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중앙일보 / 김창준 전 미연방하원의원 ]

▲ 김창준 전 미연방하원의원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는 1850년에 세워진 '윌라드'라는 유명한 호텔이 있다. 백악관에서 가장 가깝게 위치하고 있다고 알려진 이 호텔은 무엇보다 로비스트란 말이 유래된 것으로 유명하다. 이 호텔 로비에서는 항상 정장 차림의 신사들이 열심히 무언가를 의논하고, 유명 정치인들이 들락날락하면서 무언가를 은밀히 주고받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들이 항상 로비에 모여 있다고 해서 이들을 'Power Brokers' 또는 '로비스트'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지난 2007년 현재 워싱턴에 등록된 로비스트는 1만5000명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숫자가 줄어 이제는 1만1000명 정도다. 1995년 연방의회에서 로비스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비스트 수요가 줄어든 진짜 이유는 워싱턴의 많은 법률회사들이 로비를 하는 게 더 돈이 쉽게 벌린다고 판단해서인지 인수합병을 통해 작은 로비스트 회사들을 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로비스트들이 사라지는 또 다른 이유는 특수 이익집단, 예를 들면 미국은퇴자협회(AADP) 같은 단체들이 연방의원들을 직접 찾아가 은밀하게 로비하는 경향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까지 합치면 현재 로비스트의 수는 족히 10만 명이 넘는다는 보도도 있다. 다시 말하면 하원 의원 한 명에 25명의 로비스트가 로비를 하는 셈이다.

내가 시장으로 재직할 때의 이야기다. 우리 시는 LA카운티에서 부자로 손꼽히는 백인 도시이지만 정작 로비스트를 고용할만한 처지가 되지 않아 근처 몇 개 도시와 비용을 공동 부담하는 형식으로 워싱턴의 조그만 로비회사를 고용했다. 미국 서쪽 끝에 위치한 우리 시로서는 도대체 워싱턴에서 어떤 법안이 통과되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제대로 알기가 어려워 워싱턴의 로비스트를 채용한 것이다.

이들이 하는 일은 우리 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법안을 제출하는 의원이 있는지, 또 그 법안이 우리 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만일 악영향을 미친다고 판단될 경우 이를 신속히 시장에게 연락해 저지할 방도를 구상하는 것을 알려주는 역할이다. 때로는 우리 시에 필요한 프로젝트의 예산을 따내는데 다리를 놔주는 역할도 했다.

대한민국에서 로비는 불법이다. 어떤 로비든 무조건 범죄로 취급한다. 이로 인해 감옥에 간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버젓이 로비 활동을 하면서도 법망을 피해 합법적, 또는 음성적으로 로비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예를 들면, 정부 고위관리가 변호사도 아니면서 퇴직 후 대형 변호사 사무실에 채용돼 고문 자격으로 높은 임금을 받는다면 이는 엄밀히 따지면 로비스트 일을 하는 것이다. 대기업들도 은퇴한 장관, 차관을 고문 등으로 채용할 때는 뭔가 이들의 네트워크를 사업에 활용해 도움을 받으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하겠다.

이런 현실을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차라리 로비스트를 미국처럼 합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로비스트 자격증을 주고, 세금을 걷고, 정부가 엄격히 감독하는 미국식의 로비스트 제도를 말하는 것이다. 어차피 현실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일을 합법화 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