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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계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설을 접하며- 평화와 반전(反戰), 환경과 휴머니즘을 추구 VS 책임의식 없는 일본 군국주의 옹호자
이수경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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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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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경 /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


   
▲ 이수경 교수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대중문화의 하나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宮崎駿、72세) 감독이 개봉중인 [바람이 분다(風立ちぬ)]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한다고 표명을 했다. 세 번째의 은퇴 발언이 되는데, 그의 작품에 걸리는 시간이 초기에는 2-3년 기간이었으나, 최근에는 5년이 걸리는 등, 심신의 기력과 체력이 한계에 달했다는 언론의 분석이 대세다. 물론 개중에는 그가 현 정부의 정책을 반대하는 헌법 개정으로 인한 전쟁 가능성에의 반대, 종군 위안부 문제는 인정해야한다는 등의 의견에 대한 압박이 있었지 않나 하는 추측설도 있지만 그런 자신의 소신을 굽힐 연령도 위치도 아니고, 무엇보다 일본 군국주의 상징으로 가미카제 특공대에도 사용된 [제로전 전투기]를 만든 호리코시 지로의 비행기 만들기에 몰입하는 열정을 당당히 미화시키며 작품화 할 정도인 그가 자신의 발언에 압박을 받는다고 은퇴라는 도피행을 선택할 인물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호시노 사장이 베네치아 영화제의 기자회견에서 미야자키 히야오 감독이 은퇴를 밝혔으나 본인의 직접 발언이 아니라서 향후의 추이가 주목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1941년에 도쿄에서 가족이 경영하는 [미야자키 항공 흥학]이란 항공사 간부의 4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작품 속에 하늘을 이동 공간으로 생각하며 비행기를 의식하는 작품을 만든 계기는 이런 어린 시절 기억이라 할 수 있다.
   
▲ 미야자키 하야오
2차 대전 말에는 도쿄 근처의 우츠노미야에서 피난 생활을 하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에 도쿄로 전학을 하나 몸이 약해서 운동보다는 그림에 특출한 재능을 지녔기에 그림 그리는 취미와 독서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토요다마 고등학교 3학년 때에 [백사전(白蛇伝)]이란 작품을 보고서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한다.
그 뒤, 가쿠슈인대학교를 졸업 후, 토우에이 동영화사에서 본격적인 애니메이션 훈련을 쌓은 후, 단편 및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의 각본 및 감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특히 그의 주된 장편 애니메이션은 한국에서도 많이 소개되어 그가 기획하고 관장을 맡고 있는 지브리 스튜디오 미술관과 더불어 국내에서도 유명하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대표적인 장편 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의 연출로 시작한 그의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 소개를 간단히 하자면, 1979년에 개봉된 괴도 루팡의 신출귀몰함과 인간미의 모험을 코믹하게 그린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공동 각본)으로 극장 영화감독 데뷔를 하였고, 1984년에는 전쟁으로 인한 자연환경 파괴에 경종을 울리며 환경보호의 주장이 강한 색채 속에 묻어나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를, 1986년에는 어린 소년 소녀가 비행석을 얻으면서 환경과 평화란 주제로 펼치는 모험과 천공의 세계를 환상적으로 그린 [천공의 성 라퓨타], 1988년에는 아름다운 자연과 전원생활 속에서 발견하는 환상적인 세계를 즐기는 어린 자매들과 이웃을 그린 [이웃집 토토로]를, 그리고 같은 해에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으로 다카하시 이사오 감독의 [반딧불의 묘]( Grave of the Fireflies)가 개봉되었다. 1945년 2차 대전 말기의 전쟁 속에서 오갈 곳 없던 남매가 고우베(神戶) 대공습 때 결국 전쟁의 희생으로 죽어간 영화인데, 물론 여기서도 가해 측에 대한 배려가 없는 피해측 입장에서 그려진 군국주의적 작품이라는 비난이 일었으나 전쟁이란 공간 자체가 일부 호전주의 특권층을 제외한 모든 이들을 피해자로 몰고 가는 파괴행위임을 어린 주검들을 통해 전달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일방적인 군국주의 측 입장에서 그려진 작품으로 비난하기만 하는 것은 전체 의도를 무시할 수 있다. 결국 전쟁 그 자체의 잔혹성과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일본 측 시점에서 그렸고, 피해국 측 실태나 일본정부 측 자성의 내용은 부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국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주요작품들
한편, 1989년에는 하늘을 나는 귀여운 마녀를 통해 그려진 인간세계와 그녀의 모험을 그린 일본판 해리포터의 느낌이 짙은 [마녀 배달부 키키]의 매력, 1991년에 개봉된 어린 시절 추억 속의 향수를 그린 [추억은 방울방울], 1992년 전쟁과 국가에 대한 갈등 속에 돼지로 변신한 엘리트 비행사의 마르코를 그린 [붉은 돼지], 1994년엔 자연환경이 훼손되면 곧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도 무너진다며 자연의 중요성을 강조한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을, 1995년에는 첫사랑의 순수함과 꿈을 향해 살아가는 청춘 남녀의 잔잔한 스토리가 아름다운 [귀를 기울이면]을, 1997년에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와 같은 맥락으로 자연과의 공생, 환경문제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인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 1999년에는 괴짜들이지만 소소한 가족단란의 풍경이 어딘지 따스하게 느껴지는 [이웃집 야마다군]이 개봉되었다.

