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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정권과 맞서는 일본의 양심
황경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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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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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경춘 / 전 외신기자클럽회장 ]


   
▲ 황경춘 전 외신기자클럽회장
옛날의 ‘강한 일본’의 복원(復元)을 꿈꾸는 아베 신조(阿倍晉三) 정권에 맞서는 일본의 양심세력이 있다. 지성인을 대표해서는 노벨 문학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가 있고 언론을 대표해서는 아사히(朝日)신문이 있다. 최근에 있었던 보수 세력과의 대결에서 그들이 조그마한 양보를 얻어냈다. 그러나 지난번 선거에서 대승하여 기고만장한 아베 정권과의 앞으로의 싸움은 험난할 것이 뻔하다.

역사의 새로운 인식을 주장하는 아베 정부의 방침을 상징하는 사건이 지난달 시골 소도시에서 일어나 그 여파가 중앙 정국에까지 미쳤다. 여론의 항의로 일단은 당국이 물러서 휴전상태에 들어갔지만, 담당 장관은 이 사태를 유발한 시골 교육위원회 측에 문제는 없었다고 두둔하고, 당사자인 교육위원회도 다만 절차상 하자 때문에 조치를 철회했다고 말해, 앞날이 불안하다.

한때 일본열도를 흥분시켰던 이 소동은, 1905년 독도를 ‘다케시마’로 등록해 지금의 분쟁 소지를 만든 시마네현(島根縣) 현청 소재지 마쓰에(松江)에서 시작되었다. 문제의 핵심은 ‘하다시노 겐(맨발의 元)’이란 전쟁의 참혹함을 그린 만화책에 대한 찬반 시비였다. 지난달 초, 시 교육위원회가 산하 초ㆍ중학교에 지시하여, 이 장편 만화책을 학교 도서실에서 치우라고 했다.

일본 패전 직전인 1945년 8월 6일, 초등학교 2년의 어린 몸으로 히로시마 원자탄 투하 현장에 있었던 주인공 나카오카 겐(中岡 元)이 겪는 사회차별 경험을 그린 이 장편 만화는, 1973년에서 1985년까지 여러 잡지에 연재된 뒤 10권의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청소년은 물론 성인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얻은 이 만화책은 공식적으로 1,000만 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해외에도 수출되었다.

일본교원노조(일교조)가 지원하는 잡지에 연재되기도 한 인연으로 이 만화책은 거의 모든 학교 도서실이 소장하고 있으나, 내용이 전쟁과 천황제 반대 등을 담았고, 구 일본군의 참혹한 살인 장면들도 포함하고 있어 보수계 인사의 비난 대상이었다.

지난해 10월의 한 조사에 의하면, 마쓰에 시 교육위원회 산하 49개 학교 중 45개 교가 이 책을 비치하고 있었으며 40개 교에서는 학생들이 자유로이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보수계 주민대표의 교육위원회 항의방문 사건이 지난해에만 세 차례 있었다고 한다.

마쓰에 교육위원회의 조치가 알려지자, 야당과 언론은 이것이 진실을 은폐하려는 언론탄압이라고 규탄하고, 일부 시민은 그러면 돈 내고 보자는 운동을 시작해, 한때 이 책이 다시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라서는 기현상도 일어났다.

아사히신문은, 어떤 책이든 내용 일부를 트집 잡아 그 책 전체를 배척하는 것은 독서의 방법을 모르는 소리라고 꼬집으며 아래와 같이 지적했다.

“전쟁은 참혹하다. 그것을 정면으로 묻는 책을, 교육에서 어떻게 활용해 나가느냐. 지혜와 연구를 거듭할 필요가 있으나, 전쟁을 모르는 세대에 참혹으로부터 눈을 돌리게 하는 방법만으로써 평화의 귀중함을 가르칠 수는 없다.”

미국 만화가 ‘레이너 델게마이어 여사(36)는, 자기는 어린 나이인 열 살 때 영어로 번역된 이 책에 접할 수 있어 매우 다행으로 생각하며, 이 책을 통해 어른들과 전쟁에 대해 많은 토론을 할 수 있었다고,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원폭 피해자인 자신을 모델로 이 만화를 그린 나카자와 게이지(中澤啓治) 씨는 작년 12월에 작고했다. 지금 히로시마에 거주하는 부인 미사요(70) 여사는, 30년 전 남편에게 내용 일부가 너무 참혹하지 않으냐고 말했더니, "전쟁은 원래 참혹한 것이다. 그 참혹한 것을 어릴 때 가르치지 않으면 전쟁의 본질을 배울 기회는 없어진다."고 대답했다고 아사히 기자에게 전했다.

소동이 커지자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문교과학 장관은 마쓰에 교육위원회의 이 만화책 철거 조치에는 "문제 삼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한편 마쓰에 교육위원회도 사무국 간부 5명이 교육위원의 의결 없이 철거조치를 지시하였다는 절차하자 때문에 조치를 철회했다고 교장 회의에서 사과하고, ‘맨발의 겐’ 열람 문제는 학교 재량에 맡긴다고 해,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이 사건에 앞서, 도쿄 근처 두세 교육위원회가 역사교과서 내용 기술에 간섭을 한 일이 있었다. 1923년 9월 1일의 관동대지진(關東大地震) 때의 조선인 학살을 단순한 ‘살인사건’으로 기술하라고 지시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아사히신문은 ‘교육에 정치나 이데올로기를 개입시켜서는 안 된다.’고 논한 사설에서 ‘교육위원회가 정치적 압력으로 판단을 좌우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압력 여하로 교육을 뒤흔들 수 있다>는 그릇된 메시지를 줄 우려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보도했다.

지난 7월의 참의원 선거 기간에 민간 방송 TBS가 한동안 여당에 취재 거부를 당한 데 이어 지지(時事)통신사가 기획한 후보자 토론회가 여당 반대로 취소되고, 선거 후에는 ‘여당의 천적(天敵)’처럼 생각되던 아사히가 ‘아베 정권의 응원단이 된 듯한’사설을 썼다고, 월간 종합잡지 ‘분게이슌주(文藝春秋)’가 비판했다. 이 글은 선거 직후 즉 마쓰에 사건 전에 나온 것이다.

과거에 아베 총리와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아사히가 총리와 모종의 화해를 했다는 보도가 연초에 있었는데도, ‘자기의 변절을 설명하지 않는 아사히의 자세가 공허하지 않나.’라고 꼬집은 이 잡지는, 언론 비평 칼럼 ‘신문 염라대왕 수첩’에서 이렇게도 지적했다.

“미디어를 거의 장악한 것처럼 보이는 아베 정권이다. 그러나 결코 압력을 받지 않고 또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있다. 그것은 시장(市場)이다. 6월에 발표된 아베의 성장 전략 내용은 기대 밖이어서 주가가 폭락했다. 주가가 떨어질 때까지 정권비판을 못 한 신문이란 대체 뭔가?”

아베 정권의 우경화에 맞서는 일본의 양심세력이, 과거 전시 군사정부의 강압에 굴복하여 지조를 버린 선배들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된다. 거대 여당과 든든한 보수주의 지지자를 등에 업은 아베 총리이다. 이에 맞서는 일부 야당과 지성인을 주축으로 한 양심세력의 전열(戰列)은 왠지 허술하게만 보여 안타깝다. 


(제공 : 자유칼럼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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