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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청의 통치공학
뉴욕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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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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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중앙일보 / 이길주 버겐커뮤니티칼리지 교수 ]


숙청을 통치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인물은 히틀러다. 1934년 6월 그는 자신의 정치적 충견 나치 돌격대(Sturmabteilung)를 숙청한다. 100명 이상의 돌격대 지도자가 살해됐고 대원 1000여 명이 체포됐다. 히틀러는 돌격대 숙청에 경쟁 조직인 친위대(Schutzstaffel)와 비밀경찰(Gestapo)을 동원했다. 왼팔로 오른팔을 자른 것이다.

나치 돌격대는 히틀러의 정치적 무기였던 대중 연설장에서 그에게 야유를 퍼붓는 반대자들을 폭행하고 내쫓는 역할을 했다. 돌격대가 조성한 공포 분위기가 없었다면 히틀러의 열광적 연설은 대중에게 전달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돌격대의 다른 중요한 역할은 나치 청소년의 육성이었다. 히틀러가 전쟁을 염두에 두고 공들였던 독일 청소년의 나치의식화를 돌격대가 맡았다. 나치당 초기 히틀러가 즐겼던 브라운 셔츠를 돌격대와 청소년단도 입었다. 이렇듯 돌격대는 히틀러가 내달릴 수 있도록 길을 텄던 것이다.

그 결과 히틀러는 1933년 1월 총통이 된다. 그의 돌격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권력을 향한 놀라운 질주였다. 하지만 1년 반 뒤 그는 돌격대를 숙청한다. 정치 공학의 측면에서 놀라운 묘수였다.

돌격대는 독일 최고 지도자의 이미지 통치 스타일 미래건설 비전의 측면에서 어울리지 않았다. 첫째 독일 군부의 비판적 시각이 문제였다. 전통의식과 자부심이 강한 독일 군대는 돌격대에게서 조직 폭력배의 모습을 보았다. 전면전을 통한 독일의 영화를 재건하려는 히틀러에게 진정 필요한 무기는 정규군이지 돌격대가 아니었다. 돌격대를 버리고 군대를 안아야 했다.

많은 독일인은 돌격대에서 무질서를 보았다. 돌격대는 유대인에 대한 폭력 행사를 주도했다. 독일 사회에는 분명 반 유대인 정서가 존재했다. 하지만 유대인의 점포를 부수고 그들에게 길거리에서 린치를 가하는 수준의 탄압은 독일인이 갖고 있는 사회질서 의식에 반하는 것이었다.

히틀러는 이 모순을 이해했다. 결국 그는 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반 유대인 정책을 동원한다. 질서 있게 유대인을 제거하는 방식이 바로 수용소에서의 유대인 학살이다.

권력 사냥이 끝나고 충견 돌격대는 '팽(烹)' 당하는 것이 순리였다. 히틀러는 돌격대보다 더 확실하게 유대인을 제거할 조직을 만든다. 학살부대(Einsatzgruppen)다. 친위대 소속인 이들은 독일 육군과 연계해 유대인 대량 학살의 서막을 연다. 히틀러의 돌격대 숙청의 의미는 조직의 청소를 통한 통치의 힘과 효율성의 업그레이드다.

북한의 제2인자로 불려온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숙청에서 히틀러의 돌격대 숙청 수준의 통치 공학적 완성도를 발견한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권력 승계 2주년을 맞이했다. 이제 최고 통치자의 권위를 보여야 할 때다. 사실 여부를 떠난 고모. 고모부의 섭정 분위기를 종식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선군정치에 꼭 필요한 요건이다. 군인 아닌 대장 장성택은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최고의 정치군인이다. 말 그대로 산전수전 다 겪은 군부에게는 희극배우로 보였을 것이다. 누가 보아도 어울리지 않는 그의 군복은 로열패밀리가 즐기는 특혜의 상징이었다. 장성택 제거는 북한 군부의 권위를 살려준 측면이 있다.

정성택 제거는 체제 질서 확립이란 메시지가 강하다. 장성택 축출 원인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무질서다. 먼저 최고 존엄의 면전에서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짓고 담배를 물고 있는 등 불경스러운 행동을 함으로써 북한의 정서상 질서를 깼다.

더 놓은 차원에서 장성택은 조직상의 무질서를 초래했다. 그는 외화벌이를 통한 측근 인맥 관리에 탁월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당의 통일 단결을 좀먹었다는 북한의 표현에서 읽혀진다.

장성택은 정책상의 무질서도 상징했다. 그는 경제 개방 친 중국 협상을 통한 핵문제 해결을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변하기를 원하는 외부 세력에게 그는 실낱같은 희망이고 가능성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그는 "당의 유일적 령도체계를 세우는 사업을 저해"한 것이 된다.

히틀러는 돌격대를 약화시킨 뒤 친위대, 비밀경찰, 군에 더욱 의존했다. 북한도 이 길을 갈 것인지 이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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