그리고 2001년에는 초등학교 5학년인 치히로가 우연히 들어선 신들의 세계(화려한 공중목욕탕)에서 그 속의 요괴나 신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자신의 가능성을 걸고 펼치는 환상적인 각종 모험을 그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개봉하여 동원관객 2350만 명을 기록하였고, 베를린 국제영화제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일본 영화사상 처음으로 골든 베어 상을 받았고, 2003년도 아카데미상(장편 애니메이션 부문)을 수상하였다.

   
▲ '고양이의 보은'에 나오는 고양이 수도꼭지
2002년에는 [하루]라는 여고생을 통해서 신비스런 고양이 세계를 그린 [고양이의 보은], 2004년에는 전쟁이란 구조 속에 내재된 여러 가지 모순을 작품 곳곳에서 표출하며 평화를 갈구하는 심오한 의지를 그린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2006년에는 용과 인간과 마법의 공존세계인 earthsea를 통해 보는 인간의 삶의 모습. 생로병사에 접한 욕구와 목숨의 소중함 등을 효과적인 스토리 전개로 보인 [게드 전기; Tales from Earthsea], 2008년에는 마치 동화 [인어공주]를 연상하게 만들며 그 주제가가 인기를 모았던 [벼랑위의 포뇨], 2010년에는 자그마한 소녀 아리에티가 시골에 요양 온 소년과 자연친화적인 환경 속에서 유대를 가지는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그린 [마루 밑의 아리에티], 2011년에는 일본의 패전 직후 과거를 덮고 새로운 것을 건설하자는 주장에 역사와 전통의 소중함을 간직한 건물 보존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전후 혼란기의 수습 과정을 전하며 그 속에 애잔하며 따스한 첫사랑의 아름다움을 그린 [코쿠리코 언덕에서]를, 그리고 2013년 7월에 개봉된 일본 군국주의 상징의 하나인 가미카제 특공대에 사용된 일본 해군 항공대 주력 전투기를 설계했던 호리코시 지로(堀越 二郎,1903-1982)를 모델로 하여 그의 역사 인식의 한계라고 비판 받는 [바람이 분다]를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선택하였다.

