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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더불어 야망을 불사르는 정치인 ‘커리 부커’
김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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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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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석 / (재미) 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 ]


   
▲ 김동석 KACE 상임이사
2009년 9월이었다. NBC-TV의 간판 프로그램인 ‘투나잇 쇼’의 진행자 코난 오브라이언이 그의 토크쇼 ‘투나잇 쇼’에서 뉴왁시의 의료보험 개혁을 비꼬는 농담을 했다.

“요즘 뉴왁시가 시민들의 진료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획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데…, 알고 보니까 그것은 시민들에게 뉴왁을 영원히 떠나도록 버스표를 지급하는 꼴”이라고 과장해서 비꼬았다.

방송인과 커리 부커(Cory Booker)의 입심

오브라이언의 표적이 되어 공개적으로 비난을 당한 커리 부커 뉴왁시장이 발끈했다. 커리 부커는 바로 다음날 즉시 인터넷 사이트 ‘유투브’와 ‘트위터’에 “내 재임기간에 과거에 비해서 범죄가 줄어들었고 동네는 안전해졌으며 시민들은 시장을 중심으로 더욱 결속되고 있다”고 하면서 근거 없이 허위로 뉴왁 시민들을 모욕한 것에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그것만으로도 성이 안차서 커리 부커는 직접 행동으로 나섰다. 미국 최대의 공항 중 하나인 뉴왁 리버티 국제공항의 출입금지자 명단에 ‘코난 오브라이언’이란 이름을 올렸다. 그의 유투브와 트위터의 동영상에 “오브라이언은 JFK 공항이나 이용하시라!”고 올렸다.

그대로 당할 코난 오브라이언이 아니었다. 다음번 ‘투나잇 쇼’의 방송에서 한발 더 나갔다. “나는 공항을 통하지 않고서도 뉴왁엘 갈수 있다, 하수도만 따라가면 곧바로 뉴왁에 도착하게 된다. 왜냐하면 미국의 모든 하수도는 뉴왁시로 통하고 있기 때문이지…”라고…. 뉴왁시가 그렇게 지저분하다고 하수도에 빗대어서 조롱했다.

곧 커리 부커 시장도 공격의 수위를 높였다. 뉴저지 내 자매도시의 시장들을 찾아다니면서 코난 오브라이언의 뉴저지 출입을 금지시킨다는 성명서를 받아냈다.

   
▲ 미 연방 상원의원에 오른 '커리 부커' 뉴왁시장

유명 방송인과 뉴저지의 지방자치단체들 간의 혈투가 시작되었다. 그 다음 방송분을 준비하기위해서 코난 오브라이언은 평소 그와 잘 알고 지내던 뉴왁시 옆 동네인 엘리자베스(Elizabeth)시 시장을 찾아가서 편지 한 장을 받아왔다.

뉴왁 공항의 땅 일부가 속해 있는 엘리자베스시의 시장이 자신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시장님은 언제든지 자신의 입국을 환영한다고 했고 뉴왁 공항 일부분의 터미널의 이름을 ‘코난 오브라이언 터미널’로 바꾸겠다는 의견까지 냈다고 자랑했다.

이제부터는 뉴왁 시민들이 들고 일어설 태세였다. 시장과 방송인의 싸움이 심각하게 집단적으로 번지려는 찰나에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중재에 나섰다. 시장에겐 시를 잘 이끌어 달라고 하면서, 오브라이언에겐 그의 입담에 걸맞게 늘 하던 방식대로 “앞으로도 내 속옷을 소재로 농담이나 하시라…”고 하면서 불을 껐다. 이 소동은 커리 부커가 오브라이언의 ‘투나잇 쇼’에 출연하는 것으로 일단락 했다.

두 유명인의 자존심 싸움은 일단 모두의 승리로 끝났지만 NBC측은 250만 명 이상의 시청자를 더 끌어 들이는 ‘시청률 대박’을 터뜨렸으며, 일개 시장에 불과했던 커리 부커는 자신의 유투브와 트위터의 동영상을 전국의 800만 명에게 회람을 시키면서 전국적인 유명세를 떨쳤다.

선거 캠페인 전문가들은 올드미디어인 TV와 뉴미디어인 인터넷간의 전투가 거의 막상막하라며 이 일화를 단골로 예로 들고 있다.

“우리는 선수가 돼야 합니다.”

시민들의 일이라면 목숨도 내놓는 용기의 사나이 커리 부커가 드디어 연방 상원에 진출했다. 선거를 치러서 연방 상원에 입성한 것으로는 2005년 오바마 상원의원 이후 처음이다. 커리 부커의 성공은 한마디로 그의 용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백인중산층 지역인 북부 뉴저지의 해링턴파크에서 그러한 수준의 생활형편으로 성장했다. 그의 부친은 IBM의 최초의 흑인 임원이었다. 지금 한인학생들이 많이 재학하는 올드 태판의 노던밸리고등학교(Northern Valley Regional High School)를 다녔다. 2010년 캐서린 도노반 버겐카운티장으로부터 카운티의 판사로 임명을 받은 김재연 판사와 동기다.

