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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사회의 인종차별 무엇이 문제인가?
김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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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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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삼오 / 호주 한국일보 편집고문 ]


   
▲ 김삼오 박사
나는 이 글을 런던에서 쓰고 있다. 당연히 요즘 이스트우드나 한인사회의 분위기를 잘 모른다. 다만 이번 연방 총선에서 베네롱에 출마한 중국계 변호사인 제이슨 얏-센 리(Jason Yat-sen Li) 노동당 후보가 특별한 관심을 끌 것으로 짐작해본다.

이유는 두 가지다. 그가 노동당의 공천을 받은 지역구는 중국인과 한인 밀집지역인 이스트우드가 낀 베네롱이다. 그가 이 주요 선거구의 노동당 후보로 낙점된 것도 그런 인종적 분포 고려에 따른 것으로 생각된다. 그가 이 지역의 존 알렉산더 현 의원(자유당)을 누르고 당선된다면 오랜 백호주의로 알려졌던 호주 연방 하원에 순수 아시안계가 입성하는 첫 케이스가 될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인종차별의 피해 의식에 절은 아시아계 등 유색인들에게 반인종차별 세력 또는 운동(그런 운동이 존재한다면)에 큰 우군 하나를 얻게 된다는 기대가 아닐까 싶다. 인종, 당과 공약 가운데 유권자들의 표가 어느 쪽으로 향할지는 9월7일 선거 결과가 판가름할 것이다.

이 글은 그 전망을 짚어 보는 시사 논평이 아니다. 특정 후보를 지지해서는 더욱 아니다. 차제에 우리도 그 일
부인 아시안들의 삶을 실제나 관념적으로 짓누르는 인종차별 이슈와 그 개선책에 대한 나의 평소 지론을 짧게 정리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떡 본 김에 고사 지내는 격이라고나 할까.

1970년대 초 언론인 자격으로서 뉴욕에 가 하던 학위 공부 일과의 하나는 매일 아침 나가 뉴욕타임스를 사서 읽는 것이었다. 자연히 여러 미국의 시사 문제에 밝아진 건데 지금도 기억되는 하나는 미국의 중국, 필리핀, 한인 커뮤니티 간에 반인종차별 운동을 위한 연대(United front)의 필요성이 늘 제기된 사실이다.

호주 와서 살면서 자나 깨나, 그리고 고국에 가면 의례 듣는 게 해외 동포들이 고초를 겪고 있다는 바로 이놈의 인종차별이다. 그런데 70년대나 지금의 미국, 호주, 그리고 다른 영미국가 속 한인들이나 다른 아시안들이 그 개선을 위하여 실질적으로 한 게 없다. 그건 인종차별 타령일 뿐이었다.

오늘 이들 나라의 인종차별은 겉으로 보기보다 복잡하다. 단순이 백인이 유색인을 차별한다고 말하는 것은 실태를 설명하지 못한다. 차별은 여러 층과 여러 방향으로 일어나는, 학술적으로 말하면 단선 모델(Linear Model)이 아니라 복합적 모델(Culvilinear model)이다. 아래를 읽어 가면 무슨 뜻인지 알게 된다.

이 복합적 상황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사회과학적인 접근이 필수다. 그러고 나면 해법은 장기적, 점차적이어야 하며 꾸준한 실천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회과학적인 접근이란 인종차별을 가져오는 한 가지가 아닌 많은 관련 변수를 찾는 것이다. 먼저 평소의 경험과 관찰과 지식(이게 통찰력)을 바탕으로 그런 변수들을 가정해보고 그 가정(假定, hypotheses)들을 데이터(사례라고 해도 된다)를 모아 검증하는 것이다.

그런 방대한 작업을 칼럼이란 제목이 붙은 지면에서 다룰 수 없다. 임시방편으로 몇 가지 내가 생각해보는 가정과 현장 경험과 관찰, 잠정적 대안을 적어보고자 한다.

“백인 보다 유색인끼리 더 따뜻한가?”

