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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조선학교 - <6>
김명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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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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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촌동포연대(KIN)와 프레시안의 ‘조선학교’ 연속기획 6번째 이야기


               < 대지진과 조선학교의 모금, 日정부의 배은망덕 >
                                          "자꾸 만나야 한다"


[ 김명준 / 몽당연필 사무총장 ]


이야기 하나!

몇 년 전이었다.
어떤 작은 조선학교, 학생수 30명도 채 되지 않는 조그만 학교였다. 이 학교에 일본경찰이 진입했다. 겉으로는 '조총련'에 대한 조사였다고 하지만, 유치원 아이들, 초등학생들이 즐겁게 수업하고 있었던 시간에 학교를 '진압'하듯이 침탈한 행위는 마땅히 '재일조선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탄압행위였다. 수업 중에 느닷없이 검은 옷을 입은 무장한 경찰 수십명이 학교를 가득 채우자, 아이들은 공포에 질렸다. 그 상처난 가슴을 되돌리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았다.

   
▲ 오사카 시장 하시모토 토오루(일본 유신회 대표)의 일방적인 교육보조금 중단 결정과 고교무상화 실현을 위해 매주 화요일마다 오사카부청사 앞에 모여 항의집회를 하는 '고교무상화 실현을 위한 오사카 연락회' 사람들. 가운데는 그날 집회에 어머니와 함께 참여한 조선학교 초급부 1학년생. ⓒ김명준
이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된, 남쪽의 문화예술인 단체에서 '공연단'을 파견했다. 일본관서지방에서 벌어진 경찰의 조선학교 및 재일조선인 탄압에 대한 항의의 의미를 당국에 전달하고, 동포들과 아이들의 상처난 가슴을 어루만져 주기 위한 '공연'을 준비한 것이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그 행사들에 참여하게 되었고, 거기서 '조선학교'를 우리가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지 분명히 알게된 작은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교토 근처에 있는 작은 도시의, 그야말로 작은 '조선학교'를 찾은 공연팀은 정문에 들어서자 마자, 고사리 손에 색종이로 만든 꽃다발을 들고 반갑게 자신들을 맞아주는 유치원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학교에 찾아와 주시어 고맙습니다' 라고 크게 말하며 아이들은 그 종이 꽃다발을 공연팀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에 걸어주었다. 그리고, 학교 복도에 걸려 있는 '남쪽에서 오신 공연팀'의 얼굴들, 바로 자신들의 얼굴 사진을 보았을 때는 그야말로 가슴 속이 먹먹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이야기는 이랬다.
일본경찰의 학교 침탈 이후에, 아이들은 학교에 낯선 사람이 드나드는 것을 너무나 무서워했고, 선생님들은 남쪽에서 찾아오시는 분들까지 아이들이 두려워할 것을 염려했다. 자신들이 입은 상처를 달래기 위해 노래하러 달려오시는 분들인데 실망시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유치원, 초등생, 중학생 할 것없이 모두에게 '이런 고마운 분들이 우리학교를 찾아옵니다. 모두 인사 잘 하자요!' 라며 공연팀 뿐 아니라 수행하는 사람들의 사진까지 복도에 붙이고, 아이들이 지나 다닐 때마다 보고 익히도록 한 것이다. 또, 공연팀이 부르는 노래의 악보와 음원을 선생님들이 미리 받아서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함께 부르면서 '이렇게 고마운 분들이 우리학교에 옵니다. 모두들 즐겁게 맞이하자요!' 하며 손님맞이 준비를 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아이들은 이미 이 남쪽 어른들을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 '친근한 언니, 오빠'로 보고 있었고, 그 날의 공연은 아이들도, 어른들도, 1세 동포들도, 그리고 남쪽에서 응원하러 찾아 온 그들도 모두 '하나'되어 웃고 울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 지진 1년 후의 도호쿠조선초중급학교 졸업식. 진도 9의 지진을 견뎠던 조선학교 아이들과 선생님들. 정가운데 양갈래 머리를 한 초급생을 안고 있는 학생이 유일한 졸업생 김령화이다. 지진 당시 중급부 2학년생이었던 령화는 3학년 언니들과 함께 초급생들을 위로하러 달려갔다. ⓒ김명준

이야기 둘!