기존의 미야자키 감독은 일본의 우경화를 우려하며 헌법 개정으로 전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당치도 않다는 주장과 종군위안부 문제는 깔끔하게 인정해야 한다며 우익을 비판하는 등, 주로 평화 및 환경 생태문제, 전쟁의 참혹하고 비열한 구조 등을 작품 속에서도 강하게 주장해 왔다. 특히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전쟁이란 구조의 실체를 파헤치며 언론의 참전 조장과 전승 미화 등을 그려 온 그였기에, 그 작품은 19세기 이후에 펼쳐지는 근대 전쟁 구조를 연구해 온 필자조차도 다섯 번 넘게 보면서 그가 주장하고자 한 [반전 평화]의 취지와 작품 의도를 분석하느라 신경 썼던 작품이었다.

그렇기에 미야자키 감독은 정책의 잘못됨도 과감하게 비판하는 용기와 신념을 가진 의식 있는 인물로 평가해 온 필자로서는 그가 일본의 침략전쟁의 상징적 전투기로 패전 직전에 숱한 조종사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가미카제 특공대가 사용한 제로함상전투기 개발자이자 新미츠비시중공업의 참여(이사직, 중역)였던 [호리코시 지로]를 비행기에 동경하여 꿈을 이룬 성공적 사례로 미화시킨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에 미야자키 자신의 모순된 역사의식의 한계점에 달한 것이 아닌가? 아니면 모든 사회적 책임을 내려놓고 단순히 자기만족에만 충실하고선 은퇴라는 도피행을 한 것일까?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물론 그가 항공사 중역의 아들로 성장했기에 비행기에 동경을 하며 수많은 작품 속에 하늘을 다양한 형태로 비행하는 내용이 그려진 비행기와 관련된 판타지 애니메이션 이였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평화와 반전, 환경과 휴머니즘을 한결같이 주장해 온 미야자키 감독이기에 수많은 살상과 전쟁을 위해 사용된 제로함상전투기 개발자를 작품화 시킨 의도를 생각하다보면 결국 그가 전쟁 반대와 환경 보호, 생태계의 보존을 주장하던 모든 작품의 본질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일본에서는 한국이 과민한 반응을 한다며 미야자키 감독 작품을 감싸고 있으나 그것은 한국의 반응 운운하기 전에 일본의 평화적 상징으로 세계적인 문화의 거장으로 자리 잡아 왔던 미야자키 하야오란 인물이기에 그가 만든 작품의 주인공이 과연 얼마나 많은 전쟁기여를 하였고, 얼마나 많은 젊은 조종사를 편도 연료만 넣어 적진에서 자폭하게 하는 잔인한 비행기의 설계자였는지에 대해 일본 자체 내에서 자성이 일어나야 하고, 자제를 촉구해야 할 내용이 아닌가 싶다.

일본의 베테랑 가수 유민이 부르는 [하늘에 동경을 하여….]라는 서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주제가를 중심으로 홍보를 전개하고 있으나, 실화를 다룬 이 작품 자체가 단순히 첨단 과학기술을 현실화 시켜서 일본인이 구미 대국들을 상대로 전쟁을 할 수 있었다는 아시아적 열등의식의 승화를 피날레로 장식하고 싶었는지 어떤지는 미야자키 본인의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자칫 이 작품을 통해 호리코시 지로가 아름다운 인간 승리 이야기로만 인식된다면 자폭특공대를 조장한 비행기 설계자를 미화시킨 [일본인 미야자키 하야오]가 세계적 애니메이션의 거장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동안 침략전쟁을 은폐하고 고치려하던 역사 수정주의자들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의 작품을 좋아하여 대부분의 작품을 봐 왔고, 그를 일본인이라는 카테고리보다는 디즈니 애니메이션과는 분위기가 다른, 사회적인 의식도 있는 세계적인 애니메이션의 거장으로서 좋아했었기에 [바람이 분다]를 마지막으로 은퇴한다는 사실에 참으로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게다가 그의 작품들에는 수많은 한국인 스텝들도 작화 협력을 하고 있기에 그의 은퇴 선언을 듣고 나니 그동안 즐겨왔던 작품들의 본질적 취지가 감춰졌었던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드는 건 필자만의 과민일까?

사회적인 영향력이 있는 공인이라면 자신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 역사적 영향을 생각하여 끝까지 책임 있는 행동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 본다.

