에서 가능했던 한국식 벼락부자 되기는 서구사회, 그 중에서도 특히 호주에서는 아예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호주 정부는 비즈니스 마인드가 없다’며 사업을 접은 교민이 많다. 둘째로 호주의 대중은 평민주의자 (egalitarian)라는 사실이다. 돈이 있으면 여기도 편히 살 수 있다. 그러나 돈 좀 벌었다고 떵떵거리고 싶으면 동포 앞에서나 고국에 가서 해야 한다. 호주인들은 감명(be impressed)을 받지 않으니까.
부자  되는 것을 폄하, 죄악시 또는 질투해서가 아니다. 부자가 되라. 정당한 방법으로 말이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할까가 중요하다. 이에 대한 대답을 길게 못하고 이 대목에서 버트란트 러셀의 말을 인용하고자 한다. 그는 자서전(B. Russel, Autobiography 1, 1951)에서 세 가지 열정이 일생을 지배했다고 썼는데 그 하나가 ‘인간의 고통에 대한 말할 수 없는 고뇌(the unbearable pity for the suffering of mankind)’이며 더 나아가 그는 ‘’고통의 소리가 울려 내 가슴을 저민다(The echoes of cries of pain reverberate in my mind’’라고 했다.

한국은 인구 당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이다. 러셀처럼 위대한 사상가, 저술가, 사회 활동가가 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돈을 걷어 고국에 보내자는 것도 아니다. 해외 한인들이라도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사회를 만들어 방문해오는 고위직자와 부자들에게 시범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에서는 그게 불가능할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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