2011년 3월 11일,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시에 지진이 발생했다. 진도 9. 진도 9는 어떤 느낌일까? 당시 센다이시에 소재한 '도호쿠 조선초중급학교'의 교장 선생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땅 위에서 서핑하는 느낌, 그리고 엄청난 굉음, 서 있기조차 힘들다.' 그 굉음은 40여년 동안 굳건히 아이들을 지켜왔던 교사의 창문들이 터지는 소리였다. 당시 중학생 언니들은 야외수업 중이었다. 그래서 운동장 한 켠에 고개를 박고 선생님과 함께 그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지진은 1분 동안 심하게 요동치다가 잠시 멎다가 다시 몇 분동안 굉음을 내며 요동친다. 그 몇분은 지옥이었고, 잠깐의 쉼은 공포였다. 그렇게 잠시 '멈춤'이었을 때, 교사 문을 통해 초급부 담임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 급히 나오는 것을 중학생 언니가 발견했다. 중급부 담임의 귀에 "선생님, 초급부 아이들에게 가겠습니다."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한 중급부 언니가 초급부 아이들이 모인 자리를 가리키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괜찮아! 거기 초급부 선생님이 잘 보살필거야." 그렇게 말하려던 순간, 중급부 언니는 이미 초급생 무리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말릴 틈도 없었다. 그리고 모든 중급생들이 함께 달려가고 있는 걸 본 것도 찰나였다. 중급생들은 엉엉 울고 있는 초급생들을 안아주었다. "괜찮다! 조금만 기다려! 언니가 지켜줄께!' 이 순간을 함께 한 선생님들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지진이 일어나고 며칠이 지났다.
전국에서 동포들이 모아 준 지진구호 물품으로, 다른 일본사람들 보다 먼저 '밥'을 먹게 된 선생님들과 아이들, 그리고 이 지역 동포들. 그러나 바로 옆의 일본사람들은 아직도 일본정부의 늦장대응으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었다. 동포들은 두 끼니만 먹기로 했다. 그리고 남은 쌀로 주먹밥을 지었다. 된장으로 국을 끓였다. 그리고 대피소에 모인 이웃들에게 달려가 나누었다. 함께 살기 위해서였다. 이 이야기는 당시의 지역신문에도 대서특필된 미담이었다.

지진 사태가 어느 정도 조용해진 후, 미야기현의 지사는 수 십년 동안 지급되어 오던 도호쿠 조선초중급학교에 대한 지자체의 '교육 보조금'을 동결했다. 이유는 '지진 구호를 위한 재정이 부족해서' 였다.

   
▲ 지진 1년 후 후쿠시마 조선초중급학교 졸업식 풍경. 초급부 누나가 저학년 동생에게 상장 받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방사능의 위험을 피해 1년동안 전교생과 선생님들이 니이가타 조선초중급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해야했다. 학교 운동장과 교사에 묻어있는 방사능물질을 청소하기 위해 매주 동포들이 전국에서 찾아왔고, 그 인원이 1년동안 1000여명에 달했다. ⓒ김명준

이야기 셋!

영화를 찍으면서 만난 어느 재일동포의 이야기.
그는 일본고등학교의 영어교사이다. 전화기가 울렸다. 제자들이 졸업해서 가끔 안부를 묻는 전화를 해주니까, 이 전화도 그런 것이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그 제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제자는 경찰이 되는 것이 꿈이다. 당연히 일본경찰학교에 입학했다. 그 첫 수업에 교육을 맡은 강사가 들어와서 하는 말. "만일 어떤 마을에 범죄가 발생했다면, 우선은 제일 먼저 취해야 할 조치는 그 지역에 '재일조선인'이 사느냐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들을 먼저 의심하라!" 제자는 선생님이 '재일조선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숨기지 않는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그 제자는 그 사실이 너무 부끄러워 선생님에게 전화한 것이다. 불과 1년 전에 졸업한 제자였다. 당연히 그 강사에게는 '그 재일조선인'이 남쪽을 지향하느냐 북쪽을 지향하느냐는 상관이 없다.