지브리 스튜디오를 다녀와서

   
▲ 넝쿨에 뒤덮인 지브리 스튜디오 전경
필자가 맡아놓은 의뢰 논문들을 제쳐놓으면서도 이렇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 대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그의 은퇴선언 직전 그가 1985년에 도쿠마서점의 출자로 기획하여 창립한 스튜디오 지브리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지브리(Ghibli)라는 명칭은 사하라 사막에 부는 열풍이란 의미로, 이탈리아 카프로니사의 2차 대전 중에 사용된 정찰/폭격기의 이름을 땄다고 한다. [붉은 돼지] 속에 나오는 비행기 엔진 명칭도 지브리로 사용되었던 만큼, 비행기에 대한 미야자키의 애착이 보이는 이름이다.

넓은 3층 건물과 옥상을 활용한 스튜디오 지브리는 필자의 옆 동네인 미타카시에 있는데, 대학원 제자가 미타카 시민이기에 예약 제한으로 구입이 힘든 입장표의 예매 우선권이 주어진다고 하여 그녀와 함께 망중한을 즐기려고 다녀온 것이다. 입장 제한은 현재 서울에서 지난 6월부터 9월22일까지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중인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전]에서도 예매를 하면 정해진 날짜에만 입장을 할 수 있다는 조건 예약제라서 되레 구매력을 높이는 효과를 자아내고 있다. 해외에도 인기가 많아서 외국인은 현지 여행사를 통해서 단체 관람을 오는 경우가 많고, 외국의 현지 티켓 판매점에서 직접 관람 예매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Lawson이란 편의점에서 예매를 할 수 있고, 티켓도 최대 6장까지 구입 가능한데, 시간 예약제가 되어 있어서 항상 많이 붐빈다. 하지만 지브리 스튜디오가 미타카시에 있기 때문에 지역 공헌이란 차원에서 지역민들에게 우선 예약으로 티켓을 판매한다고 한다.

일단 실내의 모든 사진 촬영은 금하고 있고, 입구에서 보면 건물 전체에 나무나 풀, 꽃들로 덮여서 마치 숨겨진 아지트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제자와 오후 2시 입장 약속을 하였기에 입구에서 만나서 티켓을 받아 들고 들어가니, 예매한 티켓 대신 지브리 작품의 필름을 티켓화 시킨 것으로 바꿔 준다. 지브리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소중히 하고 싶은 티켓이었다.

   
▲ '라퓨타'에 나오는 거인병사
입구의 천장은 지브리의 작품이 그려진 게 아니라 필자가 피렌체에서 머물렀던 호텔의 천장과 같은 그림이었기에 조금 의외였다. 입구에서 계단을 내려가니 각종 작품들과 관련된 필름과 작품 과정, 다양한 스케치 및 애니메이션화 하는 과정을 부분별로 만들어 놓았고, 입구 반대쪽에는 단편 작품 영화도 상영되고 있었다. 2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와 계단 외에 장난스런 모험형 계단도 있었고, 돔형의 천장에는 그의 작품 속의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주로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의 다양한 과정이 2층 왼쪽에 디스플레이 되어 있었고, 반대편에는 각양각색의 렌즈나 애니메이션에 활용되는 도구 등에 대한 설명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3층은 왼쪽이 관련 상품 매점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이웃집 토토로] 속에 나오는 고양이 버스를 그대로 재현해 놓고 어린 아이들이 시간제로 즐길 수 있도록 해 놓은 플레이 룸과 책자 및 팸플릿 등을 판매하는 서점이 있었다. 필자도 2층의 렌즈에 관련된 설명에서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내용이 있었기에 600엔을 주고 팸플릿을 구입한 뒤, 3층 고양이 버스가 놓인 곳의 출구를 통하여 밖으로 나갔더니 지브리 스튜디오 전체가 보이는 곳이었다.