<가정1> 전통적으로 인종차별의 가해자는 영미권의 경우 주류인 앵글로색슨-켈틱 백인이고 피해자는 소수인 유색인인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인종과 인종차별의 과거 (역사성)는 불행하게도 바꿀 수 없는 변수다.
그런데 여기에도 빠른 변화가 왔다. 왜? 제3세계 이민자의 대거 유입으로 이들 나라 인구 중 유색인의 비중이 40%에 육박한다. 대도시의 지역에 따라서는 백인을 잘 볼 수 없다. 백인과 유색인간 혼혈로 그 추세는 더 빨라지고 있다. 언제까지 차별의 원인으로서 인종을 내세야 하나? 요즘 이민부, RTA(도로교통국), 카운슬, 센터링크 등 민원 관청의 카운터에 가보면 직원의 거의 절반이 중국인, 인도인, 중동인 등 유색인들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일을 보러 갈 때마다 내 차례가 원어민 순수 백인 직원이기를 은근히 바란다. 대개의 경우 영어를 하나 완전하지 못한 유색인보다 영어가 확실한 백인의 매너가 더 좋고 친절하기 때문이다. 전자가 같은 유색인을 약하게 보고 무례하게 대접했다면 그건 인종차별의 사례가 아니다. 사회경제적 약자(특히 현장에서라면 언어와 사회 지식 면에서 대응 능력, 차후라면 개인 또는 집단 차원의 시정 또는 권리 구제를 받아내는 능력이나 노력 부재)로서 받는 차별이다. 서부 지역 길거리나 기차역 근처에서 놀리거나 위협을 하는 손자 같은 아이들,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아시안에게 야유를 퍼붓는 젊은이들도 백인보다 중동계 등 유색인 가운데 많은데 마찬가지 사례다.

대응 능력은 방어 능력과 같다. 불과 얼마 전 기차가 안 다니던 주말이었다. 30 여명의 아시아인(허름한 차림새의 영어를 못할 것 같은 아마도 중국계 중년 부인)들이 버스를 기다리면서 자기들 말로 떠들어 대고 있었다. 버스가 제 시간에 안 와 안절부절 기다리면서 이미 화가 나 있던 백인 신사(?)가 이들을 향하여 “샷 업!(Shut up!)”하고 고함을 치는 것이었으나 모두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이게 아시안들의 처지다. 나도 혼자 도맡아 싸울 수 없어 잠자코 있었으나 씁쓸했다. 모두 영어 능력이 첫째인 방어 능력이 관건이다.

<가정2> 인종차별은 국가 정책 또는 사회제도(이른바 institutional discrimination)에 따른 게 아니다. 대부분 법과 제도와 정책의 영역 밖인 인간관계와 조직의 내부에서 일어난다. 백인이 중동인을 싫어한다면 그런 예다. 앞서 지적한 달리는 차 안에서 소리치는 행위, 직장 면접에서 고용주가 비슷한 조건인 지원자 가운데 백인을 선호하여 낙점했다면(그런 사실을 시인하지 않는 한) 역시 마찬가지다.

이때 문제는 유색인에 대한 숨은 정서 및 태도이니 대안은 그걸 바꾸게 하는 노력이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주류 매체를 통하여 이민자들의 처지와 고충을 주류 사회에 알려 이해를 얻고 여론에 호소하는 것이다. 그 일은 남이 알아서 해주지 않는다. 우리가 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노력이 호주나 다른 영미 권에서 있었나?
신문이라면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시드니모닝헤럴드 등 주류 매체에 글이 나와야 하는데 우리에게 그런 수준의 글을 기고할만한 인재가 없다.

왜 없는가를 생각해보는 사람도 없다. 고국 정부는 우리 동포 끼리나 읽는 이민생활의 애환을 그리는 문학을 현상 모집으로 장려한다. 정부나 해외 한인사회에 국제무대에서 고국이나 자체 사회를 대변하여 쓸 수 있는 인재 양성책은 없다. 정부 주도 민족의 우월성을 홍보하는 영문간행물 수준의 퀼리티로는 어림도 없다. 때로는 역효과다.

호주의 가치와 매너

<가정3> 또 하나 중요한 대안은 주류 사회로부터 호감을 받는 소수민족이 되는 것이다. 거주국들은 다양한 이민자 문화를 수용한다는 다문화주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이건 정책일 뿐이다. 이민자들이 자기 식으로 살기 위하여 호주에 왔다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특히 호주의 가치 (Australian values)와 매너를 배우고 지키지 않겠다면 말이다.

이점을 다루자니 급속도로 늘어나는 중국인 커뮤니티를 언급해야 한다. 영미인은 한인과 중국인, 그리고 이들 간 현지 거주와 방문자를 구별 못한다. 똑 같이 아시안이고 심지어는 모두 ‘차이니스’로 인식한다. 한국인이 특별히 나을 것도 없지만, 보도에 따르면 요즘 영미사회를 잘 모르는 체 처음으로 밖으로 쏟아 나오는 중국인들의 나쁜 이미지는 가히 걱정할만하다.

