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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하기도 힘든 일본의 ‘증오범죄’
량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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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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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량영성 / KEY(재일코리안청년연합) ]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난 10월 7일 교토지방재판소는 교토조선제1초급학교가 수업을 방해한 ‘재특회’(재일조선인의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를 상대로 고소한 민사소송에서, 그들이 행한 ‘헤이트 스피치’(혐오・증오발언)에 대해 ‘인종차별’이라며 손해배상과 이 학교 주변에서의 가두선전 금지를 명령한 판결을 내렸다.

유감스럽게도 민족교육권의 침해에 대해서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인종차별철폐조약에 비춰 인종차별이 일어났다는 것을 명확히 인정한 것으로 손해배상액을 증액시킨 승소 판결이었다. 이 점에서 획기적인 판결이었다고 생각하고, 물론 필자도 진심으로 기뻤다.

그러나 냉정하게 다시 생각해보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기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인종차별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라고.

그렇다. 그들이 한 짓이 무엇인가! ‘재특회’ 인종차별주의자는 백주대낮에 조선학교에 집단으로 몰려와 초등학생들이 수업하고 있는 교사를 향해 대음량 스피커로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추악한 말과 차별 발언을 했던 것이다. 이것이 차별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차별이란 말인가? 아니, 좀 더 이야기하면 ‘차별’이라고 부르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 단순히 ‘차별’이라고 부르기에는 최근 일본의 ‘증오범죄’(hate crime)는 너무나도 ‘추악’하다.

이 내용을 옮겨 쓰는 것조차도 싫지만, 2013년 6월 오오쿠보에서 필자가 본 광경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휴일의 동경 오오쿠보거리를 ‘좋은 한국인도 나쁜 한국인도 모두 죽여라’ 등 살인, 집단학살’(Genocide) 교사(敎唆)부터 ‘바퀴벌레 새끼’ 등 민족 집단을 통째로 ‘해충=구제대상물’로 비유하는 것까지 보통은 절대 볼 수 없는 문구가 쓰인 플래카드를 손에 들고, 그보다 더 추악한 욕들을 계속 외쳐댔다.

그런데 ‘죽여라’라고 하는 것에 비해 그 사람들의 표정에는 그만한 각오나 사명감 같은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조소와 같은 미소를 짓는 남녀가 100명 단위로 행렬을 만들어 줄줄이 눈앞을 지나쳐 갔다.

주위에는 몰려든 시민들이 맹렬히 항의를 했지만, 그 시민들과 인종차별주의자(racist) 집단의 행렬은 기동대로 인해 확연히 격리돼 있었다. 건너편 빌딩을 올려다보니 주민인 듯한 중년여성이 분개하며 창을 열어 몸을 내밀고 행렬에 대해 항의하고 있었다. 필자의 뒤에서는 충격으로 경련을 일으킨 것처럼 울부짖고 있는 여성 3명이 있었다. 필자가 인종차별주의자 집단에 카메라를 향하자 그 중년남성은 살짝 웃으며 플래카드를 내 쪽으로 보이며 포즈를 취했다. 선글라스도 마스크도 하지 않은 맨 얼굴이었다.

추악한 광경을 상기하며 써 봤지만, 생생하게 전달이 되지 않는다. 유튜브 등에 올라온 영상을 보면 전하고자 하는 끔찍함이 이보다는 더 잘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전에 영상으로 이미 보았던 필자조차 처음으로 현장에서 보니 온몸으로 느껴지는 불쾌함의 극치는 잊을 수가 없다(그러나 그것은 타인에게는 - 특히 같은 재일코리안이나 마이너리티에게는 - 경험하게 하고 싶지는 않지만).

즉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차별행위는 ‘차별’이라는 말이 귀엽게 느껴질 정도로 추악한 차별이라는 것이다. 상식을 벗어난 이상사태이며, 매우 심각한 권리침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상의 심각함을 말로는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내’가 있다. 타인에게 전달할 때 ‘아무튼 저것은 너무 심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데, 항상 너무 답답하다.

일반적인 차별과 비교해도 특별한 ‘잔혹함’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차별을 말로 표현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느낀다. 왜냐면, 그렇지 못할 경우 지금의 ‘증오범죄’에 대해서도, 그 이전부터 재일코리안이 경험해 온 차별에 대해서도, 왜곡된 형태로 문제가 축소되어 버릴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어떤 재일코리안이 사이좋은 친구와 언쟁을 하다가 갑자기 ‘그럼 너는 조선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다면, 이것은 명확한 차별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교토조선초급 사건 등 ‘재특회’ 등의 심각한 ‘증오범죄’가 ‘차별’의 전형적인 예와 같이 다루어짐으로써, 그렇지 않은 차별은 ‘별 것 아니다’는 식으로 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감이 있다.

교토조선초급 사건은 최악의 ‘증오범죄’이다. 그렇기 때문에 판결이 났을 때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결코 이런 인종차별주의자가(차별하는 쪽도 비판하는 쪽도) ‘차별의 전형’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이와 같은 차별 행위를 ‘너무 심한’ 차별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있었던 차별도 확실히 문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은 그런 상황을 이야기할 말들을 더욱 가다듬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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