그 곳에서 나선형의 계단을 따라서 올라갔더니 옥상에는 1986년에 개봉된 [천공의 성 라퓨타]에 나오는 거인 병사 무스카가 전시되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촬영을 하고 있었다. 필자가 사진을 찍으니 제자가 옆에서 [저 거인 병사 뒤쪽에 팔찌가 숨겨져 있다는데 보셨어요?] 그런다. 그래서 뒤로 갔더니 아래에 예쁘장한 팔찌가 있어서 사진을 찍고선 뒤쪽 풀숲 길을 갔더니 라퓨타어로 된 석상이 있었다. 여름방학이라서 그런지 외국인들이 많았고, 모두 다양한 외국어로 촬영을 즐기는 것 같았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려 했으나 도저히 기다려서 먹을 수 있는 행렬이 아닌 행렬이 대기실 텐트 안을 꽉 채우고 있었기에 우리는 옆에서 테이크아웃을 할 수 있는 곳에서 간단한 지브리 특식 메뉴를 즐겼다.
손을 씻으려니 수도꼭지조차도 고양이 모양이고, 화장실도 아기자기한 인형과 목제 사용이 내추럴하게 환경적으로 잘 배려되어 있었다.
게다가 어린애들도 즐길 수 있도록 건물 밖에는 옛날식 수도를 설치해 놓기도 하고, 하다못해 벽돌에도 지브리의 문양을 넣어 놓았고, 밖으로 연결되는 곳에는 각종 캐릭터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장식되어 있는데다 바깥에는 풀숲과 나무들이 울창하여 힐링 공간을 즐길 수 있는 분위기였다.

   
▲ 지브리 미술관 입구
오밀조밀한 분위기 속에서 지브리의 각종 작품의 밑그림이나 핸드 메이드의 인형들을 보노라니 애니메이터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보고(寶庫)와도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의 2-3년 고생이 영화 2시간이다]는 지브리 측의 말처럼 작품 하나에 걸리는 고생을 눈으로 확인한 것은 좋았던 것 같다. 그 많은 고생이 모든 사람들에게 다 평가를 받는다면, 국경을 넘어서 모두를 즐겁게 볼 수 있도록 해 주는 작품이라면 더 좋을 텐데… 지금 심경으로는 당시의 소중했던 그 시간과 아쉬움이 오버랩 된다.

나중에 나오기 직전에 1층에서 상영 중인 단편 영화를 제자와 봤는데, 그 입구에는 멀리 가나자와에서 온 유학생이 한국 친구를 데리고 와서 설명을 해 주고 있었다. 한국 사람들에게도 친숙한 지브리의 다양한 작품들과 지브리의 작가 감독들. 보다 넓게 역사 인식을 가지고 세계를 볼 수 있는 진정한 휴머니즘 정신이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지금 그의 은퇴설을 앞에 두고 자꾸 겹쳐진다.

렌즈, 안경의 역사와 뉴턴의 광학론

필자가 스튜디오 지브리의 2층 애니메이션 부품 설명 코너에서 본 [렌즈]에 대한 설명이 재미있어서 소개를 해 두려고 한다. 필자는 중학교 때 부터 시력이 안 좋아서 안경을 끼다가 콘택트렌즈를 사용하다 결국 요즘은 다촛점 원근 양용 안경을 사용하는데, 지브리에서 렌즈의 설명을 읽다보니 모르는 사실이 재미있게 설명이 되어 있어서 메모를 적고 있자니 옆의 직원이 같은 내용의 팸플릿도 있다고 하기에 구입하였다. 한국에는 대학에 안경학과도 설치되어 있다고 하니 필자의 소개 내용이 초보적 내용일 수 있겠지만 안경사용이나 렌즈 활용자가 많은 현대사회이니 간단히 소개해 둔다([지브리 숲의 렌즈 전]에서 일부 번역 인용).