호주에서 특종 인종이나 이민자 사회에 대한 부정적 언급은 금기다. 하지만 이 글의 목적 상 불가피하다. 지난 8월 12 일자 중앙일보 인터넷 판에는 “중국 졸부들 무례 못 참겠다, … 눈살 찌푸린 지구촌”이란 제목으로 해외로 대거 나가는 중국인 관광객과 비즈니스맨의 매너가 현지에서 어떻게 받아지고 있나를 비판하는 긴 기사가 실렸다. 여기에서 자세한 내용을 소개할 수 없으나 요컨대 관련 국가들은 ‘돈보다 선진 시민의식’이 먼저라며 이들을 기피한다는 것이다.

아시안 커뮤니티 간 연대(그런 게 필요하다면)는 반인종차별을 부르짖기 전에 전체 아시안의 이미지 향상을 위한 공동 노력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논의는커녕 서로 간 소통의 채널조차 있는 것 같지 않다.

1988년 말 아니면 그 다음 해 초 내가 아직 [호주소식]을 아직 하고 있을 때다. 중국커뮤니티의 한인회 격인 Australian Chinese Community Association이 헤이마켓에 있는 회관에 아시아계 대표들을 초청하여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커뮤니티의 현안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모임을 가졌다. 우리 측 참석자로는 당시 조기덕 한인회장과 내가 갔었다. 기억에 남는 참석자로는 당시 중국계의 여성 지도자 헬렌 샴오 NSW 상원의원과 베트남계인 SBS 라디오 쾅 루 사장이 함께 했다.
참석자들이 마이크 앞에 나가 발언을 했다. 나도 술 한 잔 마신 김에 나가 두 가지를 제안했었다. 이 분야를 공부한 한 사람으로써 말한다면서 첫째 우리 커뮤니티의 아젠 다를 주류 사회에 부각시키기 위한 주류매체 접근 방안 강구이고, 둘째는 그날 모임에 나온 이슈들을 구체화하기 위한 후속 모임을 정례화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그 뒤 곧 한국에 일 하러 떠나 버려 말뿐인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 후 추이를 잘 모르지만 이들 커뮤니티 간 어떤 공식 대화가 계속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최근 시드니 한인회가 중국 커뮤니티가 주동이 되어 매년 시드니에서 열리는 Chinese New Year 축제의 이름을 바꿔달라는 요청을 시드니 카운슬에 했다는 보도를 봤다. 음력 설(Lunar New Year)은 중국의 전유물이 아니므로 그 요청은 타당하다고 본다. 다만 필자 개인으로는 그 뻑적지근한 행사는 호주에서 잘 살게 된(?)양 커뮤니티 파워의 과시는 될지언정 1등 소수민족으로 인정받는 패스포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평소 두 커뮤니티 지도자간 교감과 의견 조율이 있었더라면 그런 시정을 위한 공식 공문을 시에 낼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사실 생김새가 비슷한 같은 아시안이라고 해도 지도자끼리는 몰라도 민원 관청이나 길거리에서 만나게 되는 우리와 중국인 간은 정말 남남이다. 내가 사는 거리에도 10개 가정 중 셋은 중국인이다. 백인들이 집을 팔면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런데 일부러는 아니지만 이들보다는 백인들 이웃과 단 한번이라도 더 대화를 나누게 되는 형국이다. 앞으로 소수 민족 간 어떤 협조나 공감대 조성이 필요하다면 이런 문제의 검토가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새마을운동

<가정4> 이번 한인회가 선포한 호주에서의 한인에 의한 ‘새마을운동’은 좋은 착상이다. 대중매체와 주류사회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좋은 과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운동은 모양새보다 내용이 중요하며 쓰레기 줍기 수준을 넘어 주류사회로의 수준 높은 융합을 위한 앞서 언급한바 커뮤니티 안에서의 호주 가치와 매너와 영어 교육 등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또 그 운동을 민족주의로 오해 받을 수 있는 ‘새마을’ 이름으로 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다. 새마을운동은 누가 뭐래도 정치적 색깔이 농후한 정책이었다. 특히 나 개인으로는 원래 게으르던 우리 민족이 이 운동으로 부지런하고 성실해졌다는 식의 국제 홍보를 개탄한다.

그 사업이 그렇게 성공적이었다면 어떻게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비리 공화국으로 불린단 말인가? 최근 김창준 전 미연방 상원은 미주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한국의 부패는 아시아에서 중국 다음으로 최고로 심각하며 이대로는 나라가 잘 될 수 없다고 여러 자료를 들어 강하게 주장했다.

결론으로 앞으로 아시안의 연방 정계 진출이나 같은 맥락에서 현재 진행형인 한인들의 시의원 당선은 축하할 만하나 그 자체 하나로는 호주에서 인종차별 세력을 잠재우는 데 큰 보탬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호주의 인종차별은 폴린 핸슨과 같은 인물을 제외하고는 정치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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