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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를 위해 기꺼이 칠푼이 바보 되기
김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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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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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석 / (재미)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 ]
 

   
 

어설픈 글쓰기지만 뉴욕에 있는 한 동포관련 신문에 칼럼을 쓰기 시작한지가 만7년째다. 7년이란 시간이 길어서가 아니고 매주 빠짐없이 했으니 그 분량이 참 많다.

그리고 많은 분량보다 더 특이한 것은 칼럼의 테마가 한 결 같이 ‘한인들의 정치력 결집’이란 주제를 결코 벗어나질 않았다. 돌이켜 보건데, 그것은 나의 실천에 대한 확고한 의지의 반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머리와 손과 발이 따로따로가 아니고 뜻과 의지가 손과 발을 통한 실천으로 일관성을 유지해 나간다는 입증이 아닐까…, 자화자찬해 본다. 오늘은 한국방문의 기내에서 주말 칼럼을 쓰게 되었다고 하면 필자 개인의 이야기에 대한 독자의 양해를 요청할 구실이 되지나 않을까…

내 길을 갈 수 있는 이유

내 인생의 가장 큰 사건은 한 사람과의 만남이었다. 그건 꼭 26년 전의 일이었다. 그 사람은 그로부터 지금까지 거의 완벽하게 나를 지배하고 있다. 신앙과 인식으로부터 사고와 행위까지 그가 나를 통제하고 있다. 내 삶의 실천은 항상 그의 잣대로 평가되어 진다고 해도 절대로 틀린 말이 아니다.
그의 통제에 의한 행동이 나 스스로의 그것에 비해서 항상 10점 정도가 높으니 이제는 그냥 안심하고 맡겨서 그에게 복종할 따름이다. 둘의 점수를 합해서 둘로 나누는 평균점수 보다는 둘 중의 나은 점수가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행위를 결정 할 때도, 물건을 구입할 때에도, 심지어는 나만이 알고 있는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일에 까지도 그의 판단은 합리성과 원칙에서 늘 나를 앞섰다. 내가 전략을 구상할 때 그는 원칙을 강조했고 내가 비교선택 할 때에 그는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오래가는 것을 권하곤 했다.

그의 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나에겐 늘 ‘주체와 자존’의 문제로 머리 한 구석에 남곤 하지만 결과론적으론 그게 손실(낭비)을 막는 일이었다. 당장엔 격론도 불사하지만 지나고 나면 존중과 감사가 남는다. 이념을 내려놓을 때에도 오히려 나에게 신중을 요구했고 터무니없는 오해와 음해에도 초연하게 내 길을 뚜벅뚜벅 가도록 감정을 자제시킨 것도 바로 그 사람이었다.

“신의와 의리”를 중시하는 것에도 그는 분명히 나를 앞선다. 가장 힘들 때에 쉬운 길을 택하는 것 보다는 어려움을 견뎌낼 힘을 위해서 기도할 것을 요구한 것도 그였다. 뉴욕에 첫 발을 놓았을 때에 뜻이 같은 동지로 만났던 그 사람과 나는 지금도 변함없이 같은 뜻의 같은 길을 가고 있다.

한인으로서의 정체성

그는 원칙과 청렴의 대명사, 한국 민주화의 대부인 ‘고 김근태’의 가장 큰 신뢰를 받았던 사람이다. 그 사람은 “그분의 삶을 바라보는 것이 행복이다”라고 늘 이야기한다.
그 사람은 공과 사의 엄격한 구분과 대의 우선의 원칙을 그분으로부터 배웠다. 그래서 그 사람은 ‘예수는 믿는 것이 아니고 그분의 삶을 따라 가는 것. 그러한 행위가 믿음이다라고 기독교 신앙을 이해한다. 김근태의 죽음에 서러움과 슬픔을 참아내지 못하는 그의 진정성에 나는 정말로 초라함의 고통을 겪었다.

그 사람은 소녀티를 벗어나기도 전에 미국에 왔다. 그 사람이 한국과 한국인이란 것에 그렇게 강한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은 (나중에 알았지만) 순전히 그의 광적인 독서욕구의 덕분이었다.

“책”이라 하면 나도 2등이 아닌데 그를 처음 만났을 때에 어설프게 책이야기를 꺼냈다가 번번이 혼쭐이 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사람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미국서 다녔지만 한국문학과 역사에 결코 2등이 아니다. 한글 맞춤법에 대한 공부는 아직도 그의 공부순번 1위다.

‘가르치다’와 ‘가르키다’를 습관적으로 혼동하는 나는 늘 그로부터 혼쭐이 난다. 그의 한국어 사랑은 정말로 유별나다.

만남의 행운

그 사람은 바로 내 아내다. 칠푼이 같이 아내자랑을 한다고 욕에 가까운 흉을 봐도 나는 이렇게 써야만 하겠다. 그 이유가 있다.

한국의 모 유력 중앙 일간지가 나의 미국경력에 대해서 특별 인터뷰를 요청해서 장장 이틀 동안 전문기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터뷰 말미에 그 기자의 말 한마디가 나를 오늘 칠푼이로 만들었다.

“김동석씨는 미국서 민족적 원칙주의자 여자를 만난 것이 행운이었네요!”

베테랑 전문 기자가 그렇게 평가했는데 그 어느 남자가 아내 자랑을 자제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렇게 비행기 안에서 아내의 지배를 벗어났으니 칠푼이가 될 결심을 하게 되었다.

아내를 만난 26번째의 기념일에야 비로소 스스로 잘난 것이 아님을 알았다. 아내의 지적욕구에 이제야 박수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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