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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 스캔들.. 시끌벅적한 호주 정치권
호주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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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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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한국일보 / 사설 ]


“Please, explain!(제발 설명하세요!)” 이 말이 한때 호주에서 유행어였던 시절이 있었다. 인종차별성 발언으로 유명했던 폴린 핸슨 전 연방 의원이 이 유행어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의회나 미디어와 인터뷰에서 “왜 원주민들이 더 많은 복지 혜택을 받고 있는가? 왜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이처럼 많아졌는가? 등을 설명하라고 큰소리치며 정부 당국자들을 윽박지른 기억이 난다.

이런 질문에 호주의 보수층, 특히 비영어권 이민에 반대를 했던 유권자들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유감스럽게도 애보트 지지층의 일부에 이들이 포함될 수 있다.) 테이크어웨이숍 여주인 출신으로 정치권에 혜성같이 등장한 핸슨이 자신들이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해준 것에 대해 박수를 쳤던 것이다.

핸슨의 인기가 치솟자 존 하워드 전 총리는 국가 지도자로서 핸슨의 반 아시안 발언을 공식적으로 규탄하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언론 자유를 이유로 이를 무시한 채 강도 낮은 어조의 비난으로 어물쩍 비껴갔다. 훗날 하워드 전 총리는 지역구(베네롱)에서 많은 아시안 유권자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해 현직 총리 낙선이란 충격으로 정계를 은퇴해야 했는데 당시 핸슨을 강력히 비난하지 않은 것이 패배의 한 요인이 됐다. 핸슨의 인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녀의 정치 철학 빈곤, 항상 같은 형태의 불만 제기, 핸슨이 창당한 원내이션당(One Nation)의 한계 등으로 재선에 실패했고 그 후 몇 번 선거에 출마했지만 줄곧 낙선했다.

20일 자카르타에서 “Please explain!” 요구가 터져 나왔다. 수실료 밤방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호주 정부를 향해 “토니 애보트 총리가 도청 스캔들에 대해 설명하라”고 공식 요구를 했다. 이번 주에 전개된 호주-인니 관계는 ‘악화의 연속’이었다.

2009년 8월(케빈 러드 총리 시절) 호주 정보당국이 자카르타에서 유도요노 대통령을 대상으로 15일 동안 휴대폰 전화를 감청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스캔들이 이번 파문의 한 가운데에 있다. 국영 ABC방송과 독립 언론을 표방하는 가디언 오스트레일리안지는 유도요노 대통령과 대통령 부인, 여러 명의 고위 정부 관료들을 대상으로 이 같은 감청이 진행됐다는 내용이 명시된 호주 정부의 비밀문서를 전격 공개해 버렸다. 호주 정부로서 부인을 하기 어려운 곤혹스러운 지경에 놓이자 애보트 총리는 ‘국익 보호’ 명분을 내세우며 사과 거부와 강경 대응을 선택했다.

“모든 나라가 정보 수집 활동을 한다는 것을 모든 나라가 알고 있다. 호주도 자국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자원을 활용한다. 호주 국익 보호에 필요한 적절한 정보수집 활동에 대해 사과를 기대하지 말라”

이 같은 애보트 총리의 훈계성 발언이 나오자 예상대로 인도네시아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일부 현지 언론에서는 호주를 ‘위험하고 나쁜 나라’로 표현할 정도다. 20일 자카르타의 호주 대사관 앞에서 호주 규탄 시위도 벌어졌고 족자카르타에서는 호주 국기 소각 행위도 벌어졌다.

호주가 최근접 이웃 국가와 이 같은 외교 관계 악화의 길로 접어들자 집권 70여일 만에 애보트 정부는 최대 난제에 직면했다. 이를 원만히 해결하는 것이 애보트 총리의 첫 번째 외교적 과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돌파구를 만들 묘책이 없어 답변(설명)에 고민을 하고 있다. 이 문제는 애보트 정부의 핵심 선거 공약 중 하나인 난민신청자 밀입국선 차단 정책(Stop the boats)의 성패와도 직결됐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유도요노 대통령의 공식 설명 요구를 받은 애보트 총리는 20일 의회 답변에서 “신속히 또 예의를 지키며 충분히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답변 내용이 향후 인도네시아와 관계 회복의 열쇠가 될 전망이다.

이번 사태를 서투르게 처리하다 실패를 할 경우 애보트 총리는 당내에서 입지가 위축될 수 있다. 아직은 선거 승리의 허니문 분위기이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될 수만은 없다.
애보트 총리가 믿는 구석이 없지는 않다. 감청 파문이 케빈 러드 전 총리 시절 발생한 사태이기에 야당(노동당)의 대정부 공세에 한계가 있다. 빌 쇼튼 야당 대표는 20일 의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 호주는 초당적으로 한 팀이며 정부 입장을 지지한다”는 말을 했다. 이 발언에 이미 한계가 내포돼 있다. 다만 국제적으로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수록 호주의 위신은 손상될 수 있다. 또 호주 정부가 원하지 않더라도 호주 정치사에서 오점으로 남을 수 있다.

애보트 총리는 안보, 국경보호라는 국가적 이슈를 공론화해 사과를 하지 않으면서 깊은 유감 표명 정도의 배수진을 펼칠 것 같다. 과거 하워드 총리 시절 ‘템파 사태’에서 국제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국민 정서가 국익 명분을 앞세운 정부를 옹호했고 그 여파가 총선까지 영향을 끼친 사례를 애보트 총리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애보트 정부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호주에게 가장 중요한 나라 중 하나인 인도네시아를 그냥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다가 큰 코를 다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인도네시아는 과거 국제 외교 무대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제3세계 외교의 맹주’였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제1차 아시아 아프리카 회의(1955년)라고 불린 ‘반둥회의(Bandung Conference)’를 주최하며 제1차 비동맹국가 정상회의(1961년)를 주도했던 나라였다.

이번에 유도요노 대통령과 마르티 나탈레가와 외교장관 등 인도네시아 정부 지도층이 한 말 중 “지금은 냉전시대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말은 비단 호주만을 대상으로 한 것은 물론 아니다. 이른바 ‘다섯 개의 눈(Five Eyes)’으로 알려진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5개 영어권 국가들을 향한 경고의 의미가 있다.

영어권 5개 우방국들이 정보를 공유하며 필요시 미국의 정보 제공 요청(감청 활동 등)에 적극 협조를 하며 비밀을 준수해 온 수십 년 동안의 냉전시대 관행을 벗어나라는 요구다. 스노우든과 위키리크스의 폭로로 그 빙산의 일각이 드러나 국제사회에서 큰 외교적 문제가 됐다. 아태지역 특히 동남아, 인니에서 말레이시아, 동티모르, PNG를 거쳐 중국에서까지 호주 정보당국이 미국의 정보수집 요구에 협조해 온 수치스런 행위가 드러났고 이번 언론 폭로로 러드 총리 시절(2009년)까지 활발한 활동을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여파로 국제사회에서 호주의 이미지도 손상될 처지에 놓였다.

이번 파문을 교훈삼아 단기간에 인도네시아와 관계 회복이 어렵더라도 호주 정치 지도자들이 탈냉전시대에 걸맞은 정보수집활동으로 전환을 해야 하며 국익을 해칠 위험이 있는 스파이 활동을 제도적으로 금지시키는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라는 여론을 경청해야 한다. 겉으로는 최우방국인양하며 친근감을 나타내지만 마음속으로 경멸한다는 느낌을 주는 ‘질 낮은 제스추어 외교’는 밑바닥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애보트 총리가 강성과 유연함을 함께 갖춘 국가 리더인지를 보여줄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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