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신동찬.박기수.서한서 기자) = 미국에서 한국과 일본의 역사전쟁이 확산되고 있다.

한인들은 위안부와 동해표기 등 일제 강점기 시절의 치욕을 회복하기 위한 풀뿌리 운동을 벌이고 있고 일본은 정부까지 나서 한인사회의 캠페인을 방해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한인들의 승전보가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미 대륙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일 역사 전쟁의 현황을 점검한다.

◆ 일본군 위안부 및 동해병기=미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가 건립된 건 지난 2010년 뉴저지 주 팰리세이즈파크 공립도서관 옆에 세워진 것이 처음이다. 이후 2012년 롱아일랜드 나소카운티에 두 번째 기림비가 설치됐고 지난해 3월에는 뉴저지 주 버겐카운티 청사 앞에 또 다른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졌다. 특히 버겐카운티 청사 앞에는 흑인 노예제도 나치의 홀로코스트 아이리시 대기근 아르메니안 대학살 등 인권 문제를 담은 기림비들이 세워져 있어 의미를 더하고 있다. 같은 해 캘리포니아 주 글렌데일시에는 위안부를 형상화한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되는 등 현재 미국에는 동부와 서부에 4개의 위안부 기림비 및 소녀상이 건립돼 있다.

▲ 2012년 10월 팰리세이즈파크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 말뚝 테러 사건이 발생하자 시민참여센터와 팰팍 한인회.학부모회 등 한인들이 기림비 앞에서 규탄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서한서 기자

2012년 5월 일본 국회의원들이 팰팍 기림비 철거를 요구하고 같은 해 10월 일본 우익 세력의 팰팍 기림비 말뚝 테러 등 일본 측의 거듭된 역사 왜곡 시도는 오히려 위안부 이슈를 확산시키는 촉매가 됐다.

위안부 결의안은 2007년 연방하원에서 채택된 것이 시초다. 이후 지난해 뉴욕과 뉴저지 일리노이 주 의회에서 차례로 결의안이 통과됐다. 가장 최근 위안부 문제가 주목을 받은 사건은 지난 17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한 '2014년 행정부 통합세출법안'이다. 이 법안에는 일본 정부에 지난 2007년 통과된 연방하원 위안부 결의안(HR121)을 준수하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촉구한 것이다. 미국은 일본의 사죄와 함께 정확한 역사 인식의 필요성도 주문하고 있다.

동해병기는 2011년 최윤희 뉴욕한인학부모협회 회장 등의 활동으로 본격화됐다. 뉴저지 주에서도 지난해 2월 팰팍.포트리.레오니아 등 한인 학생이 많이 재학 중인 학군에 쓰이는 교과서에 일본해만 단독 표기돼 있다는 본지 보도 후 약 2개월 간 교과서 동해 병기를 위한 범동포 캠페인이 전개됐다. 본지는 당시 뉴욕과 뉴저지 한인 단체들과 함께 범동포 서명운동을 벌여 국무부와 국제수로기구(IHO) 등에 동해병기의 필요성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후 지난해 5월 해당 학군들은 동해 병기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약속을 하는 등 성과를 거뒀다.

현재 교과서 동해병기는 버지니아 주 의회에서 법안이 통과됐고 뉴욕 주에서도 같은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또 지난달 28일에는 조지아주상원에서 동해병기를 강조하는 결의안(SR798)이 통과됐다.

◆ 역사교육 및 사죄=마이크 혼다(캘리포니아주.민주) 연방하원의원은 지난달 22일 LA한인타운에서 열린 후원의 밤 행사에서 "기림비 다음은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과거는 되풀이된다."며 "미국. 한국.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교과서를 통한 올바른 역사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일본 정부는 저지른 과거의 범죄를 사죄함으로 씻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시기 백악관 청원사이트 '위 더 피플'을 통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만행을 미국 내 고교 역사교육 커리큘럼에 포함하자는 청원운동이 시작돼 눈길을 끌고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the youth of America)' 일본군에 의한 전범 역사를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의 공포만큼 엄격히 알려야 한다는 게 골자다.

뉴욕에서는 시민참여센터가 퀸즈보로커뮤니티칼리지의 유대인 박물관 커퍼버그센터와 함께 동아시아 역사 인턴십을 지난해부터 진행하며 타민족 학생과 주민들에게 위안부의 참상을 교육시키고 있다.

일본 반대 로비=6일 버지니아 주 의회를 통과한 동해병기 법안을 저지하기 위해 사사에 겐이치로 주미일본대사가 지난해 12월 테리 매컬리프 버지니아 주지사에게 법안이 시행되면 버지니아 주에 투자한 일본 기업들이 철수할 수도 있다는 협박성 편지를 보낸 것이 드러나 파장이 일었다. 주미일본대사관은 동해병기법안을 막기 위해 대형 로펌을 고용해 로비활동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의회전문지 '더 힐'은 6일 일본 정부가 최소한 워싱턴DC의 2개의 법률회사를 로비업체로 고용해 지난 1년 간 71만8000달러를 지급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가 고용한 것으로 확인된 로비 업체는 워싱턴DC의 '호건 로벨스'와 '헥트 스펜서 앤드 어소시에이츠' 최소 2곳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이 법무부를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호건 로벨스에 지난 2012년 9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52만3000달러를 지급했으며 헥트 스펜서에는 같은 기간 19만5000달러를 지급했다. 일본 정부는 이들 로비업체를 통해 위안부 문제가 의회에서 일본에 우호적으로 처리될 수 있도록 의원들을 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측의 조직적인 방해 활동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백악관 청원사이트인 '위 더 피플'에는 수시로 위안부 기림비 철거나 결의안 철회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전개되고 있으며 각 주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채택될 움직임이 보이면 극우단체인 '나데시코 액션' 등을 비롯한 단체들이 대량의 e메일을 의원들에게 보내고 있다.

2012년에는 팰리세이즈파크 위안부 기림비에 말뚝 테러를 가하기도 하고 유력 일간지에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는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LA의 일본총영사관이 부에나파크 시의회의 위안부 기림비 설립 추진을 반대하는 서신을 의원들에게 보냈으며 평화의 소녀상이 설립된 캘리포니아 주 글렌데일 시장에게 압력을 행사해 시장이 설립을 후회하는 듯한 발언을 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일본유신회 소속 의원들이 글렌데일 소녀상을 방문하고 철거를 직접 요구하기도 했으며 이보다 앞선 2012년 5월에는 자민당 의원 3명이 팰팍시에 도서 기증 및 교류 증진 예산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기림비 철거를 제의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