   
▲ 지브리 미술관내 커페 정원
렌즈는 고대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 그리스 등의 유적에서 수정이나 유리 같은 것으로 만들어진 구슬이 발견되었는데 이런 것들은 장식품이나 종교적 의식 때 사용되던 도구로, 그 구슬의 각도에 비친 경치를 즐기는 등, 렌즈의 역사는 고대에 거슬러 올라간다.
가장 오래된 렌즈는 니네바(지금의 이라크 북방, 앗시리아의 고도) 유적에서 기원전 700년경에 직경 약 4센티의 수정을 연마한 볼록 렌즈가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태양광을 모으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우연히 렌즈의 형태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예상된다.

렌즈의 어원은 그 모양이 음식물인 [렌즈 콩]과 닮아서 렌즈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콩은 라틴어로 lens라고 한다고. 볼록 렌즈와 닮은 형태의 렌즈 콩은 지중해 연안을 원산으로 하며, 인류가 기원전부터 식용으로 재배했다고 한다.

렌즈 제조법에 대해서는 13세기 영국 수도사인 로져 베이컨이 적은 저서에 볼록 렌즈는 [확대경으로서 시력이 약한 사람에게 유효하다]고 적혀져 있어서 책 등을 읽는 지식계급층에 노안경으로 필요성이 높아졌는데 15세기에 들어서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베니스)에서 투명도가 높은 유리구슬 제조기술이 뛰어났기에 안경용의 볼록 렌즈나 오목 렌즈가 이곳에서 많이 제조되어서 세계에 확대되었다고 한다. 베네치안 글라스는 아름다운 유리 작품성으로도 유명한 것은 필자도 확인한 바, 안경 렌즈가 이곳에서 다량으로 제조되었다는 것은 납득이 가는 말이다.

참고로 베네치아 출신의 상인이었던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에서 [중국에서는 노인들이 문장을 읽을 때에 렌즈를 사용하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고 하는데, 필자가 베네치아의 마르코 폴로 생가에 갔던 칼럼을 적었을 때 [동방견문록]의 진위성 문제의 지적도 한 적이 있기에 사실 여부도 정확하다고 명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1515년에 화가 라파엘로가 그린 로마법왕 레오10세의 초상화에 돋보기 같은 것이 쥐어져 있는데, 돋보기의 반사광이나 법왕이 강한 근시안의 가계 출신임을 감안할 때 그의 안경은 근시용 안경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그리스도교를 전달한 선교사 프란시스코 사비에르(Francisco Xavier)가 1550년경에 스호우(지금의 야마구치현)의 권력자 오오우치에게 노안경을 헌상한 것이 일본 최초의 안경이라고 한다. 야마구치 시에는 지금도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대리석의 삼각형 사비에르 성당이 있고, 필자도 야마구치 재직 때는 자주 주변을 들렀던 곳이다. 그의 아시아의 선교활동은 널리 잘 알려져 있고, 케임브리지 대학 방문 때 근처의 성당에서 본 팜프렛에도 그의 일본에서의 선교 활동이 영문으로 소개되어 있기도 했다. 참고로 야마구치에서는 일본에 처음으로 크리스마스트리를 소개한 것도 프란시스코 사비에르라고 하는데,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장식물이 없었기에 아마도 초롱으로 장식했을 것이라는 소개도 마츠리에서 들은 적이 있다. 현존하는 일본의 가장 오래된 안경은 에도시대의 초대장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노안경이라고 한다.

지브리 스튜디오 2층에서는 특히 빛과 렌즈와의 상관성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렌즈의 역사 및 활용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빛에 대한 설명이 아래와 같이 소개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빛의 성질을 이용하기 위해 렌즈라는 도구를 만들었지만 원래 빛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에 대해서는 약 350년 전에 만유인력의 발견으로 유명한 아이작 뉴턴(1643-1727)이 해명할 때 까지는 잘 몰랐었다. 그는 무색투명하게 보이는 태양의 빛이 일곱 색의 빛으로 되어 있고, 그것들을 섞으니 투명하게 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 일곱 색의 성질이 하나하나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에 렌즈에는 흐릿한 현상이 생긴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 결과 렌즈 제조의 공식도 얻을 수 있었다.]