일본에서 현재 재일동포들이 지켜가고 있는 민족교육이라 함은 '조선학교(약 80여개)', '한국학교(4 개)', 그리고 관서지방을 중심으로 일본학교에 다니는 동포학생들의 일종의 방과후 학습이라고 할 수 있는 '민족학급'을 일컫는다. 그러나 그 중에서 '조선학생'들은 유난히 눈에 띄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숨기지 않고 당당히 살아가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뼛속에 '조선인'에 대한 멸시를 각인하고 있는 일본의 '우익 지배자'들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수 밖에 없다. 60여년이 지나도 '동화'되지 않는 사람들이니까.

'착한 한국사람이건 나쁜 한국사람이건 모두 다 죽여라'(극우집단 <재특회>) 라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집회를 해도 일본경찰이 친절히 보호해 주는 나라,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여성들이 군인들의 성적욕망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하시모토 유신회 대표)' 는 말을 대놓고 방송에서 해도 다음 시장선거에서 당선되는 나라, 2013년 현재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나라의 한복판에서 '우리 말'과 '우리 문화'를 '당당히' 지켜 가고자하는 존재들이 바로 '조선학교'를 이루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이 학교를 '우리 학교'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지난 동일본 대지진 때에 북은 50만 달러를 재일동포 조직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총련)'에 보냈고, 10만 달러는 일본적십자사에 보냈다. 그리고 총련은 그들이 받은 구호기금을 민단동포들과도 나누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에서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일본인들을 돕자고 호소했으며, 약 600억 원 이상이 일본적십자사에 전달되었다. 전세계 각국에서 모인 기금 중 최대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정부는 한번도 '조선학교'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주요언론에서도 거의 다루지 않았다. 또한 일본정부는 조선학교가 '각종학교'라는 법적 지위에 있으므로, 복구기금 전액을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는 우익적 성향을 가진 미야기현의 지사는 '교육보조금'을 동결(이렇게 동결된 교육보조금은 이후 10여개 도도부현이 넘는다.) 해 버렸다. 일본정부는 '민주당'이나 '자민당'이나 할 것 없이 조선학교에 대해서만 '고교무상화'제외를 결정했다.

일본정부의 몰염치한 역사인식, 그에 따른 재일동포 전체에 가해지는 정신적, 물적, 법적 피해와 차별에 대해 단 한 번 제대로 된 항의도 전달한 적이 없는 한국정부와 정치인들에게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만든 미래를 짊어지고 살아야 할 아이들에게 또 다른 죄를 짓는 것인지도 모른다. 관망만 하고 있기에는 현재 민족교육이 처한 위기가 너무 심각하다.

   
▲ 도쿄 신오쿠보 코리아타운 거리에서 도보행진을 벌이는 우익단체. 경찰이 막고있는 사람들(오른쪽)은 우익단체의 헤이트스피치를 저지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일본시민들이다.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우익단체 성원들이 약 200명이었으며 그들을 포위하며 저지하려던 양심적 세력들이 약 2000명에 달했다. ⓒ김명준

남북의 정치적 상황이 나빠지건 좋아지건, 일본정부가 어떤 정책으로 교묘히 재일조선인을 탄압하건, 한결같이 '조선학교, 우리학교' 아이들을 지켜줄 수 있는 그들 할아버지, 할머니의 고향 땅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자꾸 만나야 하고, 손 잡고 눈 마주쳐야 하고, 이름을 불러주어야 한다. 일본의 극우단체가 헤이트 스피치를 할 때, 몇 주전 내가 이야기 나누고 함께 손잡고 노래 불렀던 조선학생 '김하나'의 얼굴을 떠 올리며 걱정에 사로 잡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날 때마다 동포들의 얼굴에는 희망이 번질 것이다.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선한 일본사람들에게도 힘이 될 것이다. 동아시아의 평화도 조금씩 우리 곁으로 다가 올 것이다.


※ 글 쓴이 김명준 씨는 비영리 민간단체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www.mongdang.org)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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