커리 부커는 끊임없이 자신의 (실존적)아이덴티티를 고민했다. 킹 목사의 워싱턴 대행진 50주년인 지난 8월에 커리 부커는 워싱턴DC 링컨기념관 앞의 수많은 군중들 앞에서 “여러분, 나를 포함한 우리가 3루에 있는 건 우리가 3루타를 쳐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마시는 이 물은 우리가 우물을 판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관람객이 되지 말고 킹 목사처럼 선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라고 외쳤다.

그는 스탠포드에서 정치학과 사회학으로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로즈(Rhodes) 장학생으로 영국의 옥스퍼드에 유학했다. 예일대 법대를 나왔고 유능한 변호사로 비영리 단체에서 다년간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리고 그는 주저하지 않고 곧장 뉴왁으로 달려왔다. 빈곤이 악순환 되는 원인을 알았기 때문이다.

왜 하필 블랙이 대부분인가? 쓰라린 고민의 고통을 맞받아치면서 뉴왁시 슬럼가의 부랑아들과 어울렸다. 알코올과 마약에 찌든 흑인 청소년들과 어울리면서 현장으로 들어갔다.

그들을 대표해서 뉴왁시의 시의원에 진출했고 100년이 짧다고 하면서 시장직을 차지해 나가려는 부패한 정객들을 정면으로 받아치면서 뉴왁시에 바람을 일으켰다.

커리 부커는 시장직에 과감하게 도전해서 20년 동안 뉴왁시에 군림해 온 샤프 제임스 시장의 거대 왕국을 무너뜨렸다. 37살에 문제의 도시 ‘뉴왁시’의 시장이 되었다.

올해로 만8년 시장 재임 동안 그는 종횡무진 했다. 화재현장에서 불길 속을 뛰어들어 시민을 구했고 사고를 당해 신음하는 시민을 둘러업고 길거리를 뛰기도 했다.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시도 때도 없이 집으로 데려오고, 태풍 샌디가 왔을 때엔 이재민을 집으로 끌어들여 한 달 이상을 자신의 오랜 여자 친구에게 돌보아 주도록 하기도 했다.

극빈자들의 ‘푸드 스탬프’ 예산을 줄이지 못하도록 하기위해서 스스로가 푸드 스탬프로 2주 이상을 살면서 예산을 지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시민이 나를 용감하게 만든다.”

2006년에 뉴저지에서 신인으로 정치권의 돌풍을 일으킨 2명을 꼽는다면 에디슨시의 한인 시장 ‘준 최(최준희)’와 ‘‘커리 부커’ 뉴왁 시장이다. 이 둘은 2005년도 일리노이의 연방 상원에 당선된 ‘바락 오바마’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오바마는 2005년 말 에디슨시를 찾아와서 최준희의 선거 유세를 지원했고 2006년 커리 부커의 선거를 적극 지원했다. 2007년도 초반에 뉴저지 주에서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오바마를 지지 선언한 두 명이 바로 ‘커리 부커’와 ‘최준희’였던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 커리 부커 연방 상원의원이 30일 미 의사당에서 어머니 캐롤린 로즈 부커 여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상원의장인 조 바이든 부통령 앞에서 선서하고 있다. ⓒ뉴욕일보

정치권으로의 등장이 크고 작은 차이이지만 같은 코드와 같은 컨셉이다. ‘최준희’와 ‘커리 부커’의 닮은꼴은 둘 사이가 좋아서라기보다는 정치인으로의 야망을 절대로 굽히지 않고 (지칠 줄 모르게) 의지를 불태우는 점이다. 둘 다 정치지망생 싱글모임(총각모임)의 핵심 멤버였는데 최준희는 좋은 아내를 맞이하는 행운을 얻어서 쌍둥이 까지 낳았고 ‘커리 부커’는 동성애자라는 많은 의혹이 있음에도 아직 싱글이다.

오늘 아침 뉴욕타임즈 정치기사엔 많은 부분 뉴욕시 시장선거 관련이지만, 필자에겐 워싱턴 상원에 입성한 커리 부커의 기사가 더 압권이다. 상원의장인 조 바이든 부통령 앞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선서를 하는 커리 부커의 사진이 필자의 콧 끝을 찡하게 만들었다.

개인적인 친분의 (연방)상원의원이란 것 때문이 아니다. 그의 일성이 “상원이 나를 바꿀 것이 아니고 내가 상원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지칠 줄 모르는 그의 용감성이 사진에서도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는 “시민(유권자)이 나를 점점 더 용감하게 만든다!”고 큰 소리로 외치는 정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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