우리가 초등학교 때 배웠던 빛의 지식이 새삼 떠오르는 내용이다.
아이작 뉴턴이 스펙트럼 현상을 실험하며 프리즘에 의해 분해된 광선을 다시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색이 분해되지 않고, 그가 발견한 색에 대응되는 다른 크기의 빛 입자가 진동을 일으켜서 색을 만들어 낸다고 역설하며 1704년에 [광학(Opticks)]이란 책을 출판하였던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참고로 아이작 뉴턴의 친필 노트북이나 그가 사용했던 물품 등은 현재 셰익스피어의 초판 작품들이나 밀턴의 초고와 더불어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컬리지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필자는 버트랜드 러셀 원고를 확인하느라 들어갔기에 내용을 확인할 시간은 없었으나 트리니티 컬리지 도서관에는 수많은 역사상의 위인들 관련 책이나 원고, 논쟁 편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 빨간 벽돌에 새겨진 지브리 문양
지브리에서 작품들을 보다보니 어느새 4시간이 지나갔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우리도 지브리를 나오다가 제자가 이끄는 뒤쪽으로 갔더니 거대한 토토로 인형이 들어있는 출구가 보여서 그 곳에서 사진을 찍자니 사람들이 꽤 몰려왔다.

국경을 초월한 애니메이션의 매력을 전해 준 미야자키 감독을 포함한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들이 영원히 평화적 휴머니즘의 상징으로 있어주길 바라고, 인류 보편의 지구 생태 보존과 환경 보호, 반전 평화 의식을 관철하여 지구촌 사회를 이끌어 주기에는 너무 지나친 기대일까?

오늘도 도쿄 올림픽 유치를 위해 도쿄도 지사 및 관계자들은 브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필사적으로 도쿄의 매력을 어필한다고 한다. 도쿄 유치 여부는 9월 8일에 결정이 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날, 일본 우익배라 부르는 재특회 등의 조직들이 신주쿠 등에서 대대적으로 한국인 학교의 무상화 반대 데모를 전개한다는 연락이 와있다. 한국 조선인들은 무조건 죽이라며 광기서린 헤이트 스피치 행위를 하는 무리들이 있는 도쿄.

과거를 덮기만 하면 모든 게 정리된다고 착각하며 한치 앞도 못 보는 일부 움직임들을 보다 보면 일본의 미래가 정말 걱정이다. 정작 역사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의 감정만으로 부딪치면 대화의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웃 나라와의 불협화음이 결코 자국의 득책이 될 리가 없지 않은가?

글로벌사회기에 더욱 더 신중히 상대국을 배려하며 함께 파트너십을 돈독히 해야 자국의 안정도 확보가 되는 것이다. 전쟁 가해국 이었기에 강력한 재무장은 그만큼 국제적 신뢰를 잃게 되는 법. 그렇기에 과거를 명확히 하고 미래를 함께 보는 이웃이 되기 위해 지금 일본은 미래지향적인 현안으로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 어제도 오늘도 홍수, 돌풍, 지진, 침수, 천둥벼락, 정전, 폭풍 경보 등으로 경황없는 날씨 변동이 계속된다. 한국도 포함해서 서로가 주변국들과 소중한 관계를 유지해야 다가오는 시대적 문제를 함께 대처할 수 있다.

이럴수록 외교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과거사 문제를 깨끗이 청산할 용단이 필요하고, 서로 존중할 수 있는 대화로 해법을 찾는 것이 함께 사는 최선의 방법이 된다. 그렇기에 정치가들에게만 모든 것을 맡길게 아니라 각계각층의 문화적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를 올바르게 가도록 진취적인 사회 분위기 조성에도 진력하는 책임 의식이 수반되어야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은퇴설과 [바람이 분다]를 마주한 지금, 아직도 역사의 상처를 치유할 수 없는 우리는 사회적인 책임의식의 유무를 다시금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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