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2일 대법원은 재일 조선적(朝鮮籍) 정영환 씨가 오사카총영사관을 상대로 지난 2009년 5월 제기한 ‘임시여행증명서 발급거부 처분 취소 소송’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한국정부와 조선적 동포간의 지난 4년 7개월간의 법적다툼은 일단락되었지만, 역사적・사회적・정서적 아픔과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일제 식민지 지배와 해방 후 분단체제라는 특수한 역사성에 기인한 존재인 조선적(朝鮮籍) 동포들은 일본정부의 47년 외국인 등록령 실시와 함께 일본국적이 박탈됐으며, 통일되면 국적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남북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실상의 무국적동포로 살아왔다.

정영환 씨에 대한 한국정부의 조치는 1심 재판부가 밝혔듯이, 우리나라가 가입한 ‘무국적자의 지위에 관한 협약’의 ‘무국적자에 대한 여행증명서 발급 의무 규정’이나 남북교류협력법의 ‘외국인 무국적자 동포’에 대한 여행증명서 발급 규정을 보더라도 명백한 잘못임이 틀림없다. 또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선적동포에 대한 여행증명서 발급과 관련해 권고한 ‘국적전환을 강요 또는 종용하는 관행을 시정하라’는 권고내용과 더불어 ‘행복추구권 및 국적선택에 대한 자기결정권,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 행위’라고 지적한 부분과도 배치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무국적자인 동포들은 고국도 방문하지 말라는 정부의 기민정책을 옹호하는 정치적 판결이며, 동포와 역사에 대한 무지와 편견에서 비롯된 잘못된 판결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동포관련단체와 인사들이 수없이 조선적 동포에 대한 오사카총영사관과 외교부의 조치를 지적해왔으나 대법원은 정부의 일방적 입장만을 수용한 채 조선적 동포들의 고국방문 염원을 무참히 짓밟아 버렸다.

정부가 주장하는 ‘여행증명서 발급이 조선적 동포들에게 법률상의 이익이 없다’는 부분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들이 소송에서 승소하여 얻게 될 법률상의 이익이 많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2심 재판(재판관 김용덕, 현 대법관)의 결과를 그대로 수용했다. 그러나 우리는 2심 재판의 경우 사실관계조차도 맞지 않은 부분이 많으며, 오사카총영사관 측의 국적변경 강요, 부당대우, 인신적 모욕 등 심각한 절차적 위반 여부도 있었음을 상기시킨바 있다. 사실, 대법원 판례(1996년)와 법무부 등이 검토한 의견을 종합해 보면 조선적 동포를 대한민국 국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혹여 이번 대법원의 판결이 2심 재판관이었던 김용덕 대법관의 영향 때문은 아니었는지 의구심마저 든다.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난 마당에 법에 하소연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마는, 차제라도 무지와 편견 속에 조선적 동포들을 분단이데올로기로 재단하려는 작태를 중단하고 동포애적 관점에서 조선적 동포들을 포용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